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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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사목]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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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18 ㅣ No.804

[통일을 준비하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종교인의 역할



통일 상황이 전개되어 북한에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누구일까? 부동산업자와 함께 종교인을 꼽는다. 미래를 마음속에 그리면서 행동으로 옮기는 이가 종교인이고,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자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으니, 남들이 아직 보지 못할 때 마음의 눈으로 보고 이를 준비하고 실천하는 이들이 종교인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반도 통일과 남북사회 통합에서 강렬한 열정을 갖고 순교까지 각오하는 종교인의 역할은 크다 할 수 있다.

분단 70년을 맞이하며 다가올 70년을 생각한다. 앞으로 70년 동안 이 땅에 전쟁의 위험이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되며 남북 간에 이질성을 극복하여 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까?


종교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북한의 이중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필자는 30년 동안 통일부에 근무하면서 종종 현실적 정책집행자로서의 나와 종교인으로서의 나에 대해 생각했다. 서로 다른 땅에 발을 딛고선 나에게 이러한 틈은 바로 분단과 북한이라는 존재가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에서 기인한다.

북한은 각종 도발 등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경계의 대상이자 동족이라는 화해 협력과 포용의 대상이다. 공무원으로서 북한 정권과 협상하며 그들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한편, 종교인으로서 북한 사람 한 사람이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을 회복하고 빈곤에서 벗어나며 자유로울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하였다.

그간 우리 종교인들은 절대적인 사랑, ‘그럼에도’ 사랑을 실천하고자 남북 간의 긴장과 대결상황에서도 조건 없고 헌신적인 대북지원과 남북 종교교류 협력을 희망하고 이를 위해 노력했다. 인도적인 대북지원은 정치 · 군사적 상황과 관계없이 조건 없이 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디까지가 인도적인 것인지, 아니면 경협 지원성인지를 구분해야 했다. 또 이것이 북한 당 · 군의 고위간부에게 가는지, 아니면 북한 주민에게 가는지를 알아야 했으며, 특권층인 평양시민에게 혜택이 가는지, 아니면 함경도나 평안도 산골주민에까지 가는지 현실적으로 살펴야 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가 보내는 인도 지원물품이 동족에게 가므로 이것은 종교인으로서 엄숙한 사명이자 책임이며, 이를 악용한 사람들에게는 전능하신 분의 판단과 심판이 따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본다. 북한의 열악한 식량, 에너지, 보건의료 상황을 볼 때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좀 더 대북지원의 문을 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부는 한참 통일 준비라는 화두를 펼치는데, 대북지원을 통해 북한 주민의 마음을 얻어, 그러한 통일 상황이 되었을 때 남한으로의 통일을 희망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북한 주민은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내가 굶주리고 헐벗고 있었을 때 당신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내가 목마르고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습니까?”

종교인은 결국 현실 행정인이 보지 못하는 높은 비전과 이상을 실천하게 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현실의 장벽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 않았던가. 종교인들이 선을 행하면서 낙심하지 않는다면 때가 되어 통일은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먼저 온’ 탈북자를 돌보는 일

다음으로는 우리 주변에서 작지만 평화와 통일을 준비하며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우리 주변에 살면서 힘겨운 정착과정을 밟고 있는 2만 7천여 명의 탈북자들을 돌보는 일이다.

필자는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탈북청소년 그룹홈(자활꿈터)을 방문한 적이 있다. 주로 초등학생들이 숙식하며 학교에 다니고 부모들은 주로 주말에 찾아오는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중학교 이상의 탈북 학생들은 탈북과정에서 당한 정신적 외상 등으로 왠지 불안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못하다. 하지만 이곳의 학생들은 명랑하고 구김살 없이 잘 크는 것을 보고 탈북자의 장래가 밝다고 느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많은 탈북자는 취업과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탈북자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도 많이 변했다. 처음에는 적극적인 애정과 관심을 보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열정이 식고 비판적이 되어간다. 수십 년을 다른 체제와 이념 아래 살아온 그들이 쉽게 우리 사회에 적응할 수 있겠는가? 우리 사회가 이들을 통합시키지 못한다면 통일 준비는 헛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많은 종교단체가 탈북자를 구출하고 북 · 중 경계선상의 북한 고아를 돌보고 있으며 목숨의 위험을 느끼면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인 탈북자들을 종교인들이 먼저 껴안고 보듬어주어야 한다.


대북 보건의료 지원과 북한을 알려는 노력

또 짚어보아야 할 것은 대북 보건의료 지원이다. 북한의 열악한 식량 사정으로 폭넓게 퍼진 결핵 환자를 치료하려고 유진벨 재단 등이 노력하고 있고, 많은 의료기관이 북한 내 간염 치료 등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남북의 오랜 단절과 북한의 피폐한 경제는 남북한의 인종적인 차이를 가져오고 있다. 북한 사람의 키가 남한 사람보다 십여 센티미터 작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특히 임산부, 영유아의 영양실조는 미래 북한 사람의 지능과 한민족의 미래에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많은 병자를 치유한 기적이 저 북녘땅에도 이루어지도록 많은 의료전문 종교인과 종교단체가 좀 더 헌신하면 좋겠다.

또한 종교계에서 할 일은 현재의 분단이 부자연스러운 일임을 신도들에게 깨우치며 북한을 더 잘 알아가는 노력을 모든 분야에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더 잘 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 사람에 대해 더욱 잘 알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커질 것이다. 종교계에서도 북한에 대해 공부하고 알아가는 포럼이나 선교학교를 개설해 신도들의 가슴에 불을 댕기거나 젊은이들에게 통일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이러한 일들을 교육하는 일은 종교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가운데 하나이다.

북한 선교는 블루오션이자 새로운 개척지이다. 우리가 이런 인식을 분명히 하고 관심과 투자와 준비를 한다면 통일은 우리에게 축복이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북한 알기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며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

또 이 땅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종교인이 해야 하는 것은 기도라고 생각한다. 기도란 능력 없는 우리가 전능한 분의 힘을 빌려 문제를 해결하는 힘이다.

남북관계의 현실의 벽은 높고, 북한 주민의 인권과 삶은 그리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수단도 많지 않다. 이러한 때에 종교인이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모여 기도하며 애통해하는 일이다. 우리가 기도할 때 전능하신 분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통일부에 근무할 때 개성공단에서 일하던 남쪽의 직원이 북한에 억류된 적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북한과 여러 차례 협의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나는 어느 종교집회에 참석하여 이 직원의 석방을 위해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하였다. 이후 다시 한 번 집회에 참석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참석한 모든 사람과 함께 간절히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이 직원은 억류에서 풀려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다.

납북자나 국군포로, 선교하다 붙잡힌 이들, 탈북과정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또한 북한정권이 변화하여 자유롭게 집회에 참여하여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그날이 빨리 올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함께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그날까지

나는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워싱턴 광장에서 했던 연설 “나는 꿈이 있습니다.”를 좋아한다. 그는 그 꿈이 현실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얼마 전 천안에 있는 탈북자 대안학교인 드림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한 탈북학생에게 “앞으로 공부해서 무엇을 할 거냐?”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제 고향 북한 땅에 가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제 꿈이에요.”라고 대답하였다.

그렇다. 그 꿈은 그 학생 혼자만의 꿈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 모두의 꿈이다. 한 사람의 꿈은 그냥 꿈일지라도, 많은 사람이 함께 꾸면 현실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그러한 일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확신한다.

평화통일은 거창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조그마한 일부터 하나하나 해나간다면 어느새 우리 앞에 다가와 있을 것이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 남북한 주민이 함께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그날까지 낙심하지 않고 걸어가자.

* 엄종식 - 서울대 행정대학원을 졸업하고 청와대 통일비서관, 남북회담본부장, 통일부차관(2010-2011년)을 지냈다. 지금 연세대학교 객원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5년 3월호, 엄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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