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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톨릭 영성 산책41: 신비 생활과 신비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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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2-28 ㅣ No.77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41) 신비 생활과 신비체험

 

신비체험이 전하는 하느님 계획

 

 

그리스도인은 정화 단계에서 영성 생활을 동경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보고 영적 발전을 도모할 것을 결심하고 시작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조명 단계에서 수덕 생활을 실천하기 위해 악습을 끊어버리고 덕행을 증진시키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통회와 회개를 통해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이나 반복적인 덕행 실천으로 자신 안에 덕행이 습관화돼 자리 잡도록 활성화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 하느님 은총의 도움으로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관점에서 인간의 의지도 자유롭게 능동적으로 노력해 이뤄 놓은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치 단계에서 하느님과 합일을 이루려는 신비 생활은 이성으로 이해하기에도 스스로 가까이 다가가기에도 쉽지 않은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 의지가 능동적으로 노력한다고 해서 신비 생활에 다가갔다고 할 수도 없고, 하느님 은총이 언제부터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이끄시며 신비 생활을 완성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비 생활을 이해하려면 먼저 하느님과 합일하는 체험을 일컫는 ‘신비체험’(mysticism)에 관해 알아야 합니다. ‘신비’(神秘)라는 말의 그리스어 어원은 ‘mystiks’입니다. 숨겨지고, 감춰지고, 은폐된 것을 의미하기에 일상적인 경험 세계를 넘어서는 피안(彼岸) 세계에서의 체험을 지칭합니다. 한편 그리스도교 안에서 이러한 체험은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동반하는 체험으로 이해됩니다. 특히 과거에 하느님께서 세우셨으나 숨겨둔 것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심으로써 오늘날 알려진 계획을 의미하기도 하였습니다. ‘강생의 신비’, ‘구원의 신비’, ‘신앙의 신비’ 등의 표현이 이에 해당합니다. 그와 같은 하느님의 비밀스러운 계획을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비로소 알 수 있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신비체험을 통해 신비 생활에 도달하려는 그리스도인 중에 제법 많은 수가 마치 편집광처럼 황홀(ecstasy)이나 무아경(trance) 또는 환시(vision)나 말씀(locution) 등과 같은 특별한 경험에 매달리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도 이와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야포에 있는 무두장이 시몬의 집 옥상에서 기도하던 중에 무아경에 빠져 환시를 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사도 10,9-16 참조). 바오로 사도는 어느 날 셋째 하늘까지 들어 올려져 발설할 수 없는 말씀을 듣습니다(2코린 12,1-4 참조). 그렇지만 이와 같은 특별한 경험은 신비체험의 본질이 아니라, 다만 본질을 전하는 그릇에 불과할 뿐입니다.

 

현대 영성신학자와 종교학자는 신비체험의 공통적인 중요한 특징을 살폈습니다. 먼저 신비체험은 수동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에 이끌려 초자연적인 질서에 참여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직관적인 인식이 이뤄집니다. 하느님과의 합일 체험은 일반적인 인식의 방식을 넘어서서 은총으로 하느님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순간적으로 이뤄지는 체험입니다. 오래 지속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강한 인상을 갖는 체험입니다. 이때 황홀경이나 탈혼을 경험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모든 특징을 종합해 보건대 신비체험은 인간의 언어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일치 단계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신비 생활을 잘 이해하고 도달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은 보다 다양한 시각에서 신비체험에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2000년 그리스도교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신비체험을 설명하려 했던 신비신학자가 있었는가 하면,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신비체험을 한 신비체험가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몇 회에 걸쳐 시대별로 신비신학자와 신비체험가가 시도했던 다양한 설명을 요약 정리하여 신비체험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평화신문, 2016년 2월 28일, 전영준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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