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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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봄(見)의 한계, 들음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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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3-09 ㅣ No.801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봄(見)의 한계, 들음의 가능성



- MBC 설 특집 음악쇼 ‘복면가왕’.


우리는 TV를 보는 매체라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TV는 엄연히 시청각 매체다. 영상물에서 소리의 지분은 의외로 크다. 대사를 명료하게 구사하는 배우의 목소리는 건넌방에서 한눈팔던 식구들을 거실로 불러다 앉힌다. 잘 만들었다고 여겨지는 작품은 배경음악과 효과음도 적재적소에 들어가 있다. 소리가 없다면, 우리는 대상의 일부만을 볼 수밖에 없다.

최근 TV에서도 봄의 한계를 꼬집은 프로그램이 선을 보였다. 설 특집으로 편성됐던 ‘복면가왕’(MBC). 근래 유행한 가수 경연 프로그램들에 영화 ‘복면달호’를 섞은 음악쇼인데, 가면을 쓴 가수 8명이 토너먼트로 경합해서 단 한 명의 우승자를 뽑는 경연 프로그램이었다. 패자는 가면을 벗어 얼굴을 공개하고 승자는 얼굴을 가린 채 다음 경연에 임했다. 얼굴을 드러낸 패자들은 뜻밖에도 유명 가수였기에, 저들을 꺾은 낯선 목소리의 주인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 갔다.

결승전이 끝나고 공개된 최후 2인의 정체는 엄청난 반전이었다. 준우승자는 일일연속극(SBS ‘사랑만 할래’)에 밉상 며느리로 출연한 여배우, 우승자는 심한 노출과 섹시 콘셉트의 무대(EXID ‘위아래’)로 논란이 된 걸그룹의 리더였다. 이어 공개된 우승자 허솔지의 사연은 더 놀라웠다. 가수로 데뷔한 지 10년 가까이 되도록 무명 가수와 보컬 트레이너 사이를 오가다가 자극적인 노래와 춤으로 겨우 얼굴을 알렸는데, 정작 대중이 그녀의 노래에 갈채를 보낸 건 그룹에서 잠시 빠져나와 얼굴을 가리고 무대에 선 뒤였다는 얘기다.

‘위아래’는 2015년 1, 2월의 인기가요 순위를 강타한 노래였다. 라디오를 틀어놓거나 번화가를 지나쳐 봤다면 그녀의 노래하는 목소리를 못 듣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걸그룹을 TV로 접한 시청자들의 뇌리에 남은 것은 과장된 신체와 춤사위, 곧 눈에 보이는 것들이었다. 모두가 귀로 들었을 시원한 가창력은 파격적인 쇼에 가려 잊혀졌다.

시야를 가리고 소리에 집중하는 순간 노래의 참맛이 느껴지는 경지를, 우리는 ‘복면가왕’의 친형뻘인 ‘히든 싱어’(JTBC)에서도 경험했다. 스타에 대한 존경심을 발판 삼아 열심히 살아온 팬들과 무명 가수들의 열창, 그리고 저변의 숱한 노력은 그들에 대한 선입견을 청중의 눈과 함께 가린 뒤에야 진가를 인정받았다.

성경에도 본다고 생각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는 구절이 있다. 예수님께서 태생 소경을 고치신 기적의 결말이다. “너희가 눈먼 사람이었으면 오히려 죄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가 ‘우리는 잘 본다’ 하고 있으니, 너희 죄는 그대로 남아있다”(요한 9,41). 바리사이들은 우월감에 눈멀어 자기 내면을 외면했다. 시청자들은 출연자의 외모와 이름값에 눈멀어 무명 가수의 목소리에 귀를 닫는다. 봄의 한계를 잊고 들음의 가능성을 잃는 어리석음은 TV 앞에서만 일어나는 일일까. 귀를 열고 들음으로써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는 지혜가 절실하다.

* 김은영(TV칼럼니스트) -
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5년 3월 8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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