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인ㅣ순교자ㅣ성지

[성인] 우리 성인을 만나다1: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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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1-02 ㅣ No.2203

[윤영선 교수의 우리 성인을 만나다] 1.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Laurent-Joseph-Marius Imbert)

 

 

윤영선 교수가 직접 그린 앵베르 성인과 절두산순교성지.

 

 

출생 : 1796년 프랑스 마리냔(Marignane)

순교 : 1839년(43세) 새남터 / 군문효수(軍門梟首) : 죄인의 목을 베어 군문(軍門) 앞에 매다는 형벌

신분 : 주교(제2대 조선대목구장)

한국이름 : 범세형(范世亨)

 

 

조선의 수호자로 성모님 모시려 청원

 

1월 1일은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수호자로 모시고 있는 한국 교회는 성모님과 맺은 관계도 특별했다.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는 박해가 한창인 1838년 성모님을 수호자로 모시려는 청원을 교황청에 올렸다. 그의 청원은 순교 후 2년이 지난 1841년에야 화답되었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 의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이 조선의 수호자로 선포된 것이다. 청원자 앵베르는 답을 얻지 못한 채 순교했지만 끊을 수 없는 매듭으로 한국 교회와 성모님을 연결시켜줬다.

 

태양볕이 따가운 8월 중순 앵베르 라우렌시오 성인을 만나기 위해 서울 관악구의 삼성산성지를 찾았던 기억이 있다. 이곳은 성인의 유해가 58년간이나 묻혀계셨던 곳이다. 성인을 만날 기대감으로 초행길부터 가슴이 설렌다. 주차를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떤 형제분이 산 위에서 야외 미사가 곧 거행된다고 알려줬다. 성지의 거룩한 미사에 참여할 수 있다니, 예상치 못한 횡재에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다. 장마철이라 이끼 낀 돌길이 다소 미끄러웠으나 짙은 초록의 숲으로 간간이 들어오는 햇살이 정신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듯했다. 숨 가쁘게 오른 언덕 위에는 하얀 제대보가 눈에 들어왔다. 연두색 초, 성작, 십자고상이 놓여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대가 마련된 것이다. 성인이 이 자리에 나를 초대해주신 것 같은 기분이다. 성인이 묻혔던 묘역에 서있자니 성인의 사랑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잡혀서 순교하신 착한 목자다.

 

 

스스로 잡혀서 순교하신 착한 목자

 

“사람들의 영혼을 구하기 위하여 만 리 길도 마다치 않고 달렸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일러바쳐 해를 입히느니 차라리 죽을지언정 십계의 가르침을 어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칼과 톱이 우리 앞에 있고 우리의 몸이 가루가 될지라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인의 유해는 삼성산에 안치되었다가 명동대성당을 거쳐, 지금은 절두산순교성지 병인박해 100주년 기념성당 지하에 모셔져 있다. 절두산성지도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된 장소다. ‘목이 잘린 곳’이라 절두산이라 한다는데, 미사에 올 때마다 때아닌 비가 세차게 내려 성지는 우수에 젖은 성스러움으로 다가왔다. 비바람에 실려 환청처럼 흘러드는 형장 군졸들의 음성이 속삭이듯 귓전을 스친다. “타국 사람을 죽일 때에 청명하던 하늘이 홀연히 어둡고 비가 급히 쏟아져 지척을 분간치 못하여 무섭더라.” 하나같이 우수에 젖은 새남터와 삼성산과 절두산은 착한 목자의 마음을 닮았다.

 

 

우리나라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

 

앵베르 성인은 우리나라 땅을 밟은 최초의 주교다. 많은 교우가 박해로 죽어가는 상황에서 자식을 살리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했다. 성모님을 우리의 수호자로 삼으려던 목자는 이미 마리아의 모성으로 백성을 끌어안은 게 아닐까. 끔찍이도 인자하셨던 성인은 절두산에 우뚝 서서 오늘날에도 우리를 보호하고 계신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1일, 윤영선 비비안나(강동대 건축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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