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가정 안에서 신앙을 이어주는 문화 만들기: 기도문 외우기를 어려워하는 자녀(손자녀)에게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9-05 ㅣ No.1339

[가정 안에서 신앙을 이어주는 문화 만들기] 기도문 외우기를 어려워하는 자녀(손자녀)에게

 

 

어린이 미사가 끝나자 어린이들 몇 명이 신부님께 달려가 볼 멘 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신부님, 저는 주님의 기도를 노래로는 잘 부르거든요? 그런데 말로 하라고 하면 못하겠어요. 너무 어려워요! 기도문은 꼭 외워야 하는 건가요?”

 

아마도 첫영성체 반 친구들인가 봅니다.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들의 손에는 하도 들고 다녀서 다 헤진 기도문 프린트가 들려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스럽게 여기실까요? 한 구절 한 구절 더듬어가며 기도를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기특해 제 얼굴에도 덩달아 미소가 피어올랐습니다.

 

부모를 따라 미사를 참례하면서 아이들은 성호를 긋고 때에 맞춰 ‘아멘’ 하고 응답하며 기도하는 법을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점차 지적 성장을 이뤄나갈 무렵, 교회의 전통적인 기도인 염경기도를 배우게 됩니다. 보통은 첫영성체 교리를 하면서 주요기도문을 익히고 암송하는 훈련을 시작하지요. 이때 숙제로 기도문을 외워야 하고, 시험까지 보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어려움을 토로합니다. 그런 아이들을 달래고 설득하느라 부모들도 함께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통과의례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자녀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더 어렵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자녀의 첫영성체 준비를 두려워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습니다.

 

사실 잘 생각해보면 이 시기의 자녀를 둔 가정은 기도문 암송 외에도 이와 비슷한 어려움을 이미 크고 작게 겪고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처음 한글을 배우기 시작할 때, 수를 세기 시작할 때, 셈을 배우고 구구단을 외워야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어려워합니다. 때론 그것이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이 다음 단계의 배움을 위한 기초를 단단히 쌓아가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어려움에 공감해주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즐겁고 재미있게 익힐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적절한 외적 보상을 준비하기도 하며 자녀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부모의 이런 노력 속에서 아이들은 마침내 지적 도약을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이때 지적 도약보다 더욱 중요한 성취를 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자기효능감입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마침내 내가 해냈구나!’ 하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해낼 수 있다는 신념인 자기효능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문 외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염경기도의 의미와 역할을 이해하고, 염경기도를 암송하고 난 다음에는 어떤 단계로 나아갈지 미리 그려본다면 이 과정을 힘든 통과의례가 아니라 신앙생활의 기초를 다지고 자기효능감 또한 얻게 되는 중요한 기회로 만들 수 있습니다.

 

염경기도는 신앙의 선배들의 하느님에 대한 찬미와 진지한 성찰, 그리고 신앙 고백이 스며있는 전통적이고 아름다운 기도문들입니다. 하지만 염경기도를 그저 외운 구절을 반복하는 것으로만 여긴다면 염경기도를 바치는 것이 지루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자녀가 기도문 외우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지적 도약의 고비를 넘어올 때처럼 자녀의 어려움을 우선 공감해주십시오. 그다음 우리가 때때로 하느님께 말씀드리고 싶고 고백하고 싶지만 입을 떼어 쉽게 표현하기 어려울 때 염경기도를 반복하여 바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려주십시오.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더라도 공동체와 함께, 혹은 홀로 천천히 기도문을 음미하며 따라 하는 것을 통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염경기도가 고마운 선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각 기도에 담긴 뜻을 잘 설명해주십시오. 새로운 하루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리는 아침기도, 그리고 하루를 돌아보며 혹시 죄를 통해 하느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고 하느님의 사랑에 감사를 드리는 저녁기도,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그분께 희망을 두고 사랑의 실천을 약속하는 삼덕송, 그리고 하느님을 아버지라 고백하며,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하고 오늘 하루 나에게 필요한 것을 잘 청할 수 있도록 예수님께서 직접 알려주신 주님의 기도 등 각 기도의 의미와 각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어느 때에 어떤 말씀을 드릴 수 있는지 잘 알려주십시오. 그렇게 염경기도의 의미를 잘 이해하고 나면 암송한 기도문들은 하느님과의 대화의 문을 여는 중요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만약 그동안 마음은 있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가족이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하기 어려웠다면 자녀가 기도문을 익히고 암송하기 시작하는 이때가 좋은 기회입니다. 자녀가 암송할 수 있게 된 기도문이 생길 때마다 많이 격려해주시고, 때로는 가족이 함께 기도할 때 기도를 이끌 수 있도록 초대해 주십시오. 자신이 바치는 기도가 가족과 연결되고 교회 공동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체험할 때 아이들은 그 기도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함께 바치는 기도 안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신앙정체성을 확고히 해나가며 가톨릭교회의 일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될 것입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3년 9월호, 햇살사목센터(천진아 미카엘라)]



4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