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자) 대림 제1주간 토요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교육ㅣ심리ㅣ상담

[상담] 별별 이야기: 운전만 하면 화가 나요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3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8) 운전만 하면 화가 나요

 

 

자신은 분노조절 장애라며 스스로 진단을 내리고 상담실을 찾아오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모든 일에 짜증이 나고 일상에서 별것 아닌 사건으로도 극도의 분노를 느낀다는 점, 한 번 분노가 일어나면 쉽게 가라앉지 않아 결국 자신과 타인에게 큰 피해를 주고 나서야 감정이 가라앉는다는 점에서도 이들은 많이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도 특이한 점은 대부분 “화를 가장 참기 힘든 상황은 운전할 때”라고 말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운전 중에 가장 화가 많이 난다고 하였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들기를 한다거나, 급정지하는 경우, 혹은 고속도로를 나가기 위해 길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사이를 비집고 끼어든다거나 신호위반을 하고 질주하는 차량을 보면 예외 없이 분노가 올라와 욕설을 내뱉는다고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화가 나지 않는 이가 더 이상한 사람이지 않을까? 타인의 부주의나 위법 행위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분노 감정이 발생한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행동이 실수가 아니라 다분히 의식적이고 고의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면, 불같이 타오른 분노 감정에 기름을 부은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어떤 사람은 운전 중 갑자기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해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한다. 어떤 사람은 상대방 행동이 이해되지 않아도 무엇인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며 기꺼이 양보하는 마음과 태도를 보인다. 그런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고 항변하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떤 부정적 상황에서도 긍정적 마음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같은 상황에서 다른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다름 아닌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생각, 더 정확히 말하면 ‘사건을 인지하는 방식’에서 감정과 행동이 결정된다. 그렇다면 운전 중에 부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일으키는 사람과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의 인지 방식의 차이는 어디에서 발생하는 것일까?

 

미국 유학시절 보험회사에서 자동차 보험 가입 서류를 작성하고 난 후 서류 마지막 부분에 제시된 문장을 본 후 적잖게 놀란 기억이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교통사고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건입니다. 만일 운전 중에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엔 경찰에 연락하신 후 절대 차량 밖으로 나오지 말고 차 안에서 기다리십시오.” 여기서 내 눈길을 끈 것은 교통사고가 자연스러운 사건이라는 말이었다. 보험 계약서에 교통사고의 원인을 인격화(personalization) 하지 말고 자연 발생적 현상으로 수용하라는 심리학적 통찰이 적혀있었던 것이다.

 

운전 중에 경험하는 모든 일은 누구나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든 경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사건이다. 누구의 책임이고 누구의 탓이라고 생각하면(인격화) 그 사람에 대한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 사건을 유발했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누구든 경험할 수 있는 자연적 사건으로 인지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더 위험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신 하느님께 감사의 기도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체험하게 되는 부정적 사건은 일어나는 시기와 내용만 다를 뿐 거의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발생한다. 하지만 그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정서적 안정과 영적 성숙은 큰 차이를 보일 것이다. 인격화된 사건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사건으로 수용하는 사고방식은 비단 교통사고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어떤 새 물건도 사용하다 보면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생활 흠집을 인격적 사건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상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부정 감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1월 19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72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