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17일 (월)
(녹)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레지오ㅣ성모신심

허영엽 신부의 나눔: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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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2-13 ㅣ No.616

[허영엽 신부의 ‘나눔’]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억하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지 벌써 10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김 추기경님이 떠나시던 그 날은 바로 엊그제 같기만 합니다. 교구는 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나름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모든 것이 교구의 예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애도하는 인파가 명동주위를 둘러싸고 끝없이 돌고 돌아 장관을 이루었고,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려는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그치지 않았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가까이서 처음 뵌 것은 대신학교 1학년 가을이었습니다. 신학교 학보사 기자였던 나는 선배와 함께 김 추기경님의 인터뷰를 위해서 교구청을 찾았습니다. 당시 김 추기경님은 바오로 6세 교황님이 선종하신 후, 새 교황님 선출을 위해 로마에 다녀오신 직후였습니다. 아직 여행의 여독이 풀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우리 기자 신학생들을 환한 미소로 맞이해주셨습니다.

 

새파란 신학생들이 교구장님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해야 할 일은 커녕, 그저 긴장되고 떨리는 마음만 가득했습니다. 교구장님의 집무실인 명동 주교관에서 인터뷰가 진행되는 2시간 내내, 김 추기경님은 시종일관 우리를 편하게 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런 것도 질문해야지”라며 질문 내용을 직접 챙겨주셨습니다.

 

인터뷰 끝에 사진 촬영을 청했습니다. 옷을 갈아입으시고 사진을 찍었는데 바지 지퍼가 제대로 잠기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한 신학생이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추기경님, 저기 바지가…” 그러자 김 추기경님은 “어! 남대문이 열렸네!” 하시면서 파안대소하셨습니다. 순간 우리 신학생들도 함께 크게 웃었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아득히 높고 어렵기 만한 교구장님이 몹시도 인간적인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무 것도 남기지 않은 가난한 삶

 

선종하시기 전 병실에서 만난 김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김 추기경님은 하루 종일 잠을 자고 계셨습니다. 잠드신 모습이 무척이나 편안해 보였습니다. 벽에는 김 추기경님이 직접 종이에 그린 그림들이 붙어있었습니다. 나중에 바보 심벌이 된 그림도 걸려있었습니다. 나는 추기경님께서 일어나시길 기다리다가 성호를 긋고 잠시 기도를 바친 후 병실을 나섰습니다. 그 날 추기경님과의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김수환 추기경께서 2009년 2월16일 오후 6시12분에 우리 곁을 떠나 하느님 품안에서 선종하셨습니다.” 교구 홍보국장으로서 김 추기경님의 선종 소식을 많은 기자들 앞에서 알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장례 기간 동안 매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장례 진행 상황을 전달해야 했습니다.

 

선종하신 다음 날 명동성당 코스트홀에서 가진 기자 브리핑 때의 일입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질문이 있습니다. “김 추기경님이 남기신 유산은 얼마나 됩니까?” 사실 매우 당황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기자에게 자세하게 알아보고 오후 브리핑 시간에 알려주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잠시 후 비서 수녀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수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김 추기경님 이름의 통장은 없어요. 제가 재정을 관리했는데, 잔액이 천만 원이 조금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추기경님께서 당신이 선종하면 미사에 오는 사람들에게 묵주를 선물하라고 지시하셨어요. 그 대금을 지불하고 나면 모자랄 것 같아요. 교구에서 도와주셔야 할 것 같은데요.” 그 말을 듣자 목이 메어왔습니다.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분은 아무 것도 남기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오후 브리핑 시간에 기자들에게 이 사실을 그대로 알렸습니다. 그날 저녁 뉴스에서 김 추기경님의 가난한 삶에 대해 집중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환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김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신 날 밤, 나는 추기경님께서 보내주셨던 편지를 기억하고 찾아보았습니다. 여러 통의 편지 중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지난 2002년 어머니를 떠나보낸 우리 형제들에게 친필로 보내주신 편지였습니다. 몸이 많이 아픈 바람에 장례미사에 참석을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씀이 적혀있었습니다. 김 추기경님의 편지들은 모두 직함 없이 그냥 ‘김수환’으로 끝맺음되어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격의 없고 소탈한 모습입니다.

 

신학생 신분으로 만났던 처음 만났던 날부터 교구 홍보담당 사제로서 마지막을 배웅해드린 날까지 김 추기경님과 함께 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늘 다정한 말씨와 맑은 웃음이 떠오릅니다.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만나는 어느 누구에게나 겸손하고 소박한 마음을 선물해주셨기에 지금도 많은 이들이 김 추기경님을 그리워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느덧 선종하신지 10년, 그 분께서는 하느님 곁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실 것입니다. 김 추기경님의 환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9년 2월호, 허영엽 마티아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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