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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협ㅣ사목회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4-5: 평신도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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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12-31 ㅣ No.85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 평신도의 소명 (상) 평신도도 '사제직' 수행해야

 

 

평신도는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까 고민하며 살아야 한다. 또 제물을 잘 바치는 것도 평신도 사제직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사진은 미사 중 신자가 예물을 봉헌하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귀농과 관련한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귀농해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 사람은 참 좋겠다.’ ‘나도 저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저 사람이 부럽다.’ 그런데 대부분 이렇게 생각에 그치고 맙니다. 하지만 그중 몇몇 사람은 실제로 귀농을 결심하고, 실행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바라보기만 하고 생각만 하는데, 어떤 사람은 실행에 옮깁니다. 신앙생활에도 실행으로 옮기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생각만 하고 있다면 행복한 삶은 요원할 것입니다.

 

 

하느님이 뽑아 세운 사람들

 

평신도는 하느님께서 많은 사람 가운데 뽑아 세운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왜 뽑으셨을까요? 우리만 잘살라고 뽑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뽑힌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미션이 주어집니다. 뽑힌 사람 각자에게는 예외 없이 사명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뽑힌 사람들이 받은 사명은 무엇일까요.

 

평신도는 한낱 심부름꾼이나 보조자에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시고 복음을 선포하시고 증거하셨듯이, 그분의 권리와 의무, 사명을 그대로 받은 평신도도 이 세상의 복음화를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알고 본받아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셨다고 가르칩니다. 평신도 또한 사부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사제직’ ‘예언직’ ‘왕직’의 ‘사도직’을 잘 수행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수행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희생 제물로 삼으셔서 하느님께 당신의 삶과 죽음으로 거룩한 제사를 드리신 대사제이십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성체 성혈로 오셔서 하느님께 제사를 드리시는 대사제이십니다.(사제직) 또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복음서를 통해 우리에게 끊임없이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예언직) 아울러 예수님께서는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수많은 기적을 베푸셨고, 지금까지 우리에게 끊임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왕직)

 

그런데 여기서 많은 분이 어떻게 평신도가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는지 의아해 하곤 합니다. 사제직은 성직자들만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평신도에게도 사제직이 있습니다. 평신도에게 주어진 사제직은 ‘보편 사제직’ ‘일반 사제직’이라고 부릅니다.

 

 

평신도의 사제직

 

평신도의 사제직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서 그 삶 자체를 하느님께 제물로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도록 살아가며 그 순간의 삶들을 제물로 바치는 것, 이것이 ‘보편 사제직’ ‘일반 사제직’입니다. 반면 성직자들의 사제직은 ‘직무 사제직’이라고 말합니다. 신부님들은 이를 수행하기 위해 성품성사를 받습니다. 이처럼 사제만 사제직을 수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면서, 그 순간의 삶들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 이것이 평신도들이 수행하는 보편, 일반 사제직입니다.

 

평신도라면 매 순간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까 고민하며 살아야 합니다. 제물을 잘 바치는 것도 사제직을 잘 수행하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를 지낼 때 맏배를 제물로 바쳤습니다. 첫 수확인 맏배, 가장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제물을 바치고 있나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첫 수확인 맏배를 바쳤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우리도 헌금과 교무금을 성실히 내야 합니다. 평신도가 사제직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조금 이해하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평신도 사도직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교회는 평신도에게 왕이 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1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5) 평신도의 소명 (하) 복음 선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평신도에게 복음 선포는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니다. 사진은 전주교구 미룡동본당 신자들이 전교주일을 맞아 연 ‘선교 운동 선포식’에서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 문구를 새긴 어깨띠를 두르고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교회는 평신도에게 왕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정확히 말하면 왕직을 수행하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 예언자가 되라고 합니다. 겸손해야 할 평신도에게 왕이나 예언자가 되라니요. 이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왕직의 삶이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베푸셨듯이, 우리도 다른 이들을 섬기고 나누고 그들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함으로써 사람들이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받들고 현양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언직 수행하며 살아가야

 

또한, 평신도는 예언직을 수행하며 살아갑니다. 예언직이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듯이, 우리도 이 땅에서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고 선포하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복음적 삶을 실천하는 것에는 정의롭게 사는 것,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사는 것 등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평신도는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고,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또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비체,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교회 공동체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의 몸의 자격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의 자격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사셨던 것처럼 사제직, 예언직, 왕직을 충실하게 실천해야 합니다.

 

평신도는 더 나아가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야 할까요? 사랑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 사랑을 받은 하느님 백성들의 아직 하느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사랑’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하느님의 백성이 전제됩니다. 하느님의 존재와 그분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한 평신도는 그분을 증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백성이 자비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깊고 넓은지 체험하게 돼 그분을 전하고 싶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서의 참 행복의 길과 부활의 영원한 행복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남기신 유언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루카 4,4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선포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면 누가 전할까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인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증거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대신 복음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전하는 사람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들어야 믿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께서도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10,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 전하며 영적으로 성장

 

복음 선포를 위해 파견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사명을 교회 그리고 교회를 통해 현대를 사는 평신도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유언의 상속자는 현대를 사는 모든 평신도입니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며, 사목자나 전문 선교사들에게만 그 직무가 수여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구성원 모두에게 맡겨진 직무입니다. 세례 성사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에 참여하는 모든 평신도에게 부여된 의무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우리는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합니다. 세월 가는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은 목적지가 이제 눈앞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출발선을 바라봅니다. 뒤를 돌아봅니다. ‘내가 왜 그걸 못했을까.’ ‘그때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하는데.’ ‘조금만 더 잘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이미 지나간 세월입니다. 게다가 지금 흘러가는 세월의 속도 또한 막을 수 없습니다. 가까이 다가온 목적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무엇을 준비할 것인지, 아무도 모르는 그 시간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언급한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와 소명을 분명히 알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구체적으로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요?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모범이 있습니다. 그 모범만 따라 하면 됩니다. 이제 그 모범을 찾아 타임머신을 타고 200년 전으로 가보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월 6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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