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강론자료

2018-07-01.....연중 제13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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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8-06-30 ㅣ No.2248

연중 제13주일 (나해)

지혜 1.13-15; 2,23-24            2코린 8,7.9.13-15          마르 5,21-43

2018. 7. 1. 이태원. 교황주일

주제 : 사람의 지혜와 믿음의 힘

무덥다고 하고 불쾌지수를 말하는 7월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첫째 날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간절해도 날씨를 마음에 들게 바꿀 방법은 없습니다. 그래서 상황을 조금이라도 달라지게 하고 싶다면, 날씨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를 좋고 바르게 가져야 할 일입니다. 그래야만 현실을 다르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오늘은 교황님을 기억하며 교황님을 위해 기도할 것을 요청하는 날, 교황주일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반복해서 한 번 더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내가 하는 기도에 세상의 삶을 바꾸거나 변하게 하는 힘이 있을까요? 여러분 중에서 그러한 질문을 하신 분이 있을까요? 질문을 했다면 대답도 찾으셨을 것입니다. 그 대답은 두 가지 모습의 하나일 것입니다. 효과가 있다는 한 가지와 그런 일에 기도는 아무런 효과가 없더라는 또 다른 한 가지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느 쪽에 가깝습니까?

 

오늘 복음말씀은 사람의 삶에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기적을 두 가지로 전합니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했지만 다음 순간에는 살아났으니, 실제로는 죽지 않은 소녀의 이야기와 병을 오랫동안 앓던 여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은 죽지 않으려고 하고, 아프지 않으려고 합니다, 혹시나 죽을 때가 찾아왔다고 느낀다면 생명을 연장하려고 하고, 아프면 나으려고 애씁니다. 누구나 사정은 같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사람이 하는 그 생각과 실천이 얼마나 옳은지 또 그 시도가 얼마나 성공할지를 짐작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었다고 했던 소녀를 두고, 예수님은 그 소녀가 죽지 않았고 자고 있다고 했으니, 무엇이 잘못된 판단이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처럼 보려면, 세상에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소녀의 집을 찾아가던 예수님의 뒤에서,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어 병이 낫고 고통에서 탈출하게 된 여인이 가졌던 자세도 같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일을 대하는 자세에는 긍정의 자세와 부정의 자세가 있습니다. 당연한 소리이지만, 긍정적인 자세가 사람의 삶에 좋은 결과를 맺을 것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자세를 떨치지 못하는 것이 사람이 가진 한계이기도 합니다.

 

세상에 통하는 불변인 진리의 한 가지는 다른 사람의 설득이나 말로써 내 삶의 자세가 바뀌지는 않는다는 일입니다. 이 말의 뜻은 세상의 내 삶이 달라지게 만드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나의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내 삶의 변화를 위해서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내 삶을 바꾸는 것은 내가 가진 자세와 행동입니다. 이러한 논리를 모를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 자세를 어떻게 갖고, 그때 나는 어떤 행동을 할 것이냐는 것은 결국 내가 결정하는 일입니다.

 

첫째 독서로 들은 지혜서의 말씀은 하느님께서 세상에 하신 일을 알아본 뛰어난 지혜를 가졌던 사람의 판단입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맞이하는 죽음과 삶의 힘겨움은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 아니고, 하느님은 살아있는 자들의 멸망을 바라지 않으셨다고 지혜서는 말하고 있으니, 우리의 삶에 그 불편한 것들이 함께 하게 된 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과학의 발전이라는 놀라운 능력을 앞세워, 하느님의 업적인 창조를 인간의 시각으로 바꾸어 본 이후에, 사람들은 아주 작은 초미립자(超微粒子/ 지름 100만분의 1mm에서 1만분의 1mm 정도의 극히 미세한 입자>의 세계와 그 크기가 크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우주(宇宙/<>모든 천체를 포함하는 전 공간)를 인간을 중심으로 보고 해석했습니다. 그 결과 인간의 눈앞에서 하느님은 사라졌고, 그렇게 해서 인간은 얼마나 행복해졌느냐는 것입니다.

 

사람은 행복의 추구를 삶의 목적으로 한다는 경제학의 이론에서, 사람이 하느님을 내 눈앞에서 밀어내고 쫓아낸 다음, 사람은 행복에 가까워졌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안타깝고도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우리의 삶에서 없어지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두 번째 독서인, 코린토후서의 말씀은 우리의 행동을 통하여 하느님의 업적이 세상에 펼쳐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세상에 실현되는데 인간이 얼마나 도울 수 있을까요? 사람이 행복해지는데, 하느님을 빼고 인간의 힘만으로 얼마나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인간은 뛰어난 존재입니다. 삶에서 하느님을 밀어낼 수 있고, 만물의 최고의 존재라는 자리까지 차지했지만, 영원히 살 수는 없는 그 존재가 실제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삶을 바꾸는 믿음의 힘을 함께 생각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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