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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터를 찾아: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수화 교실 - 손으로 나누는 따뜻한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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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9-17 ㅣ No.87

[배움터를 찾아]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수화 교실


손으로 나누는 따뜻한 대화

 

 

소리를 듣는 힘이 약하거나 들을 수 없는 사람들, 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면서 말도 못 하게 된 사람들, 청각 장애인은 현재 34만 명에 이른다. 그들은 어떻게 대화를 할까?

 

 

수화 교실 1, 명동성당 기초반

 

지난 8월 4일 오후 7시, 어둑어둑해질 무렵, 서울 명동성당 뒤편 구 계성여고 내 성지관 107호에 하나둘 사람들이 모여든다. 이곳에서는 목요일과 금요일마다 수화 교실이 열린다.

 

수화가 ‘눈으로 듣고, 손으로 말한다.’더니 침묵 속에서 드리는 ‘주님의 기도’가 경이롭다. 함께한 10여 명 수강생의 손짓이 분주하다.

 

“손에 힘을 빼세요. 방향과 모양에 유의하면서 정확하게 표현하세요.”

 

강사는 농아선교회 회장 정종옥 알베르타 씨. 농아(소리를 듣지 못하는 농인과 말을 하지 못 하는 아자를 합한 말로 청각 장애인과 언어 장애인을 아울러 이르는 말.)인 정종옥 씨는 “수화를 배우면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것이니 어려워도 틀려도 열심히 기쁘게 배웁시다.”라며 수업을 쉽고 편안하게 이끈다.

 

“낯선 언어잖아요. 많은 연습 없이는 능숙하게 할 수 없지요.”

 

청각 장애인의 소통 언어인 수화를 배운다는 것은 ‘건청인’(듣고 말하는 것이 자유로운 사람.)에게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꾸준한 연습과 함께 서로 다름을 인정하며 소통하려고 애쓰는 마음이 필요하다.

 

수화를 배우고 있는 나주연 체칠리아 씨(서울 삼각지본당)의 소감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수화를 배우고 싶었는데 배울 기회가 생겨서 너무 좋아요. 소리 없이 대화한다는 게 어렵지만, 선생님이 청각장애인이라서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수업이 따듯하게 느껴져요. 열심히 배워서 봉사 활동에 많이 참여하고 싶어요.”

 

윤초록 가브리엘라 씨(명동본당)는 수화 교실이 활력소라고 말한다. “재밌고 즐거운 배움터예요. 직장 생활에 피곤한데 와서 선생님 뵙고 배우고 나면 피로가 풀려요. 수화를 배우면서부터 표정이 풍부해졌다는 얘길 많이 들어요. 즐거운 소통법을 배우고 좋은 데 쓸 수도 있으니 뜻깊은 일인 것 같아요. 그들이 필요로 할 때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친구가 되어 드리고 싶어요.”

 

 

수화는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

 

청각 장애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청각 장애인의 고통은 건청인들과 소리로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에서 시작된다. 청각 장애는 그래서 ‘사회적 장애’다. 청각 장애인들은 화재 경보를 듣지 못해 피해를 보기도 하고, 관공서나 병원, 경찰 조사나 법원 재판 과정에서도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손해를 입기도 한다.

 

그렇지만 적당한 ‘의사소통’의 방법을 사용하여 청각 장애인과 건청인이 대화할 수만 있다면 장애는 극복되고, 어려움 없이 함께 일하며 친교를 나눌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수화는 청각 장애인들이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하고 절실한 의사 표현 방법이다. 소통의 도구이며 건청인이 청각 장애인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수화는 하느님께서 농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고 했다.

 

“청각 장애인들은 손으로 말을 해요. 그래서 손은 단순한 손의 기능을 넘어 혀를 대신하는 중요한 구실을 해요.” 수화봉사자 원순희 루피나 씨는 수화가 손으로 표현되는 언어인 만큼 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농아선교회 전 회장으로 농아인 강명옥 데레사 씨는 “눈과 손은 하느님께서 주신 큰 선물”이라며 “부족하지만 그래도 행복하다.”고 했다.

 

 

가톨릭 수화를 배우는 수화 교실

 

청각 장애인들이 의사를 전달하고자 사용하던 ‘자연적 수화’를 정형화된 언어, 곧 수화로 만든 이는 18세기 프랑스의 에페 신부(1712-1789년)다. 우리나라는 미국의 장로교 선교사 셔우드 홀 여사가 1909년 평양 맹아학교에 농아부를 설립해 한국 최초로 농아 교육을 했다. 1957년 10월 10일에는 서울 돈암동성당에 농아부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수화는 손짓이나 몸짓, 표정 등으로 말의 뜻을 형상화하기에 우리말의 구조나 의미, 문법과는 다른 ‘또 다른 한국어’다. 국회는 수화 언어를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고유한 공용어로 인정하는 ‘한국수화언어법’을 2005년 12월 31일 통과시켰다.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사는 청각 장애인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첫걸음은 수화를 배우는 것이다.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도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과 명동성당에서 수화 교실을 열고 있다. 다른 수화 교실과 다른 점은 가톨릭 수화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수화는 언어이기에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다르다. 개인적인 성향, 특히 그리스도교 안에서도 조금씩 다를 수 있다.

 

“예컨대, ‘아브라함’은 수염이 있기에 ‘수염이 길어’라고 하기로 정해요. 그런데 수염이 긴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까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고 덧붙이죠. 그게 약속이며 우리끼리 공유하는 가톨릭 수화인데, 그걸 배우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지요.” 자원봉사부 분과장 안경이 체칠리아 씨의 설명이다.

 

수유동에서는 화요일과 목요일 오후 8시에, 명동에서는 목요일과 금요일 오후 7시에 수화 교실이 열린다.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의 각 과정은 3개월. 한때는 100여 명이 수강했는데 요즘은 무료로 수화 교육을 하는 곳이 많아 강좌마다 10여 명이 함께한다.

 

기초반에서는 수화의 정의부터 지화와 지숫자, 그리고 기본적인 단어들을 배운다. 기초반을 끝내면 청각 장애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청각 장애인의 신앙생활

 

수화는 소리 없이도 들을 수 있게 해 청각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더 풍요롭게 해 준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많은 불편과 어려움이 따른다. 수화 통역이나 전례용 스크린이 없다면 미사를 보기 힘들고, 고해성사나 교리 등 일상적인 신앙생활에도 참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011년 인천교구에 청각 장애인 성당인 청언성당이 문을 열었다. 그렇지만 수화 미사를 하는 본당은 많지 않다. 농아인 사제 박민서 신부가 미사를 봉헌하는 서울농아선교회 성당에는 주일마다 몇백 명의 청각 장애인 신자가 협소한 공간을 가득 메운다. 동병상련의 마음을 나눌 존재를 찾아 곳곳에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지난 8월 6일 오후 2시 수화 미사에 참여했다. 온 세상이 일시적으로 음 소거가 된 것 같다. 오로지 수화만이 가득하다. 사제와 해설자, 독서자, 그리고 회중석의 신자들 모두 수화로만 말한다.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이한 서울농아선교회의 청각 장애인 성당은 내년 12월이나 2019년 초에 완공된다.

 

 

수화 교실 2. 수화 통역 봉사자들

 

우리의 언어와 청각 장애인의 언어는 다르다. 그래서 ‘중개자’ 역할을 하는 수화 통역사가 필요하다. 농아선교회에도 미사 시간에 수화 통역을 하고, 청각 장애인들의 활동에 함께하는 등 수화 통역 봉사자가 40여 명 활동한다. 짧게는 6년, 길게는 20여 년의 경력을 가진 이들이다. 8월 8일 저녁 8시 이들의 수화 교실에 참여했다.

 

강명옥 씨가 진행하는 강의는 활기가 넘치지만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농식’ 수화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드디어 신혼집을 장만했어요.”를 농식 수화로 표현하려면 ‘도착하다+합격(드디어), 결혼+집(신혼집), 사다+끝(장만했다)’을 차례로 해야 한다.

 

수화도 언어이기에 이러한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수화에는 존대어가 따로 없이 간단히 얘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므로 윗사람과 얘기할 때는 표정과 공손한 자세로 표현한다. 조사가 있긴 하지만 사용해도 잘 알아듣지 못한다. 건청인이 쓴 책을 청각 장애인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언어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요 단어를 먼저 말하다 보니 주어, 목적어, 서술어의 순서가 바뀌는 경우가 많다. 도치법도 많다. “왜 여름을 좋아하세요?”는 ‘여름 + 좋아 + 왜?’라고 한다.

 

“수화하려면 눈을 맞춰야 한다. 표정이 중요하다.” 수화 교실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청각 장애인들은 대화할 때 표정이 풍부하다. 표정이 중요한 의미 전달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표현할 때는 표정도 맛있다고 느낄 수 있게 해야 해요. 표정만으로도 다 표현할 수 있어요.” 정종옥 씨의 말처럼 부사와 형용사의 기능을 표정이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손짓에 표정을 더함으로써 수화의 표현력이 풍부하고 분명해진다.

 

“청각 장애인은 ‘다른 말’을 하는 사람이지 말을 못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라도 기본적인 수화 열 개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청각 장애인들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거예요. 그럴 때 차별도 없어질 거고요.”

 

청각 장애인의 언어인 수화를 배운다는 건 그들과 함께하려는 마음이요 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다. 더 나아가 내 삶이 즐거워지는 배움이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는 수화, 서로 눈을 바라보고 마음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는 수화. 누구나 수화를 하게 된다면 청각 장애는 더는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다.

 

문의 : ☎ 02-995-7394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경향잡지, 2017년 9월호, 글 · 사진 김민수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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