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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미디어 시대, 생명과 책임의 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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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26 ㅣ No.1399

[새로봄] 미디어 시대, 생명과 책임의 성교육

 

 

“혼자가 좋으니까”(피임약 광고)

“5박 시 1박 무료”(숙박 어플 광고)

 

처음에는 그 등장이 살짝 놀랍기도 했던 ‘피임약’과 ‘숙박 어플’의 TV 광고가 이제는 더 이상 놀랍지 않다. TV를 통해 자주 접하다보니 어느새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광고가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들 광고의 등장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에 개방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한때 한 연예인의 혼전 순결 서약이 화제가 되면서 큰 관심을 끌었다. 이 역시 혼전 순결을 지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라는 방증이라 하겠다. 지난 3월에는, 한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신입 여대생을 대상으로 기획한 성교육(자유 성관계, 자위하는 법, 낙태 찬성 등)을 진행하고자 가톨릭계 대학에 대관을 신청했다가 취소된 사건이 보도되었다.

 

학교 측은 “자유 성관계와 피임 만능주의를 주장하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단체에 강의실을 빌려주는 것은 그리스도교 건학이념에 벗어난다”며 취소 사유를 밝혔다. 이에 모임 주최 측은 “자유로운 성관계가 왜 문제인지 알 수 없고, 피임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아 낙태로 내몰리는 여성들이 있기 때문에 안내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자유 성관계와 낙태를 찬성하는 페미니스트 모임의 성 의식과 가치관은 어디에서 왔을까? 사회·경제·문화적 요인 등 다양한 영향을 받았겠지만, 대중문화나 대중매체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매체는 피임약이나 숙박 어플 광고처럼 처음에는 생소했던 것을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게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혼전 순결 서약처럼 주위를 환기하기도 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우리 사회는 성에는 개방적이나 아직 올바른 성적 가치관을 확립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성교육도 자리 잡지 못하였다. 생명보다는 쾌락 위주의 성 의식이 만연하고 피임을 자유 성관계의 해법으로 여기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미디어 시대에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식별력)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생명·책임·인격의 성교육을 하고 있는 ‘사랑과 책임 연구소’ 이광호(베네딕토) 소장을 만나 그 답을 들어 보았다.

 

 

미디어를 통해 학습되는 성

 

“대학에서 강의할 때 결석이 잦은 여학생들이 있었고, 그들을 면담하는 과정에서 상당수가 낙태를 해서, 또 그 후유증(하혈 등)으로 정상적인 학교생활이 어려웠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국어문법론 박사로 대학 교수의 길을 걷던 이광호 소장이 전공과 직업을 버리고 매체 철학에 기반을 둔 성교육 연구와 강의를 하게 된 계기다. 학생들이 낙태에 쉽게 노출돼 있음에 놀랐고,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마음 아팠다.

 

“학생들은 낙태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한 채 학자로서의 제 살길만 도모하는 건 신앙인으로서 제 양심이 허락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학자로서의 길을 접고, 왜 아이들이 성관계라는 문턱을 쉽게 넘고 생각지도 못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인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성 의식이 형성되는 데는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이광호 소장은 다양한 원인 중에 미디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크다고 판단하여 대중문화를 분석했다.

 

“청소년의 90%가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초고속 인터넷이 안방에까지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은 미디어를 통해 강한 성적 자극이 담긴 상품들을 쉽게 접하고, 이러한 상품 속의 왜곡된 성을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포르노그라피 소비량이 전 세계 1위입니다. 침투력 강한 대중매체를 통해 대중문화와 포르노 그라피가 쾌락 중심의 왜곡된 성을 청소년들에게 교육하고 있었던 겁니다.”

 

 

피임 교육에서 생명과 책임의 교육으로

 

“우리나라의 성교육은 대부분이 피임 교육입니다. 콘돔 사용법 등을 가르치죠. 이 점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고민했다. 그리고 연구했다. 대중매체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왜곡된 성교육을 받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현실적으로 필요한 성교육은 무엇인지를, 피임 교육만이 아닌 성교육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기본에서 시작하니 핵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남녀가 성적으로 결합하면 생명이 생긴다. 따라서 성교육의 첫 번째 주제는 ‘생명’ 교육이어야 한다. 생명이 생기면 그 생명을 돌봐야 하니 ‘책임’ 교육이 뒤따라야 한다. 남녀가 책임을 다하려면 인격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파트너십이 있어야 하니 ‘인격’ 교육이어야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성에 대해서 쾌락만 보여 줌으로써, 성관계만 하면 낭만적인 삶을 살 수 있고 행복해진다는 것만을 보여 줌으로써 성 의식을 왜곡시키는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광고 등의 대중문화와 미디어가 성에 대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체계적으로 알고 깨닫게 해 주는 교육이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즉 ‘식별력 교육’이다.

 

“성교육은 생명 교육, 책임 교육, 인격 교육, 그리고 식별력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디어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제대로 식별하고 사용할 수 있다면 긍정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성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교육 강의를 했다. 반응이 좋았고 강의 요청도 쇄도했다. 하지만 혼자서 그 모든 것을 해낼 순 없었다. 그래서 식별력 중심의 성교육을 위한 교육자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해 교육자 양성에 힘썼다. 학교에서 성교육을 맡고 있는 보건 교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경기교육청에서 보건 교사 직무 연수에 이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올해는 서울, 인천, 울산, 강원 등 전국의 교육청 보건 교사 직무 연수에 도입될 예정이다.

 

 

자유 성관계와 피임 만능주의, 왜 문제인가

 

“처음에는 콘돔만 사용하였지만 성관계가 반복되면서 불안감은 커졌고 피임률을 높이기 위해 피임약을 복용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먹어야 하고 하루라도 안 먹으면 효과가 감소한다고 했다. ‘스스로 몸을 지키자’는 생각에 시작했는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피임약을 먹는다는 걸 안 남자 친구는 콘돔을 사용하지 않았다. 억울했다. 남자 친구가 나를 자신의 성적 욕망의 도구와 노리개로 이용하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았기 때문이다”(대학생 K 양의 글).

 

이광호 소장은 말한다. “성인이 되었으니 자유 성관계하겠다면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00% 완벽한 피임은 절대 없습니다. 콘돔과 피임약을 완벽하게 사용해도 성관계를 자유롭게 하다 보면 임신은 필연적으로 하게 됩니다. 콘돔과 피임약을 함께 사용해도 임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관계를 갖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할 겁니다. 또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자 친구가, 피임이 실패했을 경우 자신과 그 생명을 책임질 수 있을 만큼, 자신과 깊은 인격적 신뢰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 교회, 사회가 함께 나서야

 

청소년과 청년들이 왜곡된 성 의식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에 올바른 성 의식이 자리 잡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협력해야 한다.

 

이광호 소장은 “부모들, 특히 신자들은 이런 문제에 우리 아이는 절대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버리십시오”라고 말한다. 아니라고 부정하며 외면하기보다 이런 시대에 자녀가 어떠한 성적 가치관을 갖고 지내는지에 관심을 두고 이 문제에 대해 함께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연애하면 성관계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또래들의 압력 때문에 성관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광호 소장은 말한다. “또래 압력이 성관계를 하라는 쪽으로만 작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미국은 순결 교육과 피임 교육이 50 대 50입니다. 교육을 통해 생명·책임·정결의 길을 가겠다는 청소년이나 청년 그룹을 양성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일학교나 학교 등에서 이러한 그룹을 만들고 지지함으로써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광호 소장은 책임의 성교육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사회제도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도 강조한다. “책임의 성교육이 실현되기 위해서 그에 맞는 법, 특히 미혼부 책임법(임신시키면 남자가 끝까지 아이를 책임지는 법)이 있어야 합니다. OECD 국가들에는 이미 있는 법입니다. 미성년자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되지요. 이 법이 가능한 한 빨리 만들어지길 바랍니다.”

 

* 이광호 소장은 서울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으로 생명·책임·인격의 성교육을 하고 있다. 저서로 《청소년들에게 보내는 사랑과 책임의 성교육 편지 1》, 《부모와 교육자가 알아야 할 깨달음의 성교육》이 있다.

 

[성서와함께, 2017년 5월호, 이기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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