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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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연극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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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6 ㅣ No.795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연극 ‘Alone’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



- 연극 ‘Alone’의 한 장면.


‘Alone’, 단독이라는 상태를 서술하는 무채색의 단어라는 게 사전의 설명이다. 단독의 상태는 뭐냐, 혼자를 의미한다. 이러한 연극의 제목만 보면 기획의도와는 상관없이 ‘혼자인 사랑의 무지 슬픈 이야기구나’라고 짐작할 수도 있다. 사실은 혼자이고 싶었던 사람의 무지 행복한 이야기이지만.

이 연극의 주인공 만화가 연수는 옛 사랑의 미련에 사로잡혀 10개월째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자의적 히키코모리족’이다. 다른 남자 때문에 떠난 옛 사랑은 연수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 영상으로 나타나 웃기도 하고 토라지기도 하고 다정히 말을 건네기도 하며 하루 온종일 연수와 산다.

이런 연수에게도 친구가 있다. ‘자신이 싫어하는 현실을 보지 않기 위해 속마음을 겉모습이라고 합리화’시키는 병에 절어있는 연수에게 찌질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미자다. 미자는 연수 곁을 맴돌며 온갖 뒤치다꺼리를 도맡아 하고 소개팅을 주선하고 클럽에까지 끌고 간다. 미자가 제공하는 모든 것에 관심 없는 연수는 클럽의 시끄럽고 낯선 분위기를 피해 혼자 도망쳐 나온다. 이 연극의 명품씬은 도망친 연수를 뒤쫓아 온 미자의 광분에서 시작된다.

“날 그런데 혼자 둬? 네 눈에는 내가 여자로 안 보이니, 나 무서웠단 말이야, 나도 그런덴 처음이란 말이야.” 미자는 펄펄 뛰고 소리 지르고 운다. 연수는 피하다가 변명하다가 지칠 대로 지친다. “미안해, 제발 날 이대로 내버려 둬!” 동굴 밑바닥에서나 들릴 법한 공허한 목소리다. 그 순간이었다. 미자가 연수의 입술을 덮친 건. 미자는 “미안해 미안해” 소리를 지르며 연수의 입술을 박박 닦아주고 달아난다.

멍하게 서 있는 연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린 관객들의 가슴이 미자로 인해 훈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비로소 사랑이 바로 제 옆에 있었음을 안 연수가 히키코모리 딱지를 떼는 순간이었다.

50석의 작은 공간도 채우지 못한 연극 ‘Alone’은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이러한 의도는 극 전체에 영상을 적극 활용한 최종찬 연출과 극작 김결의 맑은 시선, 젊은 배우들의 때 묻지 않은 연기로 아름답고 명쾌하게 드러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한다는 일은 ‘참 이상한 일’이다. 아니 사랑이란 게 원래 이상한 거다. 가장 이상한 건 사랑에 빠져 제 스스로 숙주가 되는 미친 짓들이 끊임없이 벌어진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해 확실한 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참아내고 견딘다. 사랑은 참고 기다리고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모든 걸 덮어주고 모든 걸 견뎌낸다. 정말 이상한 일이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다. 없어진 다음에야 펄펄 뛰지 말라. 지금 내 옆의 사람을 소중하게 껴안을 일이다. 싼값에 흔하게 있는 그 사람, 바로 그 사람을.

*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
뮤지컬 ‘서울할망 정난주’ 극작가이자 배우로서 연극 ‘꽃상여’ ‘안녕 모스크바’ ‘수전노’ ‘유리동물원’ 등에 출연했다.

[가톨릭신문, 2015년 2월 15일, 
이원희(엘리사벳ㆍ연극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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