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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신앙으로 현대문화읽기: TV - 불신의 지옥은 드라마에만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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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5-02-10 ㅣ No.793

[신앙으로 현대 문화 읽기] TV


‘불신의 지옥’은 드라마에만 있는가



SBS 드라마 ‘펀치’ 한 장면.


드라마가 가정불화나 사회악을 다룰 때 으레 따르는 비판론이 있다. 현실을 너무 비관적으로 묘사한다, 갈등을 과장한다는 얘기다. 이런 말들이 요즘은 무색해지는 분위기다. 드라마에나 있는 줄 알았던 사건을 뉴스에서 접하는 일이 잦아진 탓이다.

최근의 사회 비판 드라마인 ‘펀치’(SBS)도 그렇다. 37세에 뇌종양으로 죽어가는 비리 검사 박정환(김래원)이 검찰의 악인들과 대적하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허상이라는 고정관념을 비웃듯, 박경수 작가는 극 중 사건들을 낱낱이 현실에 대입한다.

정환의 딸은 유치원 버스 안에서 차량 급발진 사고를 당한다. 어린이들의 사고, 그 원인인 부실 차량 생산, 자동차 회사의 대량 해고, 내부고발자의 죽음은 세월호 참사와 쌍용차 사태를 연상시킨다. 검찰총장 이태준(조재현)은 재벌 계열사의 바지사장인 형을 매개로 부를 축적하고, 법무부 장관 윤지숙(최명길)은 아들의 병역비리를 알고 있는 검찰총장과 적대적으로 공생하다 자멸한다. 금융회사 실소유주 논란, 대학교수의 성추행, 정치인 가족의 취업 특혜 등을 암시하던 드라마는 현실을 예측하기도 한다. 1월 20일 방송에서 검찰총장의 오른팔인 부장검사가 재벌의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는 설정이 나왔는데, 바로 그날 실제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받은 판사가 구속된 것이다.

물론 진실과 선의 실마리는 존재한다. 원칙에 충실한 정환의 아내 겸 동료 검사 하경(김아중)은 남편의 엇나가려는 양심을 깨우는 인물이다. 마약성 진통제에 의존하던 정환이 아내가 준 박하차를 마시며 통증을 견디는 장면은 거짓 위안과 결별하고 현실을 직시함을 상징한다. 자신은 기찻길 옆 낡은 집에 살지언정 딸은 강남 아파트에 살며 국제학교 인맥을 쌓게 하고팠던 그는 낡은 방에서 딸을 품에 안고 잠드는 행복을 알게 된다. 병역비리에 가담한 의사가 유언처럼 남긴 고백은 진실을 선택한 아들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다.

그러나 드라마의 무게중심은 가족의 행복보다 악인들의 이전투구에 실려 있다. 특히 정의 실현으로 보이는 일들이 이기심이나 불순한 동기에서 비롯됐다는 설정이 뼈아프다. 정환이 자신과 한패였던 이태준 일당과 맞서기로 결심한 것은 정의에 눈떴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뇌수술을 받는 사이 그들이 아내에게 살인 누명을 씌웠기 때문이다. 내부고발자 살해의 진실을 폭로하려던 여검사의 계획은 실은 본인의 정계진출을 위한 포석이었다. 장관은 당장의 잘못은 훗날의 정의로 갚으면 된다며 권력욕을 합리화하고, 검찰총장은 스폰서였던 재벌 회장을 적발해 양심의 아이콘으로 변신한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인물들은 상대의 위선과 탐욕의 언어를 따라 하며 서로 닮은 괴물들이 되어간다.

자기 죄를 덮으려 남의 약점을 폭로하는 가상 인물들의 위선은 범죄와 비리 수사에 관한 뉴스를 보면서도 ‘무엇을 덮으려고 그러냐’며 의심하는 것이 당연해진 현실과 무관한가. 눈앞의 동지조차 믿지 못해 불안하고 선한 행위의 동기마저 의심스러운 ‘불신의 지옥’은 과연 드라마에만 있는가.

* 김은영(TV칼럼니스트)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경향잡지 기자를 거쳐 미디어부에서 언론홍보를 담당한다. 2008년 <매거진T> 비평 공모전에 당선된 뒤 <무비위크>, <10아시아> 등에 TV 비평을 썼고, 2011년에 단행본 <예능은 힘이 세다>를 냈다.

[가톨릭신문, 2015년 2월 8일, 
김은영(TV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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