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 (목)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기도 배움터: 아이들은 겉으로 떠들고 어른들은 마음속으로 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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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7 ㅣ No.779

[기도 배움터] 아이들은 겉으로 떠들고 어른들은 마음속으로 떠든다?

 

 

초등부 주일학교 아이들과 미사를 봉헌하다 보면 얄미울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미사를 봉헌하는데 자기 친구들과 이야기하느라고 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꿀밤이라도 주려고 신부님이 무슨 얘기했느냐고 물으면 신기하게도 제가 한 이야기를 잘도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어른들과 미사를 봉헌하면 어른들은 집중은 잘 하시지요. 그런데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잘 못하시더라구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기억력이 떨어져 가는 문제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속이 시끄러워서 잘 못 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인 것 같습니다. 성체조배를 한다든가 묵상을 해 보신 분들은 마음이 시끄럽다는 이야기를 금방 알아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침묵이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요. 소리기도에만 너무 익숙해 있고 젖어 있는데 반해, 침묵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데는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요.

 

안토니 블룸 총대주교님은 「기도의 체험」이라는 책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만한 아주 놀라운 체험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제서품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성탄절 무렵에 양로원에 가서 미사를 봉헌하는데, 102세 된 할머니께서 미사 후에 자신에게 와서 물었다고 합니다.

 

“신부님, 기도에 대해서 좀 가르쳐주시겠습니까? 이제까지 기도에 대해 안다고 이름난 사람들에게 물어보곤 했습니다만, 실제로 도움이 될 만한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102세나 된 할머니가 젊은 새 신부에게, 그것도 이름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니, 이 신부님은 용기가 필요했겠지요. 용기를 내서 할머니께 물었습니다. “할머니, 문제가 무엇입니까?” “지난 14년 동안 예수기도를 해왔습니다만 하느님의 현존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하고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새 사제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할머니만 계속 말씀하고 계시니까 하느님께서 말씀하실 틈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새 사제는 다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아침 식사 후에 바로 방에 들어가셔서 안락의자를 어두운 곳에 놓으십시오. 그리고 성화 옆에 조그만 등불을 켜고 가만히 앉아서 살고 계신 방을 둘러보십시오. 그 다음에 뜨개질할 것을 가지고 하느님 앞에서 15분 동안만 뜨개질을 해보세요. 절대로 기도를 하시면 안 됩니다. 그저 뜨개질만 하시면서 방 안에서 평화롭게 앉아 계십시오.”

 

얼마 후에 그 할머니를 다시 보았을 때 새 사제가 물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해보셨습니까?”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신부님이 하라고 하시는 대로 했지요. 일어나서 세수하고 방을 정돈한 다음에 아침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15분 동안 안락의자에 앉아서 아무 일도 안 해도 좋으니 참 좋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무척 조용하고 평화로운 그 방에서는 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만 들렸는데, 그 소리가 분심이 되기는커녕 그 소리 때문에 모든 게 더 평온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고는 하느님 앞에서 뜨개질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나는 점점 더 침묵을 의식하게 되었습니다… 이 침묵이 단순히 소음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이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침묵 안에 어떤 깊이와 풍요로움이 있었고, 그것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습니다. 주위의 침묵이 내 안에 있는 침묵과 만나기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이 할머니는 명상적 침묵 속에 어느 정도 있다가 생각이 흩어지기 시작하면 소리기도를 하고, 또 다시 마음이 평온해지면 침묵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곤 했다고 합니다.

 

침묵은 하느님께 귀 기울이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의 주변 환경과 마음속이 지나치게 시끄러우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밖에서 누군가와 큰 소리로 다투고 나서 침묵 가운데 머무는 것은 쉽지 않지요. 또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움의 마음을 가득 담고 침묵 가운데 머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침묵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침묵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의 외적인 주변 환경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과 함께하기 위해서 자리를 정돈하고 앉는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지는 않습니다. 또 차분히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분심이 일어나기도 하지요. 이러저러한 생각과 상상들이 우리의 마음속을 시끄럽게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미처 해결하지 못했던 일에 대한 좋은 해결방안이 갑자기 떠오를 수도 있겠고, 또 하루를 지내면서 생겼던 일들이 나를 둘러싸기도 합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기도 중에 분심에 휩싸일 때 어떻게 해야 이 분심을 떨쳐내고 다시 침묵 가운데 하느님과 함께 온전히 머물 수 있겠는가? 이러한 분심, 잡념에 휩싸일 때 그것에 무관심한 것이 좋습니다. 그 분심, 잡념을 잠재우려고 애를 쓰며 어떤 노력을 하거나 그것을 치워버리려고 우리가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 속에 관여하게 된다면 그 문제는 점점 더 커지고 깊어져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떠오른 분심, 잡념을 바라보고 그냥 흘려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거기에 마음을 주지 않고 그냥 바라본다면 그것은 점점 힘을 잃고 결국에는 우리의 기도를 방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침묵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자리에 앉아 있는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라 훈련이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이 시기를 지내야 고요한 침묵 가운데서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 달 동안 이런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묵상

 

+ 먼저 내가 기도하는 공간을 좀 차분하게 정리합니다.

 

+ 하루의 삶을 고요하게 만듭니다. 큰 소리를 내거나 다른 이들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 십자성호를 긋고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머무는 시간을 갖습니다. 가능하다면 15분 정도 머물러 보세요. 분심 잡념에 휩싸일지라도 그것을 흘려보내면서 그 시간을 유지하세요. 그것이 침묵 가운데서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게 되는 우리의 감각을 키워 줄 것입니다.

 

* 최규화(요한 세례자) 신부는 2000년 사제 수품 후, 2009년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교의 신학)를 취득 하였다. 현재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로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외침, 2016년 3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최규화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교의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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