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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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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총회 현장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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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79

[현장취재]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총회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총회가 충남 연기군 전의면에 있는 대전가톨릭대학교와 정하상 교육회관에서 지난 8월 17일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23일까지 6박 7일 동안 개최되었다.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총회에는 개최국인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만, 라오스-캄보디아, 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 인도네시아, 일본, 태국, 파키스탄, 필리핀 등의 회원국과 네팔, 동티모르, 마카오, 몽골, 카자흐스탄, 홍콩 등의 준회원국 주교회의 대표자들이 참가하였다.

 

이 밖에도 교황청과 미국, 호주, 독일 등에서도 참석했는데, 총 22개 아시아 국가에서 181명이 참석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신원별로는 추기경 6명, 대주교 24명, 주교 56명, 신부 29명, 수도자 11명(수사 3명, 수녀 8명), 평신도 56명(남성 29명, 여성 27명)이 참석했다.

 

 

가정은 사목의 대상이 아니라 복음화의 가장 효율적인 주체

 

한국 주교회의 의장 최창무 대주교는 개막 미사 강론을 통해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이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논어』의 유명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환영사를 시작했다. 최 대주교는 곧이어 가족 형태의 급격한 변화, 저출산·고령화와 이혼율의 증가, 성개방의 만연 등 한국 가정을 위협하는 요소들을 언급하고, 이런 현상이 아시아 사회 안에서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든 사회적 문제는 가정에서부터 출발하며, 가정문제에는 경제적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것은 가정뿐 아니라 교회에도 해당될 수 있는 것으로 교회가 하느님 말씀을 더욱 생활의 중심에 둘 때, 이를 실천하는 그리스도교 가정 역시 늘어날 것이라고 최 대주교는 강조했다.

 

이어진 기조 연설에서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차관 로베르 사라 대주교는 오늘날 혼인과 가정생활에 대한 현대의 서구적 개념이 위기에 봉착했다고 전제하면서 입법자들에게는 점점 더 전통적인 가정이 무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교회와 아시아 사회는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소중하게 제시하여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가정은 단순히 교회 사목의 대상이 아니며, 가정은 복음화의 가장 효율적인 주체라고 사라 대주교는 강조했다. 그리스도인 가정이 역사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일깨워주는 믿을 만한 표지가 될 때, 가정은 자신의 삶을 통하여 사랑의 복음을 선포하고 사랑의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함으로써 스스로의 소명과 본질적 사명을 완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개막 미사 뒤에 전체회의에서는 필리핀의 올란도 케베도 대주교가 이번 총회의 회의 자료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에 대해 발표하였다. 이 회의 문서는 지난 1월에 배포된 문서에 각국 주교회의의 의견을 반영하여 지난 8월 15일자로 수정되어 이번 총회에 제출된 것이다.

 

 

회의 자료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은 어떤 문서인가?

 

이 회의 자료의 주 집필자인 올란도 케베도 대주교는 필리핀 코타바토 대교구의 교구장으로서 필리핀 주교회의 의장,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사회위원회(OHD) 위원, 중앙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바 있으며, 2000년까지 10년 동안 교황청 정의평화평의회 위원을 역임했다.

 

2002년 말에 처음 작성된 회의 자료 초안은 전문가들(4명의 기혼 여성과 미혼 여성, 한 명의 기혼 신학자, 4명의 사제, 한명의 남자 수도자 그리고 몇몇 주교들)의 비평과 검토를 거쳐 2003년 중반에 다시 작성되었다. 그리고 2004년 1월에 각국 주교회의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사무국으로 전달되었고, 2004년 7월까지 이에 대한 각국 주교회의의 의견서가 사무국에 접수되었다. 이렇게 각국 주교회의의 의견이 반영되어 수정된 회의 자료가 케베도 대주교에 의해 발표된 것이다.

 

케베도 대주교는 이 회의 자료가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전통적 신학 방법론인 상황(situation) → 신앙 안에서의 성찰(reflection in faith) → 제언(recommendation)을 따랐다고 밝혔다. 곧 먼저 아시아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이 교회에 제시하는 문제들에 대하여 신학적 사목적으로 성찰하여, 아시아 가정사목을 위한 토대와 전망 그리고 일반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다.

 

제1부(“아시아 가정의 사목 현황”)는 엄밀한 과학적 분석보다는 기술 분석(descriptive analysis)에, 구조적 분석보다는 문화적 분석에 치중하였고, 성찰과 계획 마련을 위하여 지구적이고 지역적인 상황을 제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케베도 대주교는 말하였다. 이 회의 자료가 제시하는 아시아 가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크게 외부적으로는 세계화의 물결이고, 내부적으로는 전통의 미명으로 행사되는 가부장주의와 남성중심주의의 폐해이다. 여기서 세계화는 아시아의 낡은 전통을 쇄신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지만, 그 부정성이 더욱 크다는 것이 회의 자료의 결론이다.

 

‘문화의 세계화’, ‘아시아 가정과 가부장제’, ‘여성과 여자 어린이’, ‘어린이 노동’, ‘환경’, ‘인구 정책’, ‘분쟁의 한가운데 있는 가정’, ‘가정과 교회 기초 공동체’ 등의 소주제를 통해 변화하는 아시아 가정의 상황을 회의 자료는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총체적인 사목적 질문은, 가정사목과 아시아 교회는 위와 같은 사목적 도전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제1부에 대해 일본, 한국, 베트남, 타이완,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카자흐스탄 주교회의가 의견을 제출했는데, 이 가운데 다른 나라와 현저히 다른 예를 보인 경우는 한국과 일본이었다. 가난, 낮은 출생률, 노령 인구, 낙태, 점증하는 이혼율, 확대 가족의 약화, 유전기술에 대한 열망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카자흐스탄도 현저하게 다른 양상을 띠었는데, 그것은 약 70년 동안의 오랜 무신론적 공산주의 체제 아래서 그리스도인 가정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이번에 수정된 회의 자료에는 11번 “분쟁의 한가운데 있는 가정”에 ‘생명공학-유전기술로 위협당하는 생명’(31a-31c)을 첨가했다.

 

제2부(“신학적 사목적 성찰”)는 오늘의 아시아 현실이 교회에 부과하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도전에 응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신학적 사목적 성찰이다. 그 구조와 성찰의 요지에서 1) 혼인의 ‘목적’에 대한 일반적 이해를 전제하지만 넘어서기, 2) 상황화 : 사목 상황에 응답하고자 신학적 사목적으로 성찰하고, 3) 생명 문화, 그리고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의 주요 주제인 생명, 친교, 연대, 봉사 등의 관점에서 혼인과 가정의 ‘신학’을 정립하려고 하였다고 케베도 대주교는 말했다. 이에 따라 회의 자료는 ‘온전한 생명 문화’, ‘성소와 사명’, ‘가정 영성 : 생명문화를 향한 친교와 제자직분’ 등의 세 부분으로 나뉘어 기술되었다. 제2부에 대해 각국 주교회의는 생각이 포괄적이고 풍부하지만 더 분명한 주제의 일치가 필요하고, 하느님 나라에 대한 관점이 더욱 강조될 필요가 있으며, 혼인과 가정 사이의 더욱 분명한 구분(예를 들어 가정 영성)이 필요할 뿐 아니라, 사목 상황과의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하며, 혼종혼이 점차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에 대한 신학적 사목적 성찰이 필요하다는 등의 의견을 보내왔다.

 

제3부(“가정사목을 위한 제안”)는 가정 사목의 전망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일반지침을 제시하는 데 목적을 두었지만,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특별한 구체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것은 각기 다른 상황의 차이 때문에 해당 교구의 작업이 될 것이라고 케베도 대주교는 말했다. 회의 자료는 앞의 사목 상황과 신학적 사목적 성찰에 비추어서 아시아의 가정사목 전망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 상황을 고려하는 사목 

- 전체적인 사목 

- 새로워지는 사목 

- 신앙의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사목 

- 교육하고 힘을 주는 사목 

- 돌보고 봉사하는 사목 

- 사회변화를 증진하는 사목 

- 친교와 제자직분의 영성을 촉진하는 사목

 

 

가정과 생명의 문화를 향한 아시아 주교들의 전망 모색

 

총회 두 번째 날인 18일(수)에는 그동안 전체회의 중심으로 열렸던 총회가 지역회의 중심으로 전환하여 전날 참가자들에게 배포된 회의 문서에 대한 공동 성찰 작업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기본적으로 동아시아(한국, 일본, 대만, 홍콩, 마카오, 몽고), 동남아시아(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이사, 동티모르), 남아시아(인도, 파키스탄, 스리랑카, 네팔, 방글라데시)의 3개 지역회의가 열렸고, 지역회의 안에서 또 몇 개의 작은 워크숍들이 분화되었다.

 

세 번째 날인 19일(목)에는 애초에 계획되어 있던 일정이 대폭적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은 참가자들이 한 번 더 꼼꼼하게 개별적으로 수정된 회의 자료를 읽고, 이에 대한 묵상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오전에 각 지역회의에는 회의 자료 제2부와 관련해서 다음의 과제가 주어졌다.

 

1) 아시아 가정을 특징짓는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2) “생명 문화”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3) 부부, 가정, 사회와 관련해서 “친교와 연대”가 함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4) 제2부에서 얻은 가정의 전망은 무엇인가?

 

이 날 있은 전체회의에서는 교황청 이주사목평의회 의장인 후미오 하마오 추기경의 연설이 있었다. 하마오 추기경은 지난 5월에 발표된 훈령 「이주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초로 하여, 최근 아시아 지역에서 급증하고 있는 이주 노동 현상과 이것이 가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하고, 이에 대한 사목적 대응책을 논하였다.

 

이주 노동은 가족 전체가 이주하는 형태,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명만 이주하는 형태로 나타나는데, 어떠한 형태의 이주이건 가정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종종 미숙한 준비와 언어 장벽, 문화적 차이 등으로 위협 받게 되며, 새로운 문화에 더 빨리 적응하게 되는 자녀들과 세대 차이를 낳기도 한다. 가족이 헤어지게 되는 이주의 경우에는 부모 역할의 부재로 자녀들이 애정 결핍과 권위 부족으로 혼란을 겪게 된다.

 

하마오 추기경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이주민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용하면서 사목적 대책을 소개하였다. 곧 공통의 사목 관심사에 관하여 정보를 교환하는 데서 출발하여 출발지 교회와 도착지 교회가 서로 긴밀히 협력도록 권장하며, 주교회의에서 이주민들을 위한 사목활동을 특별 위원회에 위탁할 것을 권고하였다.

 

20일(금)에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성찰과 토론을 계속하였다. 이번 총회는 이전의 다른 총회들과 달리 성찰과 지역회의를 의도적으로 강조하였다. 오전에 지역 모임들에는 다음의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1) 이번 총회 기간에 개인적으로 얻은 유익한 통찰은 무엇인가? 2) 가정사목을 위해 얻은 유익한 통찰은 무엇인가? 회의 자료 제3부의 주제와 관련된 아시아 가정사목의 전망과 사목적 접근에 대해 지역회의가 이어졌고, 성명서 작성위원회(Drafting Committee)는 각국 주교회의의 의견과 토론 내용을 수집하여 최종 문서를 작성하였다.

 

21일(토)에는 그동안 지역회의에서 진행되었던 토론과 성찰을 종합하는 시간을 가졌고, 22(일)에는 대전교구 탄방동 본당을 방문하여 미사를 봉헌한 뒤 성지 황새바위를 순례하였다. 마지막 날인 23일(월) 오전에 폐막 메시지(아시아의 하느님 백성과 선의의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아시아 주교회의 연합회 제8차 정기총회 메시지)를 발표한 뒤 폐막 미사를 봉헌함으로써 제8차 정기총회를 마감하였다.

 

이번 총회가 가정을 주제로 다룬 것은 가정의 문제가 특정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다양한 차원의 문제들이 가정의 현실 안에서 집약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회의 자료 「생명 문화를 지향하는 아시아 가정」이 아시아 가정의 상황을 세계화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이번 총회가 아시아의 모든 주교들이 친교와 우의를 더욱 확고히 다지고, 아시아 교회가 가정을 통해 그 보편성을 확인하고, 하느님 안에서 참된 연대성을 추구하는 은총의 기회가 되기를 기원한다.

 

[사목, 2004년 9월호, 엄재중(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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