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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의 성모 성당: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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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2-04 ㅣ No.497

[세계의 성모 성당]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Basilica of the National Shrine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이번호에 소개할 성모님께 봉헌된 대성당은 미국의 워싱턴 D.C.의 북동쪽의 미시건 에비뉴 가톨릭 대학 구내에 세워져 있으며 미국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된 대성당’이다.

 

이 성당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 중 하나이며 미국과 북미에서 가장 큰 가톨릭 성당으로, 미국 가톨릭교회의 중심이며 국가적인 성당이지만 워싱턴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은 아니다. 워싱턴 대교구의 주교좌성당은 워싱턴 로드아일랜드 에비뉴에 위치한 복음사가 성 마태오 대성당이며, 케네디 대통령의 장례식이 거행되는 등 미국의 국가적인 사건들도 있었던 역사적인 명소이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대성당은 외부가 140미터 길이에 좌우 수랑을 포함한 폭은 73미터, 그리고 돔 십자가 꼭대기까지 높이는 72미터이고, 종탑의 높이 (십자가 꼭대기까지)는 100미터이다. 내부는 현관에서 중앙제대 뒷벽까지 122미터 길이에 폭 139미터의 거대한 성당이다.

 

대성당의 중앙 돔의 직경은 33미터로 미 국회 의사당의 돔보다 2피트 정도 작으나 전체 돔의 지름은 이탈리아 베니스의 성 마르코 성당 중앙 돔의 두 배 크기이다. 이 성당은 강철 및 철근 콘크리트 구조의 현대식 건축 방법이 아닌 석조 벽과 기둥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중세 성당 건축 방식을 사용하여 지어졌다. 성당 내부에는 3500석의 의자가 놓여 있으며 그 외의 공간까지 신자들이 서서 예식에 참석할 경우 모두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독립전쟁으로 건설된 미국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

 

볼티모어 주교 이자 미국 최초의 로마 가톨릭 주교인 존 캐롤(John Carroll)은 독립전쟁으로 새로이 건설된 신생국 미국을 1792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며 봉헌했다. 이후 워싱턴의 가톨릭대학교 4대 학장 토마스 조셉 샤한(Thomas Joseph Shahan) 주교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에 미국의 수호자이신 원죄 없으신 성모께 봉헌하는 국가적 성전의 건설을 제안했다. 그리고 가톨릭대학 이사회를 설득하여 가톨릭대학교 남서쪽 구석의 토지를 대성당 부지로 기증받았다.

 

1914년 1월 샤한 주교는 자신의 성당 건립 계획에 대해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뉴스 레터 Salve Regina를 발간하여 미국의 전 교구들에 배포하며 성당 건축을 위한 기부금을 모으기 시작했다. 1920년 9월23일 정부 관료 및 군대 장교들을 포함하여 약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한 가운데 볼티모어의 대주교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의 주례 하에 기공식을 거행했다.

 

이 대성당은 원래 14세기 프랑스 고딕 양식으로 디자인 되었었지만 1918년 샤한 주교와 건축위원회는 기존 가톨릭대학에 가장 잘 어울리는 스타일로 로마네스크 양식과 비잔틴 양식을 혼합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공사는 필라델피아 건축가인 존 맥샤인(John McShain)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1929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지하부분 공사 중 건축이 중단되었고, 제2차 세계 대전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공사는 훨씬 더 지연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53년 미국의 주교들은 이 대성당의 상부 교회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로 결의하면서 1954년 건설이 재개되었다. 1954년은 비오 9세 교황이 1854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교리를 선포한지 100주년 되는 해로, 성모 성년으로 선포된 해이기도 했다. 이후 공사는 계속되어 1959년에 전체 주요 공사가 마무리되어 같은 해 11월20일에 봉헌식을 거행하고 문을 열었으나 내부의 장식은 미완성 상태였다.

 

그 후 이 대성당에는 미국으로 건너온 전 세계의 여러 가톨릭계 이민자 출신 나라들의 상징적인 성모님 모습들로 다양하게 꾸며진 70개의 소성당들이 대성당의 측면과 지하실을 둘러싸고 만들어지며, 수많은 예술 작품들로 아름답게 꾸며지고 있고, 1968년 바오로 6세 교황의 삼층관이 기증되는 등 귀중한 수집품 품목이 늘어가고 있다.

 

이 대성당은 중앙 돔과 지붕들은 비잔틴 양식을 대표하는 모자이크로 장식하고 있는데, 모자이크 내부의 전체 면적이 무려 7만5545 평방피트에 달하여 베네치아의 성 마르코 대성당 보다 더 크고 넓다.

 

그리고 이 모자이크들은 가톨릭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미국적인 새로운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대성당 중앙 제대위의 앱스 지붕에는 엄위하신 그리스도를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로 묘사해놓았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가장 큰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 형상 중 하나로 4000가지 이상 색상의 유리 조각으로 만들어졌다. 천장에는 세상의 창조, 육화, 구속, 오순절 성령의 내려오심, 마지막 심판을 모자이크로 묘사하고 있다.

 

199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회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 성당에 주어지는 바실리카라는 호칭을 세계에서 36번째로 이 대성당에 수여했다.

 

 

이민 100주년 맞아 한국의 성모상 2점 설치

 

이후 2006년에는 베트남에서 발현하신 라방 성모님을 기념하는 작은 경당이 완성되었고, 2008년 4월16일에는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미국 순방중 이 대성당에 황금 장미를 봉헌했다. 2011년 6월에는 레바논의 성모님께 헌정된 새 경당을 지하에 세웠는데, Saint Maroun과 십자가의 모자이크는 6세기 Rabboula Maronite 사본을 모사한 것으로, Donald Wuerl 추기경이 기증했다. 이 경당은 2011년 9월23일 마로니트 주교 Gregory J. Mansour에 의해 정식으로 봉헌되었다.

 

2012년 10월20일에는 성 마리안 코프(Marianne Cope)와 인디언 출신 성녀 카타리나 테카크위타(Catherine Tekakwitha)의 유물을 모셨다.

 

2015년 9월23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성당을 방문하여 성당 외부 측면에 설치된 야외 제대에서 주니페로 세라(Serrania Junopero Serra)의 시성식을 위한 미사를 봉헌했다. 이때 미사에 사용된 제단, 독서대 및 의자는 대성당 내의 마감 대리석과 같은 재질로 만들어졌으며, 이 미사 후, 대성당의 대 제대 앞에 옮겨 놓고 상부 대성당의 중앙 제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대성당에는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세계 5대륙에서 가져온 건축자재로 70개의 경당들을 만들고 그 안에 세계 각지에서 모셔온 다양한 성모상들로 꾸몄으나 지금껏 한국의 성모상은 없었다. 그래서 이민 100주년을 맞아 2017년 9월 미국의 한국인 가톨릭 신자들은 두 점의 조각을 이 성당에 새로이 설치하였다.

 

- 성모님과 순교자들.

 

 

그중 첫 번째는 대성당 동쪽 회랑 문 위에 설치된 가나의 혼인 잔치로 임송자(리타) 중앙대 교수의 작품으로 성모 마리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수께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모습을 묘사했다. 이는 이민 100주년 기념 ‘한인 가톨릭의 날’ 행사의 주제였던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 5)를 표현한 작품으로 성모님과 예수님은 한복을 입고 전통 신발을 신고 있으며, 술 항아리도 전통적인 한국의 단지 형상으로 조각하였다.

 

그리고 또 한 점은 대성당 서쪽 회랑 입구 위에 설치된 최의순(요한 비안네) 서울대 명예교수의 작품으로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 양쪽으로 역시 한복을 입은 남녀 순교자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17년 12월호,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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