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백) 부활 제5주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성경자료

[구약] 성경에 빠지다45: 시서와 지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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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01 ㅣ No.6791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45) 시서와 지혜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법

 

 

- 시서와 지혜서는 하느님의 가르침에 대한 인간의 응답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콘은 시편의 저자로 일컬어지는 다윗 임금.

 

 

가톨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구약 성경 정경 46권은 오경ㆍ역사서ㆍ시서와 지혜서ㆍ예언서 순으로 배열돼 있습니다.(유다교 성경은 토라, 예언서, 성문서 순으로, 개신교 구약 성경은 오경, 역사서, 지혜서, 예언서 순) 그중 시서와 지혜서는 욥기, 시편, 잠언, 코헬렛, 아가, 지혜서, 집회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배열한 이유는 주요 인물들의 활동 시기를 순서대로 나열했기 때문입니다.

 

욥기는 고대 인물인 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편은 다윗 임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과 코헬렛, 아가는 솔로몬의 작품으로 소개되고 있지요. 이어 구약 성경 시대 말엽에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지혜서와 집회서가 배치됩니다. 시편과 욥기, 잠언, 아가는 유다교 히브리어 타낙 성경 정경에 속해 성문서로 배열돼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서와 집회서는 제1경전인 히브리어 구약성경 정경에 없어 제2경전이라고 하지요. 가톨릭 구약 성경은 시서로 시편과 아가를, 지혜서로 나머지 5권을 분류합니다.

 

가톨릭교회가 시서와 지혜서를 예언서 앞에 배열한 까닭은 구약 성경 다음으로 신약 성경이 바로 연결된다는 점과 연관이 있습니다. 메시아의 도래를 알리는 예언서들을 구약 성경 마지막에 배열해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와 직접 연결하려는 교회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전체 내용은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고, 이스라엘은 그분의 백성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유다교 신앙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이 신앙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계약으로 성사됩니다. “‘주님’께서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당신을 계시하셨고 이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셨다는 데에는 늘 일치를 보인다.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모세의 인도로 자신들을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고, 그를 통하여 계약을 체결하셨으며, 끝내 성조들에게 약속하신 바로 그 땅으로 자신들을 이끌어 가셨음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이를 경신례를 통하여 현재화시켜 나갔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처럼 유일하신 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펼쳐진 역사였으며, 이 관계 자체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었다.”(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주석 성경」 1359쪽)

 

구약 성경 중 오경과 역사서, 예언서는 이처럼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 속에서 펼쳐진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시서와 지혜서의 경우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내용이 전개됩니다. 곧 계약과 율법, 사제와 성전에 관한 관심보다 하느님을 어떻게 하면 잘 찬미할 수 있고, 참 지혜를 간구해 슬기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에 더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서와 지혜서는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라고 노래합니다.(시편 111,10; 욥 29,28; 잠언 1,7; 집회 1,14 참조) 이처럼 시서와 지혜서는 하느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더 관심을 기울입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유다인들 사이에 지혜 문학이 발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이미 유다교는 조국이나 성전, 왕조와 같은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이스라엘을 재건하겠다는 마음은 이미 없어졌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나라를 잃고 노예살이를 했지만, 율법을 통해 하느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또 역사적이고 물질적인 속박에서 벗어나 노예살이를 면하고 자기 땅으로 돌아와 비록 옛날처럼 왕국을 건설하지 못했지만 해방된 민족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에겐 어디에 사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선민이라는 의식 대신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된 사람들이란 의식이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민족이 우선이 아닌 개개인을 중시하는 풍토가 유다 사회 안에 확산됩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지혜 문학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지혜서는 인간의 지혜가 하느님에게서 기인한다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지혜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시편 104,24; 잠언 3,19), 창조된 세상 안에 내재하며 그 안에서 활동하는 하느님의 지혜는 세상과 하느님을 연결시킵니다.(잠언 8장 참조) 따라서 하느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지혜를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욥 28,28; 잠언 9,10; 집회 1,14)

 

유다인들은 바빌론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신들을 구원하고 해방시켜주실 하느님께 희망의 시를 지어 노래했습니다. 찬양과 탄원, 신뢰와 감사, 교훈 등 다양한 주제가 담긴 시편 기도는 이스라엘의 경신례에 자리 잡게 됐고, 그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도 가톨릭교회 안에서도 중요한 기도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시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 형성된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 심성을 시적 운율 안에서 결정체를 이룬 문학 작품입니다. 따라서 시서에는 구약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가 집약돼 있습니다. 그래서 시서를 특히 ‘시편을 구약 성경의 요약집’이라고 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0월 29일, 리길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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