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성극ㅣ영화ㅣ예술

영화칼럼: 영화 굿바이 - 죽음은, 선물을 포장하며 묶는 리본의 매듭 같은 것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15 ㅣ No.100

[영화칼럼] 영화 ‘굿바이’ - 2008년 감독 타키타 요지로


죽음은, 선물을 포장하며 묶는 리본의 매듭 같은 것

 

 

부제 때 동기들과 함께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실습을 참관했던 적이 있습니다. 낯선 경험을 해본다는 점에서 설레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 시신을 해부하는 모습을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밀려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관이 시작되자 이전에 가졌던 설렘과 걱정이 부끄러워졌습니다. 실습에 앞서 집도를 담당하는 교수님은 시신을 기증한 고인의 지나온 삶의 연혁을 읊어주었습니다. 이를 통해 기증자의 지난 삶의 역사와 어떠한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어떠한 지향으로 시신을 기증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 함께 시신 기증자와 기증자의 가족을 위한 기도를 바쳤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자 생면부지인 한 사람의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애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기증자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가졌을 생각과 감정을 감히 헤아려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기증자의 가족들을 향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도 갖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드러난 기증자의 장기와 피는 사람의 육신에 붙어있는 한낱 고깃덩어리처럼 여겨지거나 피칠갑이 난무한 영화 속의 잔혹한 장면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숭고했을 삶의 과정을 견뎌낸 육신의 일부이자 기증자의 삶의 역사를 함께 감내한 동반자처럼 다가왔습니다.

 

타키타 요지로 감독의 영화 <굿바이(2008)>는 저로 하여금 한 사람의 죽음을 고귀한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해부학실습 참관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도쿄에서 첼리스트로 활동하던 주인공 다이고(모토키 마사히로 분)가 본인이 속한 악단이 재정난으로 해체되자 첼리스트의 삶을 내려놓고 아내 미카(히로스에 료코 분)와 함께 자신의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이고는 고향에서 일할 직장을 구하던 중 여행사인 줄 알고 취직한 회사가 인생의 마지막 여행인 죽음을 배웅하는 전문 납관 회사임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됩니다. 얼떨결에 납관 회사의 대표 이쿠에이(야마자키 츠토무 분)에게 염습하는 법을 배우게 된 다이고는 고인의 몸을 깨끗이 닦고 단장해 생전의 모습처럼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자신의 일에 차츰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다이고의 손은 섬세하게 첼로 줄을 켜던 손에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생의 매듭을 묶어주는 손으로 거듭납니다. 하지만 아내 미카와 주변의 지인들은 다이고의 새 직업을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다이고가 굴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며 정성껏 염습을 하는 모습을 보이자, 납관사를 향한 편견으로 가득했던 이들의 시선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세상을 떠난 이가 남긴 삶의 흔적과 세상을 떠난 이를 향한 남겨진 이들의 심경을 섬세한 마음으로 가늠해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언젠가 맞게 될 ‘나의 죽음’이 낯설지 않게 다가올 것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다이고가 세상을 떠난 이들을 배웅하며 얻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며 직면해볼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생을 향한 겸손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매해 11월마다 지내는 위령성월도,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한 기도를 바치는 과정 안에서 나의 죽음을 미리 가늠해볼 수 있는 용기와 자신의 생을 향한 겸손을 깨우치도록 이끕니다.

 

[2023년 11월 12일(가해) 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서울주보 7면, 구본석 사도요한 신부(행당동성당 부주임)]



4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