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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레지오와 신앙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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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11-02 ㅣ No.711

[레지오 영성] 레지오와 신앙생활

 

 

코로나19 팬대믹으로 레지오 회합이 장기간 정상화되지 못하면서 레지오는 병상에 누운 환자처럼 조직의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가 내년까지 계속된다면 코로나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기는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레지오는 다른 어떤 단체보다도 조직에 대한 충성과 대면 접촉을 강조하는 까닭에 밀접한 접촉을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중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레지오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광범위하고도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어서 해제되더라도 후유증이 클 것으로 우려됩니다. 지금까지 성당을 중심으로 공동체와 보조를 맞추는 공동체 중심의 신앙생활에 젖어있던 신자들은 갑자기 자율적인 개인 중심의 신앙생활로 전환해야 하는 상황에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평신도의 자율적인 신앙생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던 사목자들의 태도를 기억하는 신자들은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사목 현장에서는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경향에 따라 신앙의 개인화가 확산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런데 감염병 예방을 목적으로 종교활동이 제재되면서 사목자가 성당 문을 닫고 신자를 돌려보내며 신앙생활을 개인의 자율에 맡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율적인 신앙생활을 영위할 만큼 준비된 신자가 많지 않은 현실을 알기 때문에 뒤돌아가는 신자를 바라보는 사목자의 마음은 무겁기만 합니다.

 

레지오는 회합과 사도직 활동이 중지되는 지금과 같은 시련의 시기에 조직의 기능회복만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그동안 레지오가 지향해 온 목적을 재정립하며, 평신도의 자율적인 신앙생활의 모델을 제공하는 역할을 시대적 사명감으로 자각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을 재현하는 신앙생활

 

프랭크 더프는 ‘그리스도는 내 안에 생활하신다’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레지오의 목적이 신앙생활의 모델을 확산하는데 있음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마리아 군단의 목적은 여러분들에게 레지오 시간을 통하여 ‘이상적인 생활 표준’을 익히게 하고, 그리고 여러분을 세속에 내보내어 그 이상적인 표준을 하루하루 일상생활의 시간에 적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이상적인 생활 표준’이란 신앙생활을 자율적으로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모델’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가르침과 전통은 한결같이 ‘예수님이 사셨던 지상 생활을 우리가 사는 것’을 올바른 신앙생활로 제시하고 있으며, 레지오 역시 모든 단원이 신앙생활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함께 바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

 

레지오는 우리 교회에서 사도직 활동을 위한 평신도 단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인 성화라는 목적을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프랭크 더프의 설명에 따르면 사도직 활동은 이상적인 생활 표준의 일부로서 단원의 개인 성화를 위한 훈련에 속합니다. 단원은 사도직 활동으로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훈련을 쌓고, 점차 예수님과 일치함으로써 예수님의 지상 생활을 재현해야 합니다.

 

프랭크 더프는 레지오 단원이 재현해야 할 예수님의 지상 생활의 특징을 ‘확신에 찬 힘의 생활’로 요약하였습니다. 그는 주님께서 기도 생활과 더불어 지극히 역동적인 생활을 영위하셨고, 이 역동성은 힘 있는 말씀과 더불어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으로 드러났는데, 전체적으로 확신에 찬 힘의 생활을 느끼게 한다고 보았습니다.

 

레지오는 단원에게 기도와 사도직 활동으로 일상생활을 훈련하여 이상적인 신앙생활을 익히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확신에 찬 힘의 생활’을 드러내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프랭크 더프의 개인적인 추론이나 희망이라기보다, 초창기 레지오의 경험에 근거한 결론입니다. 그는 신앙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하여 말한다면, 기적을 필요로 하고, 또 기적이 일어날 수 있도록 그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런 사람들을 위해 다양하고 비슷한 기적들이 어김없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초창기 단원들은 예수님처럼 확신에 차서 불가능해 보이는 사도직에 도전하였고, 기적을 일상적으로 경험하였습니다. 프랭크 더프는 이런 경험이 과거로 끝나지 않고 미래의 모든 단원에게 계속되기를 바랐으며, 레지오가 창립된 목적도 이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레지오가 세계적으로 확산한 후에 오히려 기적을 경험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을 우려하며 경고하였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자연적인 난관이나 시련을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안일하게 간주해버린 탓이며, 이런 그릇된 경향은 신앙을 배척하지 않지만, 신앙에 고삐를 맨 다음 그 신앙을 자연현상에 종속시켜버릴 것입니다. 그는 우리가 결연히 기적을 향해 팔을 뻗지 않고, 한 발을 자연적인 것 위에, 다른 발을 초자연적인 것 위에 올려놓아 균형을 취하려 하면, 기적을 청할 수는 있으나 결코 허락받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하였습니다.

 

프랭크 더프가 말하는 기적은 산을 옮기거나 죽은 자를 소생시킨다든지 태풍을 잠재우는 그런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한 문제들과 격정을 잠재우는 일, 도덕적으로 죽은 자들을 살리는 일, 꿈쩍 않는 불신앙을 제거하는 일” 등을 의미합니다.

 

 

초자연적인 것을 지향하는 신앙생활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경향으로 신앙생활이 개인화와 기복화로 변질되는 현상은 마땅히 극복해야 할 과제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자율성이나 자연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도전하려는 초자연적인 성향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편견도 마찬가지로 극복해야 할 대상입니다. 프랭크 더프는 초창기 정예 단원 중에도 인간적인 조건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오류에 빠졌던 사례를 언급하면서, 세속적인 논리를 좇아서 신앙이 갖는 무한한 힘을 구속하는 것을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종교란 초자연적인 것과 관련되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적인 것을 어느 정도 단절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이해하였습니다. 기도와 사도직 활동, 극기와 희생 등 단원들이 실천하는 훈련은 신앙생활을 초자연적인 것으로 향하게 하고, 기적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안셀름 그륀은 일상에서 기적을 보는 능동적인 시선을 찾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기적’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이 책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적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삶의 놀라운 신비를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살고자 하는 삶의 신비를 깨닫게 되지요.” 일상이 ‘사랑을 연습하고 실현하는 장’이 되도록 우리의 일상을 의식하며 좋은 습관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신앙생활은 예술가가 미적 감각을 단련하듯이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여 영혼이 하느님의 신비와 만나고 그것을 드러내게 해 줍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초래한 상황은 평신도 신앙생활에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훈련이 참으로 중요하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레지오는 이것에 부합하는 경험과 방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가치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했습니다. 세례를 받은 이후로 가톨릭 신앙생활의 기본을 지속하여 익힐 수 있는 과정이 미흡한 교회 현실을 보완하기 위해, 레지오는 교본이 가르치는 도제제도에 따른 양성에 더욱 힘을 쏟음으로써, 바람직한 신앙생활의 모델을 필요로 하는 시대적 요청에 충실히 부응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0년 11월호, 권용오 마티아(안동교구 상주 가르멜 여자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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