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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원삼본당 고초골공소​: 신앙 무르익는 공소 영성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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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4-01 ㅣ No.526

부활 르포 - 원삼본당 고초골공소


신앙 무르익는 ‘공소 영성의 요람’으로 가즈아~

 

 

- 고초골공소 신자들이 3월 23일 최덕기 주교가 주례하는 평일 새벽 미사에 참여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있다.

 

 

‘뎅~ 뎅~’

 

경기 용인시 처인구 고초골면 15 산자락 아래 평온한 곳에 자리한 수원교구 원삼본당 고초골공소. 새벽 어스름을 뚫고 맑은 종소리가 온 마을에 울려 퍼진다. 새벽 6시 30분 평일 미사를 알리는 소리다. 타종보다 일찍이 공소 경당에 모여앉은 신자들은 이미 침묵 속에 기도를 바치고 있다.

 

고초골은 1866년 병인박해 시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된 교우촌이다. 마른 나뭇가지 끝 새순과 함께 성큼 다가온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오랜 신앙 선조들의 믿음이 깃든 고초골공소를 찾았다.

 

고초골공소 신자들이 마당에 둘러앉아 메주에 지푸라기를 묶고 있다.

 

 

127년 영성의 요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동이 채 트기 전. 미사에 참여한 신자들의 목소리가 또렷하다. 80㎡ 남짓한 작은 경당 기와지붕 아래에서 이른 아침부터 초를 밝힌 이들이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작고 낡은 장궤틀에 옹기종기 어깨를 마주하고 앉은 어르신 10여 명이 미사 내내 모은 두 손을 한 번도 내리지 않고 정성껏 성가를 부른다. 대부분 5~6대째 신앙을 이어오고 있다. 이들이 하루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미사 참여다. 공소를 가득 메운 고즈넉한 거룩함은 신자들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枯草天主敎會’(고초천주교회). 127년 된 경당 입구에 걸린 나무 푯말은 이곳이 고초골공소의 요람임을 알려주고 있다. 산기슭 아래 외진 평지에 자리한 공소는 수백 년 전 믿음의 선조들이 박해를 피해 신앙을 지키며 살기에 적재적소였을 것이다. 나무 기둥이 그대로 드러난 형태의 전통 한옥은 오늘날에도 신앙을 수호하는 성스러운 장소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 초골공소 피정의 집 푯말.

 

 

최근 고초골공소 경당이 문화재 제708호로 지정됐다. 신자들에겐 주님 부활의 기쁨을 앞두고 받은 ‘큰 선물’이다. 경당은 용인의 옛 살림집 형태를 잘 간직하고, 여전히 미사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어 신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느님 집’을 열심히 가꾸고 기도해온 신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지켜온 경당이 국가 문화재가 됐다니. 모두가 하느님께서 주신 덕입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가꿔야지요.”(안봉석 스테파노, 고초골 구역장)

 

 

주교님은 공소 회장님

 

2016년 6월 고초골공소에 ‘지체 높은 분’이 입주했다. 전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가 은퇴 후 거처로 고초골공소를 택한 것이다. 최 주교는 “고초골공소를 내 집처럼 가꾸고 주님 안에 열심히 사는 구교우들이 많은 이곳이 너무 좋아 들어와 살게 됐다”며 “은퇴 후에도 나의 사제 직분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곳이라 여기며, 고초골공소가 발전하는 데 작은 도움을 주고 싶다”고 했다.

 

덕분에 고초골은 ‘주교님이 함께하는 마을’이 됐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최 주교에겐 ‘농부 주교님’, ‘공소 회장님’이란 별명이 붙었다. 신자들과 함께 밭에 콩 심고, 마늘 심고, 메주를 쑤는 일까지 하고 있어서다. 최 주교는 하느님 창조보전 사업인 농사일에 빠지지 않고 모두 참여하며, 허드렛일도 마다치 않는 ‘마을 주민’이 다 됐다.

 

고초골공소 신자들이 전통 방식으로 메주를 쑤고, 된장을 만들기 위해 공소 한편에 줄지어 세워놓은 항아리들. 원삼본당 고초골공소 제공.

 

 

이수길(마리안나) 할머니는 “주교님은 새벽엔 사제이고, 낮에는 농부시다”며 “어제도 수레를 끌고 밭일을 하셨다”고 일러줬다. 고초골 공소 이야기가 가득한 누리방 사진첩엔 최 주교가 신자들과 밭일 후 새참을 나누고, 산행도 하며 공소 가꾸기에 참여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김재성(루카)씨도 “주교님께서 오신 뒤로 매일 평일 미사도 봉헌할 수 있고, 좋은 강론 말씀도 들을 수 있어 공소가 큰 활력을 얻었다”고 말했다.

 

평일 미사 후 최 주교는 공소 내 주교관에서 공소 신자, 전문가 10여 명과 마주앉아 ‘고초골 발전위원회’ 회의도 꾸준히 꾸려왔다. 최근 공소 경당이 문화재로 등록된 것도 최 주교가 신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역사회의 관심사를 모은 결실이다.

 

 

믿음의 마을로 피정하러 오세요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고초골 교우촌은 병인박해 이전에 형성됐다. 인근 미리내 교우촌에 살던 이들이 농토가 비교적 넓은 고초골로 넘어와 살게 됐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러나 병인박해 시기 한양과 해미에서 온 포졸들이 신자들을 붙잡아 가고, 일대에 불을 지르는 등 쑥대밭을 만들어놓았다. 이 과정에서 이름 모를 수많은 신자가 순교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늘날 고초골 교우들은 박 바르바라 등 순교자 5위를 모시고 있다.

 

박해의 단절 뒤 1900년대 초에 이르러 흩어졌던 교우들이 다시 모였다. 현재 원삼본당 고초구역에는 신자 50여 명이 공소 가꾸기를 ‘내 일’로 여기며 살고 있다. 평생 동정녀로 살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준 신자도 있다. 1846년 서울 새남터에서 순교한 성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직접 수습해 150리 길을 걸어와 미리내에 모신 이민식(빈첸시오)의 6대손 이선행(요아킴) 할아버지 가정도 교우촌의 자랑거리다. 

 

매년 가을이면 온 마을이 구수한 메주 냄새로 가득 채워지는 ‘메주 축제’도 열린다. 공소를 관할하는 원삼본당이 신축되던 2003년부터 공소 신자들이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는 메주는 공소 운영에도 힘을 보태주는 ‘효자’다.

 

- 고초골공소 신자들과 최덕기 주교가 3월 23일 평일 새벽 미사 후 127년 역사를 지닌 ‘공소 영성의 요람’인 경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공소 신자들과 최 주교는 공소 6611㎡(2000평) 부지 안에 자리한 ‘피정의 집’ 활성화에도 힘쓰고 있다. 이전엔 거의 방치되다시피 한 피정의 집을 새로 꾸미고, 누구나 묵고 갈 수 있는 숙소도 더 만들었다. 최 주교는 피정 참가자들을 위한 지도 사제가 돼주고 있다. 연간 전국에서 30~40팀이 피정을 하고 간다.

 

원삼본당 김동성(베드로) 총회장은 “부활 시기에는 문화재 경당 주변 경관을 더 아름답게 가꾸고 정비해나갈 계획”이라며 “누구나 성지와도 같은 교우촌 공소를 방문해 며칠 피정도 하고 신자들과 정도 나누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원삼본당 주임 이철민 신부는 “고초골을 비롯해 본당의 모든 신자가 말보다 행동으로 신앙을 사는 분들”이라며 “본당과 고초골이 아름다운 신앙 공동체로 더욱 자리매김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최덕기 주교는 “고초골 교우촌과 공소는 박해의 어려움을 겪던 시기 이름 모를 신앙 선조들이 일군 ‘하느님의 터전’”이라며 “오늘날 우리가 누리게 된 영광을 주님 부활을 맞아 더욱 드높여나갈 것”이라고 했다.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다음 달 투철한 공동체 정신 속에 선조들의 믿음을 잘 간직해오고 있는 고초골공소를 방문해 주님 부활과 문화재 등록의 기쁨을 나눌 예정이다. 

 

피정 및 방문 문의 : 031-332-3457, 수원교구 원삼본당

 

[가톨릭평화신문, 2018년 4월 1일, 글 · 사진=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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