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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가정사목]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성경에 나타난 혼인과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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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3 ㅣ No.981

[월례교육] <사랑의 기쁨> 성경에 나타난 혼인과 가정

 

 

2017년 월례교육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세계주교대의원회의 후속 교황 권고인 <사랑의 기쁨>을 중심으로 가정과 혼인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이 권고문은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혼인과 가정이라는 선물을 소중히 여기고, 관대, 헌신, 신의, 인내의 미덕으로 충만한 사랑을 지닐 것을 제안하고 있다(5항 참조). 이번 1월호는 제1장 <말씀에 비추어 보기>라는 주제로, 성경에 나타난 혼인과 가정을 담았다.

 

 

1. 구약 성경에 나타난 혼인과 가정

 

혼인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성경에는 가정과 출산, 사랑 이야기와 가정의 위기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창세기의 첫 두 장은 우리에게 인간 부부의 본질적인 모습을 보여 준다.

 

1) 하느님의 모상성과 출산

 

창세기의 첫 번째 장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첫 남녀가 등장함을 전한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여기서 “하느님의 모습”을 부부, 곧 “남자와 여자”로 언급한다는 것이 놀라운 일이며, 이런 의문점을 던져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의 성별을 따질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음을 교회의 가르침은 전한다. 부성과 모성을 동시에 지니시는 하느님의 초월성은 보존되며, 하느님께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인간 부부의 출산은 살아 있고 효과적인 ‘하느님 모습’, 곧 하느님의 창조 활동의 가시적 표징이라는 점이다(10항 참조).

 

여기서 우리는 이어지는 창세기의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축복의 말씀을 전하신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창세 1,28). 인간 부부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가 진행되는 길을 마련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부부의 풍요로운 관계는 하느님의 신비를 찾아 설명하는 모습이 되며, 더 나아가 삼위일체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관점에 근본이 되는 바오로 사도의 신학까지 확장 조명된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부부의 관계를 그리스도교 교회의 일치라는 ‘신비’와 연관 지어 설명하였다(에페 5, 21-33 참조).

 

특히 하느님께서는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창세 12, 2)는 말씀을 통해 다시 아브라함에게 새롭게 축복을 내려 주신다. 이 축복으로 혼인은 가정과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는 기초가 되고 하느님과 그 백성의 계약의 역사에서 표징적 기능을 수행하는 구원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2) 부부의 모습

 

창세기 2장에서는 부부의 모습을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여기시어 남자(아담)의 외로움을 달래주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단행 하신다. 그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하와)를 창조하신다.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마련된 이 역사적인 만남을 통해 인류의 새로운 첫 가정이 탄생하게 되었다. 온 인류의 남자를 대표하는 아담은 그의 아내와 함께 새 가정을 꾸린다(13항 참조). 그리고 이어지는 말씀에 따라 남자는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창세 2,24 참조). 히브리어로 ‘결합하다’ 또는 ‘매달리다’라는 말은 깊은 조화, 육체적 내적 친밀함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의미가 확장되어 하느님과의 일치를 설명하는데 사용된다. 그래서 혼인 결합은 성적 · 육체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러한 결합의 결실로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다(13항 참조). 그러기에 성애(性愛)는 하느님의 선물이요 축복이다. 상호간의 사랑으로 상부상조하도록 하느님께로부터 초대를 받은 두 남녀가 육체적 결합을 이룰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이는 서로 육체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두 마음과 삶이 하나가 되는 것으로, 자녀출산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3) 자녀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YHWH, 주님) 다음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자녀’(BeN, 곧 아들)이다. 이 단어는 ‘짓다’라는 뜻을 지닌 히브리어 동사 ‘바나’(BaNaH)에서 나온 말이다. 시편 127편에서 자녀를 집짓는 일뿐만이 아니라 성문 앞에서 이루어지던 사회생활과 상업 활동과 관련된 모습과도 연결시킨다. “주님께서 집을 지어 주지 않으시면 그 짓는 이들의 수고가 헛되리라. …… 보라, 아들들은 주님의 선물이요 몸의 소생은 그분의 상급이다”(시편 127,1.3-4). 이러한 모습은 고대 사회의 문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확실히 자녀의 존재는 구원 역사 안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가정의 충만함의 표징이다(14항 참조).

 

가정은 특별히 자녀의 교리 교육의 자리이며, 부모에게 중대한 교육의 책임이 있음을 성경은 강조한다. 시편에서는 이렇게 노래한다.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을,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들려준 것을, 우리가 그 자손들에게 숨기지 않고 미래의 세대에게 들려주려 한다”(시편 78,3-4).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가정은 부모가 자녀에게 신앙을 가르쳐 주는 첫 스승이 되는 자리가 된다. 이것이 곧 신앙의 ‘전수 방법’이다(16항 참조).

 

 

2. 신약 성경에 나타난 혼인과 가정

 

1) 예수님의 가정사와 혼인관

 

예수님은 베들레헴의 누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 나자렛의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다.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갈라 4,4; 루카 11,27) 예수께서는 구약에 의해 준비되어 온 가정을 당신의 나자렛 생활(루카 2,51)로 축성하신다. 그분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시고 당신도 동정으로 사시면서 혼인보다 더 고귀한 가치를 증거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지상의 부모에게 당신을 맡기시며 그들에게 순종하시는 모습을 모범적으로 보여 주신 분이시다(루카 2,51 참조).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녀가 하느님 나라에 자신을 봉헌하고자 삶의 결단을 내려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아들이면 가족과 이별할 수 있음도 보여주신다(마태 10,34-37 참조). 또한 예수님께서는 가정 안에도 다른 차원의 더 깊은 유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신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루카 8,21).

 

특별히 신약에서의 혼인관은 예수님의 이혼에 대한 논쟁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예수님께서는 창조주의 계획에 의거하여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서는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단일성(마태 19,1-9 참조)을 언급하신다. 사람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에’ 묵인 되었던 이혼은 제거 되어야 한다고 단언하시면서 혼인에 대한 유다인들의 왜곡된 해석을 지적하고 창조 설화에 나타난 혼인의 참뜻과 하느님의 법에 속하는 혼인의 거룩함을 밝히신다(마르 10, 2-12; 마태 19,3-9 참조).

 

2) 바오로 사도의 혼인관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서간을 통해 구약과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혼인의 성소적인 면과 성사적인 면을 밝힌다(에페 5, 21-33 참조). 두 남녀의 결합으로서의 혼인은 하느님의 은총을 전달하는 성사가 되며, 이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을 드러낸다(남편과 아내 - 그리스도와 교회 - 순종과 사랑). 더 나아가 바오로 사도는 독신생활이나 혼인생활 모두 하느님의 부르심이요, 은총의 선물이므로 혼인하는 사람은 그 혼인을 하느님의 부르심과 은총으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1코린 7,6; 20-21 참조).

 

[외침, 2017년 1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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