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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기도]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하고 싶은 얘기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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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1-23 ㅣ No.886

[민범식 신부의 쉽게 풀어쓰는 기도 이야기] "하고 싶은 얘기 있니?”


사소한 일 이웃과 나누듯… 주님과 함께하는 편안한 대화

 

 

찬미 예수님.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느님과의 만남인 기도 안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바로 하느님과의 대화라는 점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와 대화하기를 바라시면서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마음도 살짝 볼 수 있었지요.

 

그런데 이 대화 안에서 우리는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이미 하느님을 잘 만나고 계신 분들께는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아직 그런 경험이 없으신 분들께는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기도라는 것, 곧 하느님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을 어떻게 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 한번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의 면담을 생각해 봅니다. 학생 생활지도를 맡으면서 면담을 시작한 첫 학기였죠. 면담 시간이 되어 들어온 학생과 함께, 미리 작성해 온 면담지 내용에 따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눕니다. 그리고 이렇게 정해진 내용이 끝나면 끝으로 학생에게 “더 하고 싶은 이야기 있니?” 하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더 하고 싶은 얘기요?” 하고 반문하면서 마치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뜸을 들이죠. 그럼 저는 ‘아, 이제야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하면서 내심 긴장 반 기대 반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사실은 면담지 내용보다 더 듣고 싶은 이야기죠. 그런데 잠시 후에 이 학생이 씨익 웃으면서 말합니다. “없는데요.”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이러다 보니 나중에는 제가 학생들에게, 더 할 이야기 없으면 괜스레 뜸 들이지 말고 바로 “없다”고 얘기하고 나가도 된다는 공지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학생들과의 면담을 두 번째 세 번째 이어가면서 달라지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면담 시간 처음에 면담지 내용에 따라서 이야기하는 것은 늘 비슷하죠. 그런데 다 끝나고 나서 마지막에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사실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하면서 말을 꺼내는 학생들이 하나둘씩 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 달에 조금 더, 세 번째 달에도 조금 더, 이런 학생들이 많아졌고 급기야 나중에는 면담 시간이 길어져서 뒷사람이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이야기 있으면 면담 들어와서부터 하지, 시간 다 잡아먹고 왜 이제야 하니?’라는 마음이 살짝 들기도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자기 이야기를 해 주는 학생들에게 고맙고, 그런 학생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중요한 내용이든 사소한 내용이든 그렇게 이야기를 해줄 때 그 학생이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사는지를 조금 더 알게 되고, 그럴 때 그 학생을 위해 무언가라도 더 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소임의 의미겠지요. 어쨌든 이제는, 저도 면담을 시작하면서부터 묻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 있니?”

 

기도, 하느님과의 대화도 이와 마찬가지 모습입니다. 하느님께서 듣고 싶어 하시는 이야기는 어떤 거창한 주제에 대한 신학적이고 신비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른 이야기보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 일상을 살면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껴지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감정들을 알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 삶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부부 사이든 부모 자식 간이든, 아니면 이웃들이나 직장 동료들과 대화를 나눈다 할 때 어떤 대화를 나누세요? 어떻게 나누세요? “여보, 오늘은 우리 이 주제로 한번 대화를 해 봅시다.” “영희 엄마, 오늘은 애들 사교육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 볼까요?” 이렇게 하시나요? 그렇지 않으시죠. 그럼 어떻게 하십니까? 그냥 아무 얘기나 하는 겁니다. 간밤에 잘 잤느냐, 밥은 잘 챙겨 먹었느냐부터 시작해서 오늘 뭐 큰애한테서 전화 왔었다, 손녀딸 방학해서 다음 주에 온다더라, 아니면 저기 누구네 엄마가 남편 때문에 속상해서 힘들어하더라 뭐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다 합니다. 아무 얘기나 다 한다고 말씀드렸지만 사실은 우리 사는 얘기죠. 특별히 어떤 주제를 정해놓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우리가 어제오늘 살아가면서 겪은 일들 그리고 그 안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편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신학교 면담에서도 면담지에 따라서 대화를 시작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해진 형식에 따라서 나누는 내용이 아니라 정말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 자신이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 그 안에서 느껴지는 기쁨이나 슬픔, 보람이나 어려움 등을 꺼내놓고 이야기할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더 알게 되고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왜 할까요? 그 이유는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서로가 서로를 알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하고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를 알려주고 또 ‘너’를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럼 이런 대화를 누구와 나눌까요? 아무하고나 다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누구든 상관없이 눈앞에 있는 상대방이면 다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싶은 사람,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느님을 만나시고 또 이야기를 나누세요. 꼭 특별한 주제가 아니어도 이런저런 이야기,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세요.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듯 그렇게 하느님을 만나시고 대화를 나누세요. 이것이 바로 ‘행위’의 차원이 아닌 ‘존재’의 차원에서 기도 생활을 해나가는 모습입니다. 따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일’, 그래서 때로는 부담이 느껴지는 ‘행위’로서의 기도 생활이 아니라 그저 하느님과 함께 있으면서 내 살아가는 일상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것이 바로 ‘존재’ 차원의 기도이고 일상의 삶으로서의 기도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소개받아 읽었습니다. 수원교구 어느 신부님께서 쓰신 ‘시시콜콜해도 괜찮아’라는 책입니다. 신부님께서 쓰신 내용도 그렇거니와 오늘의 우리 내용에 딱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과의 대화! 아무 얘기나 다 하셔도 좋습니다. 그 내용이 시시콜콜해도 괜찮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살아가는 모습을, 우리 생각과 마음을 사소한 것까지도 다 알고 싶어 하시니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하고 싶은 얘기 있니?”

 

*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2003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영성신학 박사와 심리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1월 22일, 민범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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