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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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자료

루가복음 14,25-33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2016. 9. 4. 연중 23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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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희 [korangpo] 쪽지 캡슐

2016-09-03 ㅣ No.2139

많은 군중이 예수와 함께 길을 가는 중에 예수가 돌아서서 말하였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으면 나와 함께 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고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많은 군중은 상징적으로 예수의 제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모든 종파의 그리스도교 신자가 이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예수를 칭송하면서 떠받드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는 적다. 예수의 이름을 아무리 부르더라도 실제로 예수와 뜻이 통하지 않는다면 예수의 제자라고 할 수 없다.

 

상징적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는 의지(권위와 복종), ‘아내와 자녀는 감성(기대와 애착), ‘형제와 자매는 이성(이익과 손해)을 가리킨다. 예수의 제자는 의지, 감성, 이성을 따르는 거짓자아를 버리고 애덕, 망덕, 신덕을 실천함으로써 참된 자아를 회복한다.

 

여러분 자신의 목숨은 거짓 자아이며 는 참된 자아이다. 여기에서 는 중의법으로 사용되어 예수와 참된 자아를 동시에 가리킨다. 예수는 참된 자아인 를 회복시켜서 그와 함께 일하는 영적인 스승이다. 거짓 자아를 버리는 일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십자가는 사형의 도구이다. 자신을 사형시킬 도구를 등에 지고 형장으로 가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러나 그 예수의 제자는 그 십자가의 고통보다 훨씬 더 큰 영적 기쁨을 누리고 있다. 십자가는 상징적으로 끊임없는 自己否定을 가리킨다. 예수의 제자는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하여 새로운 자아로 거듭난다. 예수의 길은 세상의 길과 전혀 달라서 공통점이 조금도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 ‘자신의 목숨 ’, ‘십자가 는 각각 자아의 활동, 자아, 세상에 대응한다. 예수의 제자는 성령의 지혜로 자신을 다스림으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점증법으로 예수의 길은 세상의 길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강력하게 부각시킨다.

   

 

여러분 중에 어떤 사람이 탑을 세우자 한다면 먼저 어떤 일을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앉아서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되는지 계산해 보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공사를 시작하기만 하고 마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보는 이마다 비웃으며 당신은 공사를 시작만 하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하고 말할 것입니다. 또 만 명의 군사를 소유한 어떤 왕이 이만 명의 군사로 공격해오는 왕과 맞서려면 어떤 일을 하겠습니까? 그는 먼저 앉아서 승산을 헤아려보지 않겠습니까? 상대방과 맞설 수 없다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자를 보내어 평화를 청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에서, 여러분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은 영적 자아를 상징한다. ‘바벨탑이 육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과 대비된다. 바벨탑의 설화를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대략 사람들이 벽돌(, 경험)과 역청(마음, 이성)으로 하늘에 닿는 탑을 쌓으려다가 실패한다는 줄거리로 되어 있다. 벽돌과 역청은 상징적으로 몸과 마음으로 분열된 육적 자아를 지시한다. 영적 자아를 완성하려면 육적 자아를 완전히 버려야 한다. 영적 자아와 육적 자아, 생명과 죽음을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10000 = (10×10) × (10×10)이다. 앞의 (10×10)은 하느님과 아들의 사랑, 뒤의 (10×10)은 아들과 세상 사람들의 사랑이다. 그리하여 10000은 영적인 사랑을 상징한다.

 

영적인 사랑은 그 자체로 완전하다. 그런데 거짓 스승은 육적 자아와 영적 자아, 재물과 하늘나라,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의 지혜(학문)와 하늘의 지혜(믿음)을 뒤섞음으로써 믿음을 학문(신에 관한 이론=신학)으로 전락시킨다. 이것은 두 배의 군사를 거느리고 하늘나라를 침공하는 것과 같으므로 2 × 10000 = 20000이다.

 

사자는 합리적 이성이다. 믿음은 초이성적 진리이므로 이성의 잣대를 충족시킨다. 超理性은 이성을 만족시키면서 그것을 넘어선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제자는 생각과 말, 말의 앞뒤,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한다. 이에 비해 거짓 스승은 비이성적 어리석음을 진리로 포장하여 가르친다. 非理性이란 이성을 상실하여 이성의 잣대에 어긋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거짓스승은 생각과 말, 말의 앞뒤, 말과 행동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거짓 스승과 논쟁하지 않는다. 거짓 스승은 거짓을 진리로 확신하기 때문에 합리적 이성에 의해 설복시키는 것이 불가능하다. ‘평화는 거짓과의 다툼을 피하는 것을 가리킨다. 하늘나라의 제자는 복음의 진리를 일방적으로 선포할 뿐이고 거짓과 맞서 싸우지는 않는다.

 

여러분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은 거짓 자아와 학문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각각 물건에 대한 집착과 사람에 대한 집착, 재물과 명예이다. 예수의 제자는 늘 재물과 명예의 유혹과 싸워 이기면서 하늘나라를 건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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