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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하느님을 말하는 하느님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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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7 ㅣ No.243

[세계 교회 건축의 영성] 하느님을 말하는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집은 하느님께서 지으시는 집이다. 하느님께서 그 안에 계시도록 사람이 지어 바치는 집이 아니란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함께 계시고자 당신께서 머무시는 집을 직접 설계하셨다. 백성이 움직일 때마다 분해하여 이동할 수 있는 이동용 성전이었던 모세의 성막이 그러하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머무실 성막을 짓도록 지시하신 내용은 아주 구체적이다. 탈출기 25장에서 31장에 걸친 제목만 보더라도 어떤 순서로 지시하셨는지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먼저 당신의 현존을 나타내는 계약 궤와 제사상, 등잔대를 말씀하셨다. 그런 다음 성막을 짓는 재료와 크기, 색깔, 연결 방법을 말씀하신 뒤 내부공간을 위한 목제품과 휘장, 제단, 그리고 외부공간인 성막 뜰과 조명 설비인 등불 등을 말씀하신다. 여기까지가 성막의 공간적 조건인데 오늘의 건축설계도 이와 같은 순서로 한다.

 

그다음 사제들의 복장, 서품식과 같은 사제 임직식 준비 등이 뒤따른다. 공간 안에서 사제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그러고 나서 시공자인 성막 제조 기술자도 정해주셨다. 이어서 마지막으로 성막의 시간적 조건인 안식일도 정해주셨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집에 대한 공간과 사람과 시간의 조건을 차례대로 지시하셨다.

 

 

시대의 문화에 바탕을 둔 하느님의 집

 

하느님의 집은 하느님께서 지으시는 것이지만, 야곱이 기념기둥을 세운 것처럼 우리도 살아가는 시대의 문화에 바탕을 두고 하느님의 집을 세운다. 고대 로마 시대에 지어진 초기 그리스도교 성당은 로마 시대의 건축 방식을 따랐다.

 

돔이라는 건축 형식은 성당이 생기기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런 돔을 보며 그것에 천상의 이미지를 표현하여 하늘의 집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 돔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리기도 하고, 푸르게 칠한 밤하늘처럼 금색의 별을 그려 성당의 공간이 하늘 아래 있는 우주임을 상징하였다.

 

처음에는 양을 치는 목자로 표현된 그리스도는 점차 황제의 옷을 입고 옥좌에 앉으신 모습으로 변하였다. 사도들도 로마 제국의 의원 복장을 하고 천사에 둘러싸여 있게 되었다. 이렇게 지어진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은 돔 아래에서 성모님께서 몸속에 잉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품은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게 해주었다.

 

세례당과 기념당도 필요했다. 하지만 적절한 형식이 없었으므로 교회는 고대 로마의 집중식 형태를 한 공중목욕탕과 황제의 영묘를 빌려 세례당 등을 지었다. 로마에 세워진 최초의 세례당도 처음에는 단순히 로마 건축의 영묘를 개조한 정도였지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 되지 못했다.

 

이탈리아의 라벤나에 있는 정교회 세례당만 보더라도 외관은 거친 벽돌로 지어져 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은 일신한다. 위계적인 건물의 구조 위에는 모자이크와 채색 스투코 따위로 체계적으로 장식함으로써 거룩한 하느님의 존재를 체험하게 하는 초월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구약의 예언자들은 증인이 되어 세례반을 둘러싼다. 금색의 옷을 입고, 각각 순교의 관을 든 열두 사도는 천국을 상징하는 푸른색 바탕을 배경으로 엄숙하게 걷고 있다. 중앙에는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순금을 칠한 원반이 있다. 이렇듯 고대 로마 건축이나 그 이전에 있었던 어떤 건축에서도 표현된 적이 없는 초월적인 공간이 바로 성당에 구현되었다.

 

피렌체 두오모 남쪽 벽면의 ‘수태고지’ 부조(사진 firenzecuriosita.blogspot.com).

 

 

하느님의 성막, 수태고지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예수님의 잉태 소식을 전한 모습의 ‘수태고지(受胎告知)’는 하느님의 성막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남쪽 벽면에는 로마네스크풍으로 만들어진 ‘수태고지’ 부조가 붙어있다. 오래전부터 있던 부조를 이 자리에 놓은 것이다.

 

왼쪽의 가브리엘 천사와 성모님 사이에는 작은 건물이 있는데, 그 건물 안에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 “Ave Gratia Plena(은총이 가득한 이여!)”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이 작은 건물과 성모님 사이에는“Ecce Ancilla Domini(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라고 적혀있다. 가운데 건물의 지붕 위에는 손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면 오른손이 둥근 지붕을 다시 덮고 있다. 성부의 손이다. 그리고 지붕 안쪽으로는 성령의 비둘기가 있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 ‘수태고지’(1300년 무렵). (사진 www.atlantedellarteitaliana.it)

 

 

두오모 박물관에는 이 남쪽 벽면의 부조와 같은 구도로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가 1300년 무렵에 만들었다는 ‘수태고지’ 부조가 있다. 마찬가지로 왼쪽의 가브리엘 천사와 오른쪽 성모님 사이에 기둥으로 받친 둥근 지붕의 작은 건물이 있다.

 

이 두 부조에서 둥근 지붕의 작은 건물은 성막이고 ‘하느님의 집’이다. 이 성막은 탈출기에 나오는 천막으로 되어있지 않고 고전 건축의 기둥 위에 돔이 덮고 있다. 그리고 자궁 안에 예수님을 잉태하신 성모님도 ‘하느님의 집’이다. 이렇게 하여 하느님의 집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품고 있게 되었다.

 

프라 안젤리코가 그린 ‘수태고지’(1433년, 코르토나 교구 박물관)도 이와 같다. 천사와 성모님은 기둥으로 둘러싸인 어떤 집 안에 있다. 방안의 천장은 짙은 푸른색에 수많은 별이 그려져 있다.

 

천사와 성모님 사이에 기둥이 있고, 그 위 원형 안에 성부가 그려져 있다. 방 안에는 금빛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그려져 있다. 집과 방안은 우주이고 그곳에 삼위일체이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 두 부조와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집을 표현한 것이다.

 

산 비탈레 성당(사진 wikipedia/commons).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과 건축

 

이탈리아 라벤나에는 산 비탈레 성당이 있다. 이 성당은 525년에 건축을 시작하여 548년에 완공되어 봉헌되었다. 짓기 시작한 다음 해인 526년에 오스트로 고딕 제국의 황제 테오도릭이 죽었다. 그는 이단인 아리우스파의 황제였다.

 

아리우스파는, 성자는 시작은 있지만, 성부는 본질에서 시작이 없으므로 성자는 피조물이라고 봄으로써 삼위일체를 부정하였다. 교회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소집하여 아리우스파를 단죄했다. 그런데 이 아리우스파가 오스트로 고딕 제국의 수도인 라벤나에 다시 나타났다.

 

산 비탈레 성당은 아리우스파 수도의 심장부에서 삼위일체에 대한 신학적 논쟁을 건축적으로 대답한 것이다. 곧 이 성당은 삼위일체와 강생의 신비, 그리고 상호 내재성인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순환)’를 건축적으로 표현하여 아리우스파의 주장을 단죄한 것이다. 제단 옆 아치형 채광창 위에는 아벨과 멜키체덱의 희생이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희생 제단에 바쳐지고 있으며, 그 위로 이를 기쁘게 받아들이시는 성부의 손이 그려져 있다. 이렇게 하느님의 본질이 하느님의 집 안에 그려져 있다.

 

건축의 구조와 공간은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이렇게 확증하도록 지어졌다. 곧 벽과 기둥과 창과 지붕이라는 건축적인 요소가 모두 하느님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 벽마다 창문이 세 개다. 1층과 2층의 아케이드도 세 개의 아치로 되어있다. 가운데는 제단, 그 좌우에는 제의와 성경을 보관하는 ‘디아코니콘(diaconicon)’과 빵과 포도주를 준비하는 ‘프로테시스(prothesis)’라는 두 개의 방이 있다. 지성소를 세 부분으로 구성하려는 것 때문이었다.

 

평면도 바깥에는 주보랑이, 그 안으로는 일곱 개의 반원의 아케이드가 이행하는 구역으로, 다시 그 안 중심에는 팔각형의 공간이 동심원으로 겹쳐 있다. 그뿐만 아니라 단면에서도 위아래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다. 팔각형은 음계가 팔 음계이듯이 조화를 나타낸다.

 

평면을 보면 제단이 바깥의 주보랑을 자르면서 길게 앱스를 향해 뻗어 있다. 이것은 중심형 성당의 상징적인 의미에 방향성을 가진 제단을 두기 위함이었다. 이렇게 하면 중심형이 깊이를 가지고 전례상의 움직임에 대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제단을 회중석과 주보랑으로 확장한 것은 셋이면서 하나인 성부, 성자, 성령 세 위격의 상호 내재성을 나타낸다. 건물의 구조와 공간이 하느님의 강생을 말하고 있다.

 

근대 이후 건축과 예술에서 가장 크게 겪은 변화는 다름 아닌 상징의 제거였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오죽하면 이런 건축과 예술의 노력을 8-9세기 동방정교회에서 일어났던 움직임의 이름을 빌려 ‘성상 파괴 운동’이라고 말할 정도였을까?

 

현대의 문화가 이러하다 보니 로마네스크니 고딕식이니 하며 오래전에 있었던 모양을 본떠 벽돌로 단순하게 ‘교회처럼 보이게’ 하는 것만으로 하느님의 집을 지었다고 여기는 것이 어느덧 관습이 되어버렸다.

 

그러나 어떤 문화의 상황이라 하더라도 성당 건축이란 ‘수태고지’와 같은 하느님의 성막, 산 비탈레 성당과 같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말하는 하느님의 집이어야 한다.

 

* 김광현 안드레아 - 건축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로 전주교구 천호성지 내 천호부활성당과 성바오로딸수도회 사도의 모후 집 등을 설계하였다.

 

[경향잡지, 2016년 3월호, 김광현 안드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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