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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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속 인간과 세상: 로버트 드 니로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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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1 ㅣ No.915

[영화 속 ‘인간과 세상’] 로버트 드 니로의 인턴



- 드라마 / 2015. 9. 24 / 121분 / 미국 / 12세 관람가 / 감독 낸시 마이어스

 

 

인턴. 사전은 ‘회사나 기관의 정식 구성원이 되기 전에 앞서 훈련을 받는 사람, 또는 그 과정’이라고 서술한다. 한마디로 정식 직원이 되기 전의 훈련생이란 말이다. 의사 등 극히 일부 직업에 국한됐던 이 과정이 청년취업의 어려움과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사회 전반으로 확대됐다.

무슨 제도든 취지가 나쁜 것은 없다. 문제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인턴도 조직에 적응할 수 있는 기간을 주고, 개인의 개성과 잠재능력을 발견하고, 업무를 미리 익히도록 해주겠다는 것이다. 일도 배우고, 정식 취업의 기회도 얻고, 비록 적지만 임금도 받고. 그야말로 ‘일석삼조’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가 바라는 아름다운 방향으로만 나아가지 않는다. 인턴제도도 마찬가지다. 회사나 기관이 정말 본래 목적을 위해 필요해서 인턴을 도입한다면 좋겠지만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억지춘향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의류쇼핑몰업체인 ‘어바웃 더 핏’의 30세 여성 워킹맘 CEO인 줄스(앤 해서웨이)도 그랬다. 사회공헌 차원에서 시니어 인턴인 70세 노인 벤(로버트 드 니로)을 고용했다.

섬세한 감성 표현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여성감독 낸시 마이어스의 <인턴>은 40년의 나이 차, 아날로그와 디지털 세대, 인생을 새로 시작하는 노인과 인생을 막 시작한 젊은 여성의 세대 간 소통과 공감의 방식, 삶의 의미와 선택, 그것이 주는 가슴 훈훈한 미소와 눈물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다. 미국 영화지만 마치 나의 이야기, 이웃의 이야기로 다가오는 것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노년, 고령화, 은퇴, 제2의 삶, 이런 단어들이 바로 나와 나의 아버지의 현실이 되어버린 세상, 인간이 하나의 직업이나 일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없는 세상, 정년퇴직을 하고도 30년을 더 살아가야 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벤은 프로이드의 말을 빌려 “사랑하고 일하고, 일하고 사랑하라”고 말한다. 세상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와 친구들을 사랑하고,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리고 일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이 아무리 사소하고, 낮고, 빛이 안 나고, 금전적 보답 하나 없는 봉사라 하더라도 그 시간만이 삶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라는 말이 정부의 선전구호만은 아니다. 40년 동안 다니던, 지금 세대는 그 존재조차 모르는 바로 지금 이 자리에 있던 전화번호부 책 제작회사를 은퇴한 후 벤은 여행, 골프, 독서, 영화 감상, 중국어 배우기 등 뭐든 다해보았지만, 삶에 난 구멍을 메우지 못했다. 그가 한 것은 일이 아니었으며, 그 구멍은 일만으로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고 뭔가 세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새롭게 도전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세상에 살아있어야 할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벤은 자기소개 동영상 하나 제대로 찍을 줄 몰라 손자에게 배워서 겨우 만들어 보내고, 아직도 탁상시계 자명종으로 아침에 일어나고, 만년필로 메모하는 아날로그 세대이지만 디지털 온라인 의류 쇼핑물 회사에 비록 6주 동안의 짧은 기간이지만 시니어 인턴생활을 시작한다.

그에게는 낯선 세상으로의 첫 여행이나 마찬가지다. 그곳은 그가 살아온 세상과 전혀 다르다. 정장 대신 자유복을, 서류 가방 대신 노트북을, 편지나 전화 대신 메일이나 휴대폰 문자를, 종이신문 대신 인터넷 검색을 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넓은 한 층에 직원들이 모두 모여 근무하고 사장은 사무실 안에서 자전거를 타고 이동한다. 이런 낯설고 새로운 세상에서 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어보였고, 창업 1년 반 만에 직원 220명의 인터넷 쇼핑몰을 만든 신세대 줄스에게 벤은 그저 아무런 쓸모없는 낡은 유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도 처음에는 자기 곁에 두기를 거절하고, 동료 카메론의 추천으로 마지못해 곁에 있게 되지만 하루 종일 업무지시나 협조 메일 한 통 보내지 않는다.

<인턴>은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이 서로 소통하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작은 에피소드로 풀어낸다. 이를 위해 영화는 벤이 가진 아날로그적인 삶의 미덕들이 디지털 세대인 줄스의‘일과 사랑’에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면서, 일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처럼 “낡았다고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벤이 자신의 과거를 전부 가지고 이 낯선 세계로 여행을 고집한 것은 아니다. 더구나 줄스에게 “너희 세대들이 뭘 알아.”라며 억지로 자신의 것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제2 인생여행을 위해 벤은 과거의 권위나 보답, 대접받기를 버렸다. 대신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다른 세상이 오더라도 우리가 인간인 한 일과 사랑에서 변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것들과 경험들을 ‘처음부터 세상은 디지털’이라고 생각해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는 줄스와 동료들에게 요란하지 않게 선물한다. 어쩌면 일과 사랑, 회사와 가정, 아내와 CEO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줄스야말로 인생에서 ‘인턴’에 불과한지 모른다.

그 젊은 인턴에게 늙은 인턴이 마치 멘토처럼 일과 사랑의 지혜를 알려주고, 세심한 배려로 구멍 나고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준다. 지저분한 책상을 몰래 깨끗이 치워놓고, 세삼한 관찰로 술 먹은 운전기사를 돌려보내는 대신 자신이 차를 몰아주고, 외부 전문 CEO 영입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오해한 여자 친구로 고민하는 젊은 직원에게는 이메일이나 문자가 아닌 직접 말로 사과하고 눈물을 닦아주라고 손수건을 빌려준다.

그것이 때론 사생활까지 간섭하는 넓은 오지랖으로 느껴져 줄스의 기분을 상하게 해 잠시 멀리하게 만들지만,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옳은 일을 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줄스는 그를 다시 찾는다. 물론 결론은 해피엔딩이다. 아내 때문에 전업주부가 된 남편의 외도로 혼자가 될까 두려워하던 줄스는 일과 사랑 모두를 다 지켜내고, 소중한 일의 파트너이자 인생의 친구, 멘토를 얻었다.

그것이 단순히 “CEO만 구하면 행복할까?” “불륜 막으려고 다 포기하지 마라.” “1년 반 전에 창업해 이렇게 키운 것을 잊지 말아라.”는 벤의 조언 몇 마디 덕분일까. 결코 아닐 것이다. 줄스에게 벤은 필요한 사람이 되어주었다. 벤처럼 이렇게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들이 필요할까. 너그러움과 존중, 소통과 공감, 겸손과 세심함, 진정성이 아닐까? 거창하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눈물을 닦는데 빌려주기 위해 준비한 손수건처럼 작지만 필요하고 따뜻한 배려가 아닐까? 하고 영화 <인턴>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삶이란 어차피 내 것을 하나하나 누군가에게 나눠주는 것이고, 그래야 어디에선가 필요한 사람이 된다. 노년이 될수록 더욱 더.

[평신도, 2015년 겨울호(VOL.50), 이대현 요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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