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124위 순교자전 - 고성운 요셉과 고성대 베드로

3월입니다. 교회는 성 요셉 대축일(3월 19일)이 있는 이 달을 성 요셉 성월로 정하여, 성모 마리아의 배필로서 나자렛 성가정의 가정이며 세계 교회와 한국교회의 수호자인 성 요셉을 특별히 공경하고 있습니다. 성월의 목표는 성월에만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월에 실천하는 기도와 모범을 일 년 내내 가정과 사회에서 실천하는 데 있습니다.

감옥을 ‘덕을 배우는 학교’로

‘하느님의 종’ 124위 가운데 요셉이라는 세례명을 가진 이가 두 분 있는데, 한 분은 윤봉문 요셉이고 다른 한 분은 고성운 요셉입니다. 고성운은 충남 예산군 고덕면 상장리에서 태어난 부모님에게 교리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본래 성격이 착하여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부친이 8개월 동안 병석에 있자 정성을 다해 수발을 들면서 쾌차하기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고 다른 이들을 열심히 권면하여 신자들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경북 청송군 안덕면 노래 2동 노래산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살던 그는 1815년 2월 부활대축일을 지내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었습니다. 몸이 날쌔고 기운이 센 그는 도둑이 쳐들어온 줄 알고 신자들과 힘을 합쳐 대적했으나, 포졸임을 알자 어린 양같이 순해져서 맨 먼저 포승을 받았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체포되실 때 칼을 뽑아 대적하는 베드로에게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요한 18,11) 하신 것처럼 죽음의 잔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때 체포된 신자들은 경주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았고 19명이 고문과 굶주림을 못 이겨 배교를 하고 석방되었습니다. 경주관장은 배교를 거부하는 신자들을경상도 감영이 있는 대구로 이송하였는데, 여기서 또 7명이 병으로 죽고 2명은 배교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남은 이들은 그를 포함하여 7명이었는데, 끝까지 신앙을 증언하며 굶주림과 고문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17개월이 넘는 옥중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생활은 굶주림과 궁핍으로 이어진 삶이었습니다. 1815년에 전국적으로 무서운 기근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 몫으로 배당된 양식이 조금 있었지만, 여러 손을 거쳐 내려오면서 줄어들어 목숨을 이어 나가기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짚신을 삼아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밤에는 등불을 켜놓고 함께 성경을 읽으며 큰 소리로 공동기도를 드렸습니다.

대구 사람들은 그 광경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신자들이 서로 다투거나 욕설을 하거나 짜증을 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로 화목하고 말과 행동에 규율이 잡힌 가족과도 같아 감옥은 덕을 배우는 학교로 변하였습니다. 이것은 먼 훗날 대구라는 큰 고을에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고성운을 비롯한 순교자들은 견디기 힘든 감옥생활을 서로 희생하여 아름다운 생활로 바꾸어 나가다가, 이듬해인 1816년 음력 11월 1일 대구 형장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죄를 보속하려면 칼을 맞아야

고성운 요셉과 달리 형인 고성대 베드로는 성격이 좋지 않아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가까이 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런 그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은 그의 마음을 이웃에게로도 향하게 했던 것입니다. 그는 전북 완주군 운주면 적오리로 이주하여 살다가 1801년 신유박해 때 포졸들에게 잡혀 전주로 압송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용감하게 신앙을 증언하였는데, 그만 목숨을 건지겠다는 유혹에 빠져 배교하고 말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이때부터 자기 잘못을 뉘우치면서 “이 큰 죄를 보속하려면 칼을 맞아야 마땅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하느님과 항구한 사랑의 일치안에 머무르고자 순교를 갈망하였습니다.

이후 동생과 함께 경상도 노래산 교우촌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1815년 부활대축일에 체포되어 경주로, 대구로 이송되었다가 동생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대구의 감사는 이들 형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조정에 보고하였습니다.

“이들 형제는 어리석고 무식한 무리로 천주교에 미혹되어 깨달을 줄 모르며, 엄한 형벌을 하면서 깨우쳐주려고 하였지만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또 한 번 죽기로 한 마음을 목석과 같이 고집하니, 그들의 죄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신앙으로 성품을 바꾸어

타고난 착한 성품으로 요셉 성인처럼 살다가 순교한 고성운 요셉은 집에서 형님을 모시고 부모님께 효성을 다했습니다. 또한 박해 중에 배교했던 형님을 끝까지 보호하고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믿으며 굳건한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삶은 우리에게 요셉 성인처럼 살라고 조용하면서도 단호하게 외치는 듯합니다.

또한 괄괄한 그의 형 고성대 베드로는 신앙의 덕택으로 삶을 선하게 변화시켰습니다. 비록 갖은 형벌 속에 유혹에 넘어가 배교하였지만,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순교를 열망하였습니다. 이는 일상의 삶을 늘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시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경향잡지, 2007년 3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