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홍익만 안토니오와 그의 사위 이현 안토니오

얼마 전 본당 신자들과 함께 성지순례를 했습니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단자들을 부수는 망치’라는 별명을 얻었던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의 삶과 신앙을 다룬 영화를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124위 순교자 가운데 안토니오 세례명을 가진 이가 세 분 있습니다. 이번 호에는 홍익만 안토니오(?-1801년)와 그의 사위 이현 안토니오(?-1801년)를 소개합니다.

피신 중에도 교회서적을 갖고 다니며 복음을 전한 홍익만

홍익만은 양반의 서얼로 경기도 양근에서 태어났습니다. 1790년을 전후하여 서울 송현(중구 남대문로 3가)에 살면서 유업(儒業)에 종사하였습니다. 1785년경에 김범우의 집에 있던 “천주실의”를 읽었고, 1794년에 한문서학서인 “진도자증”(眞道自證)을 이승훈에게 빌려 읽으면서 심오한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에 이가환, 이승훈, 정약종, 황사영 등의 집에서 토론하면서 교리를 익혔고, 이승훈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1796년경 사위인 홍필주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님을 만나 밤낮으로 토론하기도 하였습니다.

홍익만의 집은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의 하부 조직이요 집회소였던 ‘육회(六會)’의 하나였습니다. 그의 집은 주 신부님이 은신하고 있던 양제궁의 후문과 서로 통해있었기에, 주 신부님을 자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희영과 김건순에게 주 신부님을 소개해 주었고, 1797년 8월 26일 김건순이 초시(初試)를 본 뒤에 서울에서 신부님을 만났을 때, 신부님에게 조언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799년 가을 정광수 바르나바의 집에서 신부님을 모시고 사흘 밤낮에 걸쳐 있었던 첨례와 강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황사영과는 전부터 친밀히 지냈고, 이승훈, 정약종, 김범우, 손인원, 최해두, 정광수, 유관검 등과 신앙생활을 함께 하였으며, 정약종, 이승훈, 황사영을 영원히 혈당(血黨)으로 삼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그 해와 1800년에도 그의 집에서 김건순, 이중배 등이 신부님을 만나도록 주선하였습니다.

1801년 정월 박해령이 내렸을 때 황사영을 만났는데, 황사영은 “국가의 금령이 비록 엄하지만, 이것은 임금의 처분이 아니고, 모두 아래에서 거행하는 것이다. 그러한즉 필경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당연히 죽게 되었을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홍익만은 박해를 피해 정월 보름날 안산에 사는 사촌 매부의 집에서 너더댓새를 머물다가, 여주에 사는 삼촌 숙모의 집에 갔습니다. 이때 서울에서 박해령으로 많은 이가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는 산골에서 10여 일 숨어 지내다가 이천에 사는 절친한 친구의 집에 가서 몇 달을 숨어 지냈습니다.

그는 교회서적을 갖고 다녔고, 친구에게 교회 가르침을 전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무렵 양근에서 윤유일의 사촌인 윤구손이 찾아오자 그를 통해 집에 편지를 전하여 주고받았으며, 교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된 그는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으면서도 “천주교 신앙에 깊이 빠져있으니, 마음을 바꾸어 신앙을 버릴 생각은 없습니다.” 하고 증언하였고, 1801년 12월 26일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그는 순교자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사촌 서(庶)동생이고, 서오촌(庶五寸) 조카가 순교자 홍인 레오입니다. 그의 큰사위가 홍필주 필립보이고, 작은사위가 이현 안토니오입니다. 정조의 측근이었던 남인의 영수 채제공은 그의 서손(庶孫)을 홍익만에게 수학시키기도 하였습니다.

장인의 영향을 받아 오롯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한 이현

홍익만의 사위인 이현 안토니오(?-1801년)는 경기도 여주의 양반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성화를 그렸던 이희영 루카의 조카입니다. 이희영은 김건순 요사팟과 절친하여 그의 집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이현은 삼촌이 사는 김건순의 집에 드나들다가 1797년 가을부터 교회서적을 빌려 보면서 교리를 배우고, 홍필주의 집을 왕래하면서 교리를 더 배웠습니다.

홍익만 안토니오의 딸과 결혼하여 홍필주와 동서 사이가 된 그는 홍필주의 집에서 강학할 때 주 신부님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함께 신앙생활을 한 이는 최해두, 정광수, 홍정호, 김종교 프란치스코, 최필제 베드로, 권철신의 처남인 남필용 등입니다.

1800년 겨울 부모님의 상을 당했을 때, 홍필주가 한 차례 조문을 왔다 갔습니다.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체포되었고, 포도청과 형조에서 “제가 여러 해 동안 깊이 믿었는데, 지금 아무리 형을 받는다하더라도 실로 바꿀 마음이 없습니다.” 하고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1801년 5월 22일 서소문밖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피신 중에도 복음을 전하였던 홍익만 안토니오는 교회와 가정 공동체의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영향을 받아 사위 이현 안토니오도 오롯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였고 순교하였습니다. 두 분의 삶이 순교자성월을 사는 우리의 삶과 신앙이었으면 합니다.

[경향잡지, 2008년 9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