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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사회교리: 함께 사는 세상 - 연대성의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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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01-09 ㅣ No.209

[사회교리] 함께 사는 세상 : 연대성(solidarity)의 원리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세상에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인간은 혼자서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를 정복하고 복종시켜야 할 적으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함께 협력하고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웃의 관계를 맺는 것이다.

 

 

1.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원리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모래알같이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달리 말해서 개인적으로 인간은 독립적인 인격을 갖춘 개체이지만, 사회적으로 인간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뜻한다.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연대성(連帶性, solidarity)이란 말이 된다. 따라서 연대성이란 모든 사람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른 사람과 끊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이 관계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책임과 의무를 나누며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1.1 인간 본성에 맞는 삶

 

인간이 지니고 있는 연대성은 인간의 인격성과 사회성에서 유래한다. 인격성이란 인간이 자신 안에 폐쇄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를 향하고,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어 가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격성 덕분에 사회생활에서 인간은 다른 존재들, 특히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된다. 또한 사회성은 인간이 사회 안에서 탄생 · 성장 · 사멸하며 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회성은 모든 인간이 사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인간의 인격성과 사회성은 인간을 고립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사회의 구성체인 다른 인간과 조직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상호간에 협력과 원조를 하도록 이끌고 있다.

 

1.2 하느님 뜻에 맞는 삶

 

연대성은 인간 본성인 인격성과 사회성뿐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각각 떨어져 살도록 하지 않고 사회단체를 형성하도록 하신 것처럼 각 개인을 아무런 연결도 없이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거나 구원하려 하시지 않고, 오직 사람들을 한 백성으로 모아 당신을 진실히 받들며 충실히 섬기도록 하셨다.”(사목헌장, 32)

 

이러한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단순한 생물학적인 인간으로만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았고 성령의 활동을 입고 있는 하느님의 모상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제 이웃은 비록 그가 원수라 하더라도,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사랑하신 똑같은 사랑으로 사랑 받아야 할 존재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 희생까지 각오하여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연대성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치와 친교, 무상적인 사랑과 용서의 근거이다.

 

 

2. 함께 사는 삶의 실현

 

함께 사는 삶, 달리 말해서 연대성을 지니고 사는 삶은 사회를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단체로만 보는 개인주의(individualism)와, 인격적 존엄성을 무시하고 인간을 사회적, 특히 경제적 과정의 단순한 대상 혹은 사회의 부품으로 취급하는 집산주의(coll-ectivism)를 거부하는 것이다.

 

2.1 혼자 사는 삶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은 혼자 사는 인간을 전제하지 않으며 사회생활을 통해서 실현된다. “본질적으로 사회적 존재인 인간들은 공동으로 살아야 하며, 상호 선익을 도모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의 공동생활은 그 권리들과 의무들이 상호 존중되고 잘 이행되기를 요청한다. 그래서 각자는 그러한 권리들과 의무들이 더욱 성실하고, 더욱 효과적으로 이행되는 사회적 환경을 건설해야 한다.”(지상의 평화, 31)

 

이를 위해 인간 각자는 연대성의 원리에 따라 자신과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들을 형제로 받아들이고, 모든 차원에서 사회의 공동선 실현을 위해 공헌해야 한다. 이와 같이 연대성은 사회의 공동선과 관련을 맺고 있기에, 연대성의 실현을 위한 온갖 형태의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개인주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 왜냐하면 개인주의는 인간의 연대성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2.2 집산주의(전체주의)를 넘어서

 

인간이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는 연대성은 교통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사회관계의 증대로 나타나고, 이로 인해 사람들간에 상호의존성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적 관계의 증대는 개인들의 능력을 초월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원해서 연대하도록 만든다. 이로 인해 오늘날 국가 단위로 또는 국제무대에서 경제, 사회, 문화, 오락, 스포츠, 직업 그리고 정치와 관련된 집단·단체들 그리고 제도들이 생겨났다. 다양한 단체들과 제도들은 개인의 복지를 촉진하고, 사람들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살고 일하고 놀 수 있도록 도와줌으로써, 결국 인격적인 발전과 자아완성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너무나 다양한 공적 혹은 사적인 각종 모임과 제도를 규제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은 지나친 간섭과 과도한 관료제의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나아가 단체나 제도를 지나치게 강조할 때 개인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조직과 전체만이 강조되는 전체주의 또는 집산주의로 빠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전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은 연대성에 바탕을 두고 사회적 관계를 맺을 때 해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연대성에 바탕을 둔 사회적 관계는 다른 사람을 도구로 보는 것이 아니라 목적으로 보고 다른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웃을 ‘또 하나의 자신’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이웃의 생활과 그 생활을 인간답게 영위하기 위한 필요한 수단을 고려해 주어야 한다.(사목헌장, 27) 이와 같이 연대성은 다른 사람에 대한 존경과 봉사라는 모습의 삶을 통해 사회생활에서 구체화됨으로써 전체주의를 극복하는 수단이 된다.

 

2.3 함께 책임지는 삶

 

연대성은 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사회적 연대책임과 깊은 관련이 있다. 사회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타인의 필요에 따라 자신이 속한 사회의 공동선의 진작에 기여하고, 사적 혹은 공적 제도들을 발전시킴으로써 그 사회의 삶의 조건 개선에 이바지할 의무가 있다. 이는 사회 안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의 “정의와 사랑의 의무”(사목헌장, 30)이다. 결국 연대성은 다른 사람이 겪는 불행에 대한 막연한 동정심이나 피상적인 근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선에 투신하겠다는 강력하고 항속적인 결의이다. 우리 모두가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만큼, 만인의 선익과 각 개인의 선익에 투신함을 뜻한다.”(사회적 관심, 38)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연대성은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가 타인을 인격체로 인정하고, 자기 이익을 위해 남을 억압하는 대신 타인을 섬길 때에 실현된다. 그러기에 부유하며 권력있고 능력있는 사람은 더 약한 사람, 더 가난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느껴야 하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그들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더 약한 사람들은 같은 연대성에 입각해서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당당히 주장함과 동시에 모든 이의 선익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바를 행하여야 한다. 그리고 중간 매개를 하는 집단들은 자신들의 특정한 이익만을 이기적으로 주장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존중해야 한다.”(사회적 관심, 39)

 

 

3. 글을 마치면서

 

각종 사회문제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내 주변의 이웃들이 고통을 겪고 있는데, 강 건너 불 구경하듯 살고 있지는 않는가? 다른 나라 국민이 겪는 고통을 해외 토픽 정도로만 여기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 너무 거창한가? 그렇다면 질문을 줄여보자.

 

가정 안에서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내 일이 바쁘고 중요하다고 해서 혹시 가정이 잠자고 밥 먹는 장소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가정을 꾸리는 것보다 호텔에서 먹고 자는 것이 훨씬 편하지 않을까?

 

함께 사는 삶은 먼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시작된다.

 

자신만을 향하던 눈을 이웃에게로 돌리고, 이웃의 삶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그리고 세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혜를 모으고 함께 두 손을 맞잡고 기도하자. 이럴 때 함께 사는 삶, 하느님이 원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께 사는 삶, 다시 말해서 연대성은 인간적이고도 초자연적인 형제적 사랑의 직접적인 요구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심각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월간 빛, 2002년 4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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