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강론자료

2016-06-08.....연중 제10주간 수요일

스크랩 인쇄

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16-06-07 ㅣ No.2077

 

연중 제10주간 수요일 - 짝수 해

1열왕기 18,20-39              마태오 5,17-19

2016. 6. 8. 이태원

주제 : 내가 따르는 삶의 기준은?

사람은 세상에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현명하게 산다고 말할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서 그 표현에 담을 내용이 다르기는 합니다만, 일반적으로 현명하다고 할 때, 그 안에 담는 의미는 손해를 입지 않고 산다는 것일 때가 많습니다. 물론 세상의 기준에서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그에 비교해서 신앙의 기준은 그와는 다른 길을 갑니다.

 

한 사람의 힘과 400명의 사람이 하나가 되어 힘을 겨루면 누가 이길까요? 사실은 이런 질문자체가 어리석은 것일 겁니다. 질문의 내용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고,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면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을 내용이라고 여길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에서는 민주주의사회라고 하더라도 숫자를 대단히 중요하게 봅니다.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으면, 그들이 생각하는 내용이 옳은 것이냐 혹은 그른 것이냐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집단이 되어 움직일 때, 그들이 판단하는 삶의 기준은 자신들만을 생각하는 것이지, 자기들의 편이 아닌 사람들의 이익은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소리를 말해봐야 의미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은 한편의 소설입니다. 하지만 소설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좀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읽어야 할 내용입니다. 400명이 하나가 되어 움직이는 힘을 한 사람의 힘이 이깁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 한 사람의 말대로 400명의 바알예언자를 해치웁니다. 우리가 흔히 중요하게 여길, 다수결의 원칙이 통하지 않는 모습인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겠습니까?

 

세상에 실현되어야 할 하느님의 뜻을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반대의 길을 갈 때가 있고, 잘못된 길을 가면서 제대로 된 길을 간다고 착각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 실현돼야 할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읽는 사람들이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순간에 당신의 뜻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으십니다. 답답하다고 해서, 내가 하느님을 떠나는 사람으로 살아도 문제는 없는 것일까요?

 

나는 세상에서 어떤 기준을 따라 사는지 살펴볼 시간입니다.

 



2,633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