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7일 (수)
(백)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본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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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나는 장애인이다: 장애인 작가의 지방 강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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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1 ㅣ No.1638

[경향 돋보기 - 나는 장애인이다!] 장애인 작가의 지방 강연

 

 

새벽 네 시에 자명종이 울립니다. 연일 이어지는 강연의 피로로 힘겹게 눈을 뜨며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오늘은 부산 지역 ‘작가와의 만남’ 강연이 있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아침밥을 먹고 나면 아내가 지하 주차장까지 휠체어를 밀어 줍니다.

 

양발을 대신하여 양손으로 운전하는 장치(핸드 컨트롤러)가 달린 차에 오르면 아내는 제 휠체어를 차 트렁크에 넣어 주지요. 가끔은 강연을 같이 가지만 오늘은 아내도 볼일이 있어 저 혼자 가기로 합니다.

 

 

장애는 불편한 것

 

새벽안개를 뚫고 차를 운전해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요금이 싸고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하겠지만 저는 그럴 수 없는 장애인입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불운하게도 소아마비라는 질병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의식이 생겼을 때부터 저는 장애인이었습니다. 평생에 지하철을 열 번이나 이용해 보았을까요? 붐비는 사람들로 고생하는 지옥철이지만 날마다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분들은 정녕 복 받은 분들입니다.

 

서울역 장애인 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저는 저만치에서 일하는 청소부 아저씨를 부릅니다.

 

“제가 장애인이어서 그러는데 휠체어 좀 꺼내 주세요.”

 

대부분의 선량한 시민은 기꺼이 저를 도와줍니다. 그때마다 저는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입니다. 몇 번을 고맙다고 고개 숙여 인사합니다. 제가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남에게 부탁하거나 감사 인사를 거듭할 필요도 없었겠지요.

 

이제 저는 서울역 고객 안내 센터로 가야 합니다. 기차의 출발 시간은 오전 6시이지만 저는 무조건 15분 전에는 도착합니다. 비장애인 같았으면 1분 전에라도 달려와서 기차를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15분 전에 역에 도착하지 않으면 저는 기차를 탈 수 없습니다. 10분 전에만 도착해도 다음 기차표를 끊어야 합니다. 공익요원들이 리프트를 설치하고 저를 밀고 가서 태워 주는 한계선이 딱 15분 전입니다.

 

그렇게 기차에 올라 부산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장애인 객차는 2호 차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특실입니다. 그리고 요금은 일반석의 반액입니다. 국가에서 그나마 혜택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혜택이 없더라도 비장애인으로서 일반석을 타고 갈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요.

 

고속 철도(KTX)는 맨 처음 도입될 때부터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습니다. 우리 장애인들이 투쟁해서 얻어낸 것이 2호 차의 장애인실입니다. 장애인이 예뻐서 특실을 준 것이 아닙니다. 일반석 통로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기에 할 수 없이 특실의 의자 몇 개를 떼어 내서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입니다. 애초에 제작할 때부터 고려했더라면 이 또한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직 그 정도의 선제적 배려는 없는 모양입니다. 투쟁하고 항의하고 시위해야 간신히 마지못해 조처해 주니 안타깝습니다. 기차를 탈 때마다 그 생각을 하면 씁쓸합니다.

 

 

제약받는 이동권과 접근권

 

두어 시간 뒤 열차가 마침내 부산역에 도착하면 학교 선생님들이 마중을 나옵니다. 제가 장애인인 것을 알기에 기꺼이 나와 주지만 가끔 어떤 학교에서는 아예 그 사실을 모르고 강연을 요청합니다. 제가 차량으로 마중 나와 주셔야 한다고 하면 이렇게 말합니다.

 

“강사님이 알아서 학교까지 오시는 게 아니었어요?”

 

적어도 강사를 부를 때는 그가 어떤 상황인지 좀 알고 연락하면 좋겠습니다. 제 처지를 설명하면 그제야 교사들이 수긍하며 마중을 나오겠다고 합니다. 사실 귀찮고 힘든 일인 것을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저는 더 귀찮고 힘들게 일하고 있으니 어쩌겠습니까?

 

가끔은 택시를 타고 오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도 합니다. 장애인 택시가 예약되면 좋지만 여의치 않을 경우, 할 수 없이 일반 택시를 이용해야 합니다. 일부 몰상식한 택시 기사는 제가 타겠다고 하면 차를 빼서 슬슬 도망가 버리기도 합니다. 줄 서 있는 택시 옆에서 기사들이 담배를 피우며 동물원 원숭이 보듯 저를 쳐다볼 때는 정말 숨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래도 운 좋은 날은 마음씨 좋은 택시 기사가 기꺼이 태워 줍니다. 물론 휠체어를 접어서 집어넣고 빼면서 투덜대거나 욕하는 기사도 있습니다. 돈을 내고 이용하는데 욕을 먹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타고 가는 내내 기분이 나쁘거나 조마조마할 때도 있습니다.

 

학교에 도착하면 강연 장소로 이동해야 합니다. 요즘도 승강기 없는 학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는 선생님 서너 분이 달려들어 제 휠체어를 번쩍 들어 올립니다. 마치 가마 타는 기분이기도 하지만 송구한 마음은 하늘을 찌릅니다. 제 처지에서 보면 계단을 걸어 올라가 볼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입니다.

 

무사히 도착했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강당의 무대 위에는 경사로가 없기 십상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시 남자 선생님들의 신세를 져야 합니다. 경사로는 있지만 그 경사가 정말 급하여 혼자 힘으로 올라갈 수 없는 곳도 있습니다.

 

가장 어이없는 경우는 새로 지은 강당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제가 온다고 하면 그제야 땅을 치며 후회하기도 합니다. 공사할 때 미리 알았더라면 경사로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법규는 만들어져 있는데 왜 현실에서는 실행이 잘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경사로 없는 무대는 마치 ‘장애인 따위는 이곳에 올라올 일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의 삶 스토리텔링

 

강연이 시작되면 아이들에게 저는 인생 스토리텔링을 합니다. 장애로 말미암아 의대를 진학하려다 거부당하는 바람에 문과로 전환한 기구한 이야기, 학교를 다니며 힘들고 어려웠던 사연, 불굴의 의지로 헤쳐 나온 역경 등을 말해 줍니다. 또한 저의 작품들 소개도 합니다. 장애인의 목소리와 삶과 생각을 알게 하려고 저는 작품을 쓰고 있습니다. 이에 얽힌 이야기만 해도 충분히 좋은 교육이 됩니다.

 

이야기하다 보면 저는 가볍게 흥분합니다. 진정성 어린 속마음을 이야기하면 학생들이 공감해 주기 때문입니다. 살아온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갑니다. 때로는 격렬하게, 때로는 부드럽게 살면서 겪어 온 차별과 편견, 그리고 그것을 이겨 내려는 노력을 풀어냅니다.

 

이러구러 강연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모두 집에서 가지고 온 책에 사인을 받습니다. 사인을 마치면 저는 점심을 먹으러 학교 식당으로 갑니다. 부근에 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식당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계단이나 턱투성이입니다. 그러면 선생님들도 당황합니다. 대다수의 식당이 장애인에게 불편할 줄은 몰랐다는 것입니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먹습니다. 그곳엔 고정식 의자가 있습니다. 휠체어를 탄 제가 학교 식당에 들어가 식사하기가 무척 불편합니다. 그래도 참 고맙습니다. 아무튼 식사를 제공해 주니까요. 학교의 정성만 생각하기로 합니다.

 

 

소명에 충실한 삶

 

식사까지 마치면 다시 거꾸로 부산역을 향해 갑니다. 힘들고 지치는 하루지만 보람은 있습니다. 제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길거리에서 다른 장애인을 만나도 나를 생각하면서 그들을 배려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를 가졌지만 장애로 말미암아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것, 이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부산역에서 밝은 저의 얼굴을 보고 지나가던 할머니 한 사람이 물었습니다.

 

“몸도 성치 않은데 무엇이 그리 좋다고 웃고 있어요?”

 

할머니의 기준으로는 장애가 최고의 불행입니다. 웃을 일도 전혀 없는 고통이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장애가 은혜이고 감사입니다. 불편하고 힘들수록 내가 이겨 내야 할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가 강해질 수 있으니까요. 기차를 타려고 역에 온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 얼굴이 찌그러져 있습니다. 두 다리로 멀쩡히 다니는데 왜 찡그리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신체적 장애만 보고 저를 그들과 다르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정상으로 저를 비정상으로 보려합니다. 하지만 장애는 신체적인 문제만이 아닙니다. 활동하지 못하는 것, 참여하지 못하는 것도 장애이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이 세상에 장애인 아닌 사람은 없는 셈입니다.

 

해질 무렵 서울역에 도착하면 다시 공익 요원들이 도움을 줍니다. 이렇게 느리지만 중단 없이 노력한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장애인을 배려하는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장애인 작가의 지방 강연은 또 이렇게 끝납니다. 온몸은 파김치처럼 축 처지지만 내일은 또 새로운 해가 뜰 겁니다. 내가 노력한 만큼 조금은 더 밝아진 태양 말입니다.

 

* 고정욱 안드레아 -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1급 지체장애인.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안내견 탄실이」, 「까칠한 재석이」 시리즈 등 280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펴낸 글이 교과서에도 실렸으며 이 땅의 수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고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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