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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신학ㅣ사회사목

[사목자] 그분은 우리를 정말로 돌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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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10-24 ㅣ No.1043

그분은 우리를 정말로 돌보십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는 대사제가 아니라,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를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5). 성품성사를 받은 사제들은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노력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참섬김의 봉사를 이어간다.

 

 

2013년 3월 13일 로마 바티칸, 시스티나성당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솟아올랐다. 콘클라베(Conclave, 교황선거)를 통해 가톨릭교회는 제 266대 교황을 선출했다. 교황이 된 아르헨티나의 호르헤 마리오 베리골리오 추기경은, 교황직을 수행하기 위한 새로운 이름으로 ‘성 프란치스코’를 선택했다. 가난한 이들을 자신의 ‘형제’로 돌보고, 모든 피조물의 친구로, 청빈한 삶을 산 프란치스코 성인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새 교황의 이러한 선택은 물질만능주의와 관료주의 등 세속화의 파도에 흔들리고 있는 가톨릭교회에 강한 ‘울림’을 던져주었다.

 

새 교황은 사회에서 소외되는 노숙자, 수감자, 이민자들에 대해 교회와 사회가 좀 더 관심을 가지기를 끊임없이 요청했다. 2014년 8월, 우리나라를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상처받고 가슴 아픈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위로했다. 교황의 이러한 말과 행동은 자신을 따르던 군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예수님을 떠올리게 한다(루카 9,10-17 참조). 예수님은 21세기를 사는 우리, 특히 당신을 따르는 주교와 사제에게도 요청한다.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

 

 

빛으로 세상을 비추다

 

예수님의 빛으로 세상을 비추고자 하는 교회도 21세기를 맞이하며 여러 가지 도전을 받고 있다(「교회 헌장」, 1항 참조).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창세 11,4) 했던 인류의 후손답게 최첨단 과학기술은 하느님의 영역인 창조질서에 도전한다. 또한, 일부 국가의 선진적이고 다양한 사회복지제도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단순하고 획일적인 사랑 실천방식을 재고하게 한다. 유럽교회에서 이슈화되었던 성직자 성추행 스캔들과 교황청의 부패상 등은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실추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교회의 현실 앞에서 모든 면에서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신,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신 대사제가 계시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큰 힘이 된다(히브 4,15 참조). 대사제 예수님도 우리와 똑같이 유혹을 받으셨다. 사십일을 단식한 후의 육체적 한계를 겨냥한 “빵”의 유혹과 하느님을 시험해보라는 “지성”의 유혹, 그리고 하느님을 넘어서 보라는 “교만”의 유혹이다. 유혹은 우리를 잔잔한 산들바람처럼, 때로는 폭풍우 치는 비바람처럼 흔들리게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유혹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으로 모두 물리치셨고, 유혹을 이기는 모범을 보여주셨다(마태 4,1-11 참조).

 

교회는 하느님의 말씀과 은총으로 하느님 백성을 사목할 주교와 사제, 부제를 세운다고 말한다(「교회 헌장」, 11항 참조). 이들은 안수와 축성의 기도로 성령의 은총이 부여되고 거룩한 인호가 새겨져 참스승, 참사제, 참목자가 된다. 그리고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의 은총이 풍성히 열매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리스도의 도구’가 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7. 1558항 참조).

 

 

상처받은 이의 ‘눈’을 바라보는 사제

 

사제는 성령의 은총 속에 하느님 백성을 섬기고 돌보라는 소명을 받는다. 그리고 직무를 통하여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보여줄 수 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549항 참조). 하느님 백성이 갈망하는 사제는 직무자로서 형식적으로 만나는 사제가 아니다. 각 신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희망을 말해줄 수 있는 사제를 갈망한다.

 

헨리 나웬은 자신의 저서 「상처입은 치유자」에서 “불난 집에서 아이를 구하면서 화상 입을 각오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겠습니까?”라고 질문한다. 하느님 백성은 말과 행위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을 지닌 상처받은 이의 ‘눈’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사제를 원한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제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를 정말로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추어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하느님과 자신의 생명을 다해 우리를 구원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어야 하는 사제는 무엇보다 성령의 은총 안에서 신자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고뇌에 깨어있어야 한다. 현대인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의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기 때문이다(「사목 헌장」, 1항 참조).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하느님 백성을 돌보는 이러한 소중한 사제직을 희망하는 성소자가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교황청의 「교회 통계 연감 2015」를 분석한 자료를 보면, 가장 큰 특징이 성소자 감소이다. 2015년 말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사제는 41만 5000여 명으로 1년 전보다 136명이 줄었으며, 사제 지망자 수 역시 11만 6800여 명으로 약 100명가랑 줄었다. 한국교회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2000~2016년 동안 신학교에 재학 중인 신학생 수가 10.9% 감소했다(CBCK, 「한국천주교회통계 2016」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사제직을 지망하는 성소자들이 감소하는 현실 앞에서, 마음을 다해 젊은이들에게 호소한다. “성령의 숨결로써 여러분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를 권유합니다. 성령의 부르심은 소음과 혼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여러분의 마음을 울려 온전한 기쁨에 열리도록 할 것입니다. 내면에서 솟구치는 이러한 외침에 귀를 기울이십시오!”(세계주교대위원회의 제15차 정기총회 예비문서 발표에 즈음하여 「교황의 젊은이들에게 보낸 서한」 참조).

 

믿음으로 하느님께 이사악을 바쳤던 아브라함처럼(창세 22,10 참조), 교회와 부모가 보여주는 굳건한 믿음은 젊은이들에게 훌륭한 신앙의 유산이 된다. 이러한 유산 안에서 젊은이들은 내면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사제직을 향한 열망의 목소리에 용기를 내어 응답할 수 있다.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9)라고 약속하셨다. 하느님 백성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상처 입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바라봐 줄 수 있는 사제를 원한다. 그리고 그 사제를 통해 ‘우리를 정말로 돌보시고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볼 수 있기를 원한다.

 

[외침, 2017년 10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도희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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