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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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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7-05-08 ㅣ No.936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상) 세계 평화 메시지와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푸른깃발 휘날리며 성모님께 기도한다 온세상에 평화가 오길

 

 

□ 싣는 순서

상 - 세계 평화 메시지와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중 - 올바른 성모신심

하 -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행사

 

 

오는 5월 13일은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포르투갈 중서부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던 파티마에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달 성모 마리아가 여섯 번에 걸쳐 나타났다. 그리고 파티마의 성모는 세계를 향해 세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유명해졌다. 1981년,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가는 비행기에서 일어난 납치사건은 오직 파티마의 세 번째 메시지 공개가 유일한 요구사항일 정도로 파티마의 성모 메시지가 세계에 남긴 인상은 강렬했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아 본지는 3주간에 걸쳐 파티마 성모 발현의 의의와 올바른 성모 신심을 살펴보고 파티마 현지에서 열리는 기념행사를 전한다.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의 환경

 

- 1917년 파티마 성모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 왼쪽부터 히야친타, 프란치스코, 루치아. CNS 자료사진.

 

 

파티마의 성모가 나타난 1917년은 1914년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이르는 동시에 러시아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세계가 혼란의 도가니에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파티마는 협곡으로 둘러싸여 외부 접촉이 적고 비교적 조용하게 신앙생활에 집중할 수 있는 마을이었다. 그런 환경에서 이 마을에 사는 세 명의 어린이 루치아(Lucia dos Santos, 1907∼2005)와 그녀의 사촌 히야친타(Jacinta Marto, 1910∼1920),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 1917년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기에 앞서 1916년 봄, 여름, 가을엔 천사가 아이들에게 나타나 ‘용서의 기도’, ‘성체의 기도’를 함께 바치며 성모 발현을 준비하기도 했다.

 

 

파티마 성모가 전한 세 가지 메시지

 

1917년 5월 13일 처음 세 어린이에게 나타난 파티마의 성모는 10월 13일까지 매달 한 번씩 나타나 이들에게 세계 평화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요청했다. 특별히 7월 13일 세 번째 발현에서 성모 마리아는 세 명의 어린이들에게 지옥의 환시를 보여주며 “인류가 계속 하느님의 마음을 상해 드린다면 더 무서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당신의 티 없는 성심이 승리하고 평화가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리고 이날 파티마의 성모는 세 가지 메시지를 전했다.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한 세 어린이 중 2005년까지 수도자로 살았던 루치아는 교구장의 명령에 따라 성모님을 만나며 듣고 기억한 것을 문서로 기록했다. 

 

2000년 6월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파티마의 메시지’에서는 파티마의 세 가지 ‘비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비밀은 지옥의 환시다. 루치아 수녀는 “성모님께서는 저희에게 땅 밑에 있는 것 같은 거대한 불바다를 보여주셨습니다. 그 불 속에는 마귀들과 인간의 형태를 한 영혼들이 빠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통과 절망의 비명과 신음 소리를 내면서 사방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습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둘째 비밀은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에 대한 것이다. “불쌍한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티 없이 깨끗한 내 성심에 대한 신심을 세우고자 하신다. 만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 것이 실천된다면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되고 평화가 올 것이다. 전쟁은 끝이 날 것이다”라며 루치아 수녀는 성모의 메시지를 기록했다. 

 

2000년 5월 13일에 가장 늦게 셋째 메시지가 공개됐다. 파티마의 성모를 목격했으나 어린 나이에 숨진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의 시복식에서였다. 셋째 메시지는 ‘교황의 고통’에 대한 것이다. “교황 성하께서는 절뚝거리시는 발걸음으로 몸을 반쯤 떠시면서 고통과 슬픔에 짓눌리신 채, 도중에 널려 있는 시신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산꼭대기에 오르신 교황 성하께서는 큰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으신 채 그분을 겨냥하여 총과 활을 쏘는 한 무리의 군인들에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실제로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일반 알현 도중 터키 출신 청년에게 총을 맞고 4일 만에 의식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 이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께 온 세상을 봉헌하기로 결심하고 인간 세계를 성모님의 사랑으로 감싸달라는 내용의 ‘의탁 기도문’을 작성했다.

 

- 올해 4월 18일 포르투갈 파티마 성지에서 신자들이 파티마 성모상을 앞세우고 행진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평화를 위해 기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나타난 파티마의 성모가 던진 메시지에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전 세계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6·25전쟁으로 고통을 겪고 분단으로 인한 전쟁 위협이 시시때때로 발생하는 한국사회에 파티마의 성모가 던진 평화의 메시지는 간절함으로 다가온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미국의 콜갠(H.V.Colgan) 신부가 창설했다. 본당 신부로 사목하던 그는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약속한 마리아의 약속에 큰 감동을 받고 신자들에게 ‘티 없이 깨끗한 마리아의 성심에 러시아를 봉헌하고, 매달 첫 토요일에 보속의 영성체를 하라’는 성모님의 요청에 응답하고자 하는 사람은 성모님의 상징인 ‘푸른 리본’을 달고 매달 묵주기도를 바치겠다는 서약서를 가져오도록 했다. 콜갠 신부는 “우리는 성모의 푸른 깃발 아래서 성모의 요청을 실천하는 푸른 군대가 돼야겠습니다”라고 외쳤고 이때부터 ‘푸른군대’라는 명칭이 생겼다. 이후 ‘푸른군대’는 1985년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의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1953년 6·25전쟁 막바지에 이른 때에 시작됐다. 1953년 주한 미군 제1해병 군종신부였던 스트럼스키(M.J.Strumski) 신부는 전쟁으로 신음하는 한국을 위해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국제본부에 파티마의 성모상을 보내줄 것을 요청했고 파티마가 속한 레이리아교구의 호세 코레이아 다 실바 주교는 성모 발현 장소에서 축성된 순례 성모상을 우리나라에 보냈다. 1953년 4월 5일, 판문점 인근 광장에서 당시 서울교구장 노기남 주교 집전으로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이 축성돼 순례를 시작하고 노 주교는 한국의 푸른군대 첫 회원이 됐다. 최전방 휴전선을 출발한 파티마 순례 성모상은 서울, 춘천, 대구, 부산, 마산을 순례했다. 순례 도중인 7월 26일, 휴전 협정으로 6·25전쟁은 중단되고 스트럼스키 신부가 본국에 귀국함으로써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활동은 잠시 멈췄다. 이후 1964년 독일 출신 트라우너(A.Trauner, 하 안토니오 몬시뇰)가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한국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은 기도로써 한반도 평화정착을 꾀하고 있으며 2015년 5월 경기도 파주에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봉헌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7일, 조지혜 기자]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중) 올바른 성모 신심

 

파티마 성모도 “일종의 사적 계시” 신앙 도울 뿐… 믿음 대상은 아냐

 

 

성모 신심은 자칫하면 자극적으로 해석되거나 개인의 복을 기원하는 기복 신앙으로 흐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파티마 성모의 메시지 중 세 번째 메시지는 2000년에 공개될 때까지 ‘제3차 세계대전을 예언한 것’, ‘외계인의 공격을 예언한 것’이라는 등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는 소문으로 떠돌기도 했다. 논란과 억측에 휩싸였던 파티마의 셋째 비밀은 ‘교황의 고통’과 ‘참회하라’는 메시지임이 확인됐다.  한국교회에서는 한때 “성모님의 기적이 나에게 일어났고 사적 계시를 받았다”며 많은 신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나주 율리아’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성모 신심의 본질을 알아보고 올바른 성모 신심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가톨릭교회가 제시하는 성모 신심을 알아본다.

 

 

성모 신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성모 마리아 공경에 대해 971항에서 “성모 마리아께서는 ‘천주의 성모’라는 칭호로 공경을 받으시고, 신자들은 온갖 위험과 곤경 속에서 그분의 보호 아래로 달려 들어가 도움을 간청한다. 또한 마리아 공경은 천주의 성모님께 바쳐진 전례 축일들과 묵주 기도와 같은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에 나타난다”며 성모 신심의 본질과 성모 신심이 드러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다. 

 

또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교회헌장」 66항과 67항은 성모 신심에 대해 “교회는 천주의 성모께 대한 다양한 형태의 신심을 건전한 정통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시대와 장소의 상황에 따라 또 신자들의 품성과 기질에 따라 승인”한다고 밝힌다. 

 

이는 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상황에 따른 여러 가지 모습의 신심 행위를 인정한다는 의미다.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된 것으로서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성모 신심 행위를 인정하는 말이기도 하다. 또한 “말로든 행동으로든 사람들을 교회의 참된 교리에 대하여 오해로 이끌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힘써 막아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진정한 신심은 오직 참된 신앙에서 나온다는 것을 신자들은 명심하여야 한다”며 올바른 성모 신심의 기준을 제시했다. 

 

또한 ‘나주 율리아’ 사건 같은 ‘사적 계시’라 주장하는 것에 대해 올바른 성모 신심인지 판단하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는 “가톨릭 신자들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 헌장이 제시하는 성모 신심에 대한 방향(정통 교리를 지키면서 지역과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신심을 표현하는 것)을 확고하게 잡는다면 역동적인 성모 신심 표현이 가능할 것”이라며 오늘날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성모 신심이 의미 있게 다가올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파티마의 성모에 대해 “일종의 사적 계시”라며 “절대적으로 믿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모 신심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

 

2000년 5월 13일 열린 파티마 성모 목격자 시복식에서 당시 교황청 국무원장 안젤로 소다노 추기경은 파티마 메시지를 신앙생활에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는 ‘공적 계시’와 ‘사적 계시’를 구별한다. ‘공적 계시’는 “인류 전체에 하느님이 당신을 알리는 행위이며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에 그 문학적인 표현이 발견된다”고 설명한다. 또한 “그 공적 계시는 신약 성경에 기록된 그분께 대한 증언으로 완성”됐다고 선을 그어 앞으로 더 이상의 공적 계시는 없으며 수정이 불가능한 것임을 밝혔다.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는 ‘사적 계시’를 ‘말 그대로 개인적으로 받은 계시’라고 설명하면서 ‘다만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좀 더 충만하게 할 수 있도록 도울 뿐’이라며 ‘사적 계시’의 역할을 규정한다. 

 

소다노 추기경의 성명서는 “신약 성경의 완성 이후에 있었던 모든 환시와 계시가 사적 계시이며 파티마의 메시지도 이 범주에 속한다”고 말한다. 이어 “사적 계시는 (하느님과 예수님 말씀에 대한) 신앙을 돕는 것이며, 결정적인 공적 계시로 이끌어 줄 때 그 신빙성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아울러 사적 계시의 진실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사적 계시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거나 복음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제시된다면 그것은 성령에게서 온 것이 아니다”라며 사적 계시 자체가 신앙의 대상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1900년~2000년 100년 동안 성모 발현 사건은 전 세계에서 200여 건 이상이 보고됐지만 포르투갈의 파티마(1917년), 벨기에의 보랭(1932년), 벨기에의 바뇌(1933년)만이 교도권의 공식인가를 받았다.

 

 

김정용 신부가 말하는 성모 신심 - “초자연적 현상에 휩쓸리는 등  기복 신앙으로 흐르는 것 지양”

 

“복을 바란다는 것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것이며 중요한 부분입니다.”

 

김정용 신부(광주대교구 사목국장)는 성모 신심이 기복 신앙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이에 더해 김 신부는 “인간의 이러한 근본적인 욕구, 갈망을 적극적으로 해석해 사목의 방향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며 인간의 욕구에 기초한 기복적인 성모 신심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했다. 

 

다만, 기복적 성모 신심의 문제에 대해 “성모님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와 깊이 결합된 삶인데 이것보다 초자연적인 현상 등이 성경에 드러난 성모님의 삶을 압도하는 경우 기복적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이어 “진정한 성모 신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을 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하며 부른 노래 마니피캇(루카 1,46-55)에 그리스도가 추구한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드러난다고 했다. 마니피캇은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라고 노래하며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김 신부는 한국교회의 그릇된 성모 신심으로 신자들에게 재산 피해까지 입힌 ‘나주 율리아’ 사건을 언급하며 “수용하기 곤란하고 기괴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김 신부는 “치유를 필요로 하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그런 현상에 왜 휩쓸리는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런 현상을 두고 김 신부는 교회에 대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현실적인 고난을 겪으며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교회가 얼마나 깊이 연대하고 공감하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교회의 반성을 요청하기도 했다. 

 

김 신부는 광주가톨릭대학에서 9년간 기초신학, 교회론을 강의한 신학자이기도 하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14일, 조지혜 기자]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의미 (하)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행사

 

‘목동 남매’ 성인 선포 후 전 세계 신자들 함성 터뜨려

 

 

- 5월 12일 열린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전야기도회 시작에 앞서 신자들이 파티마 성모상을 들고 행진하고 있다. [CNS]

 

 

[외신종합] ‘평화를 위한 기도의 상징’인 파티마의 성모 발현 100주년을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5월 12~13일 포르투갈 파티마를 사목 방문했다. 특히 교황은 철야기도와 성모 발현을 목격한 두 목동의 시성을 통해 희망과 평화의 복음을 전했다.

 

◎… 5월 12일, 포르투갈 파티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라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파티마 ‘순례’가 기도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교황은 기내에서 수행기자단과 인사를 나눈 후 “이번 파티마 대성당 방문은 좀 특별하다”면서 “이번 여행은 기도의 시간, 주님과 주님의 어머니를 만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파티마 인근 몬테 레알 공군기지에 도착한 교황은 마르셀루 헤벨루 지 소사 포르투갈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환담을 했다. 또 교황은 기지 내 경당을 방문하고 아픈 군인 가족들을 만나 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 몬테 레알 공군기지에서 헬리콥터를 타고 파티마에 도착한 교황은 각종 깃발과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군중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어 교황은 100년 전 성모가 발현한 곳에 지어진 성모 발현 경당을 찾아 침묵 중에 기도했다. 교황은 “장벽을 허물고, 경계를 넘어서 주변부로 나아가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성모의 전구를 빌었다.

 

이어 복자 바오로 6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했던 전례를 이어, 은으로 만든 꽃병에 담긴 순금의 꽃을 성모상에 봉헌했다. 이 경당에 있는 성모상 왕관은 지난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피격 당시 범인이 사용한 총알도 함께 녹여 만들었다.

 

◎… 전야기도회에 참가한 교황은 순례자들에게 “목동에게 발현한 성모의 가르침대로 하느님 자비가 ‘가장 필요한 이웃’을 위해 기도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궁핍한 이들과 내몰린 이들, 소외되고 미래가 없는 이들, 고아와 불의를 겪고 있는 이들 모두에게 강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축복이 내리길 빈다”고 덧붙였다. 특히 교황은 성모 마리아를 “복음화의 모델”로 칭송하며, 우리 모두가 죄인에 대한 처벌보다는 자비를 보여줄 것을 강조했다. 교황은 “판단에 앞서 자비를 보여줘야 할 것”이라면서 “성모와 함께 우리 모두는 주님 자비라는 성사의 증표로 누구나 언제든 용서하자”고 당부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5월 13일 파티마 대성당에서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시성식을 거행하고 있다. 이날 시성식은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기념행사의 절정을 이뤘다. [CNS]

 

 

◎…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행사의 절정은, 성모 발현을 목격했던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의 시성식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5월 13일 두 남매를 성인으로 선언했다. 순교자를 제외하고 미성년자가 시성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종 당시 프란치스코는 11살이고 히야친타는 10살이었다. 남매는 지난 200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됐다. 

 

5월 13일, 파티마 대성당에서 열린 시성식 미사에서, 교황이 “복자 프란치스코 마르투와 복녀 히야친타 마르투를 성인으로 선언한다”고 말하자 50만 군중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교황은 “이들 남매가 기쁨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모든 것을 주님께 바쳤다”면서 “아픈 이들은 질병을 삶의 선물로 여기며 온전히 주님께 봉헌하라”고 당부했다.

 

◎… 한편, 남매의 시성을 위해서는 남매의 전구를 통한 기적이 필요했는데, 이 기적은 브라질에서 나왔다. 지난 2013년 당시 5살이던 루카스라는 아이는 동생과 함께 놀다가 6m 높이의 창에서 떨어졌다. 땅에 머리를 부딪친 루카스는 뇌세포 손상까지 입는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의사는 아이가 살아날 가능성이 아주 낮으며, 회복하더라도 인지장애를 갖거나 식물인간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루카스의 아버지는 당시 아이를 위해 파티마 목동의 전구를 빌었다. 이튿날에는 인근 가르멜 수녀회를 찾아 수녀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온 가족과 이웃들이 모두 파티마의 목동들이 전구해줄 것을 청했다. 4일 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루카스는 의식을 회복했고, 이틀 뒤에는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이후 루카스는 어떤 장애나 부작용 없이 완전히 회복했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21일]

 

 

파티마에서 온 편지 - 성모님 만나러 지구 반바퀴 돌아… 보속과 회개의 묵주기도 바쳐

 

이곳 포르투갈 파티마에서는 50만 명이 넘는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모님의 발현 100주년을 기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에서 발현 목격자인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두 목동이 시성됐다. 이날 파티마는 성모 발현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늘나라에서 땅에까지 오신 어머니의 원의를 기억하며 우리의 삶이 주님을 더 많이 찬미하고 더 깊게 믿으며 더 간절하게 바라고 더 큰 사랑으로 나아가도록 기도하고 격려하는 장이 됐다.

 

성지는 축제의 광장이었다. 100년 전 이날 어린 목동 셋이 하늘나라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성모님을 만났지만, 오늘은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모여와 어머니를 느끼고 기념하며 그 원의를 새겼다.  

 

거대한 찬미 열기 속에는 한국에서 온 수백 명의 신자들도 함께했다. 지구를 반 바퀴 돌아오는 먼 길임에도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 순례자들은 저마다 사연을 안고 파티마까지 날아왔다. 기념 미사에 참석한 한국 신자들은 그룹별로 40여 명에서 100여 명까지 순례단을 꾸려 이곳에 왔다고 한다. 개별적으로 온 순례자들도 더러 있었다. 1~2년 전부터 순례를 준비해 온 순례자들은 5월 10일 혹은 11일 인천공항을 출발해 꼬박 하루를 걸려 파티마까지 왔다.

 

5월 12일 밤, 한국인 순례자들은 발현 기념 전야기도회에 참석했다. 낮부터 구름처럼 모여든 전 세계 순례자들 속에서 한국 순례자들 또한 세계의 평화, 특별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그리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와 보속의 묵주기도를 바쳤다. 촛불이 바다를 이룬 이날 밤 성모 발현 경당을 중심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자신과 이웃의 삶을 봉헌하고, 고통으로 물든 세상이 분쟁에서 평화로 나아가기를 기원했다.

 

13일 오전 6시 이미 광장은 순례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도 태극기를 들고 군데군데 자리를 잡았다. 묵주기도, 입당행렬, 미사로 이어진 예식은 오후 1시가 지나서 막을 내렸다. 순례자들은 너무나 많은 인파들 속에서 서로 움직이는 것조차 힘들었지만 비좁은 대로, 또 사람들에 부대끼면서도 역사적인 순간에 성스러운 자리에 있는 자체로 기뻐하였다. 그리고 성모님을 통해 전해져 오는 하느님의 크신 사랑에 젖었다. 초대받은 기쁨으로 어떤 불편함도 부족함도 모두 감수해냈다.

 

한국에서 온 순례자들은 긴 준비와 많은 시간을 들여 이곳까지 왔는데 빠듯한 일정으로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보다 깊이 기도할 시간을 가지지 못한 점을 못내 아쉬워했다. 공들여 찾아온 땅이 주님의 어머니께서 하느님의 뜻을 밝힌 곳인데 그 마음을 헤아려보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걷고자 하는 의지를 키우고 갔으면 더 좋겠다는 바람은 지울 수가 없다. 다시 올 것을 기약하며 그때는 고요함 중에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것을 기대해본다. [가톨릭신문, 2017년 5월 21일, 최미경 로사리아 수녀(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 파티마 한국인 순례자를 위한 해외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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