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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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유문석 요한, 유중성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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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4 ㅣ No.567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유항검 아우구스티노와 유문석 요한, 유중성 마태오

 

 

지난달에 초남이성지에서 하루를 묵고 전주시내 성지인 숲정이, 전동성당, 그리고 치명자산을 순례하였습니다. 초남이는 유항검 가족이 살았던 곳이고, 치명자산은 유항검 일가(유항검과 아내 신희, 이육희, 유문석, 유중성, 유중철과 이순이)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입니다.

 

 

전라도의 사도 유항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1756-1801년)는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초남에서 아버지 유동근과 어머니 안동 권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가 권상연의 고모였으니, 권상연 야고보와 외종사촌이고, 윤지충 바오로와 이종사촌 간입니다. 그는 재산이 많고 덕망이 높아 사람들에게 대단히 존경을 받았습니다. 1784년 경기도 양근에 살던 권일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에게 교리를 배운 그는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고향으로 내려와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1786년 봄 지도층 신자들이 모임을 갖고 임의로 성직자를 임명(가성직제도) 하였을 때, 호남지방 교회의 초석인 그는 전라도 지역의 신부로 임명되어 활동하다가 1788년 이것이 잘못임을 안 뒤 성무활동을 중단하였습니다. 1791년 윤지충 바오로가 제사를 폐지한 죄로 체포되자 그는 피신하였다가 전주감영에 자수하여 형식적으로 배교를 선언하고는 석방되었습니다. 1794년 말 입국한 주문모 신부가 북경의 구베아 주교에게 선교사를 태운 서양 선박을 조선에 파견해 주도록 요청하는 계획을 세우자 앞장서서 이를 도왔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전라도 교회의 우두머리로 지목된 그는 일찍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습니다. 포도청과 형조, 의금부를 거치면서 문초와 형벌을 받은 그는 선교사와 선박 요청 계획의 주동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순교를 각오하고 있었기에 신자들을 밀고하거나 교회에 해가 되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습니다. 조정은 9월 12일 그에게 모반죄를 적용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전라감영으로 내려 보내 때를 기다리지 않고 처형케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음력 9월 17일 전주 남문 밖에서 순교하였고, 그의 목은 풍남문 누각에 내걸렸습니다.

 

 

유항검의 둘째 아들 유문석

 

유문석 요한(1784-1801년)은 아버지 유항검에 의해서 어릴 때부터 신앙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1801년 박해가 일어났을 때, 부친은 서울로 압송되었고, 형과 친척들은 전주 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여름 내내 전주 옥을 오가며 형에게 음식을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9월15일 의금부의 조치로 남은 가족들과 함께 체포되어 전주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순교를 약속하면서 굳게 마음을 다졌습니다.

 

그 내용은 형수 이순이 루갈다가 쓴 옥중서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0월 9일 옥졸이 그를 불러내어 형제를 한곳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형수가 “가서 형과 같이 계셔요. 그리고 서로 잊지 맙시다.” 하며, “한날 한시에 죽은 것이 원이라는 말을 형님에게 전하시오.” 하였습니다. 그는 그날 형 유중철 요한과 함께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유항검의 조카 유중성

 

유중성 마태오(?-1801년)는 전주에서 태어나 부친 유익검(1751-1786년)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어릴 때부터 작은아버지인 유항검의 집에서 자랐습니다. 1801년 9월 중순 체포되어 전주 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유배형을 받고 함경도 회령으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는 법에 따라 처형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는 친척들과 유배지로 가는 동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관장이 국법에 따라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지 않고 유배를 보냈다.”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전주감사는 그를 다시 잡아오도록 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후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자 “유항검 등 삼촌들이 영광스럽게 죽었으므로 나도 그들과 같이 죽기를 바랄 뿐입니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하였습니다.

 

그는 12월 28일(음) 작은어머니인 유항검의 아내 신희와 유관검의 아내 이육희, 사촌형수인 이순이 루갈다 등과 함께 숲정이로 향하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전라도의 사도인 유항검의 삶과 신앙은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 참된 길임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들 문석은 아버지의 신앙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조카 중성은 삼촌의 모범을 따랐습니다. 가파른 치명자산 십자가의 길을 오르면서, 유항검 가족들의 순교 고통에 동참하려는 기도와 다짐을 하게 됩니다.

 

[경향잡지, 2008년 3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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