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한국ㅣ세계 교회사

[한국] 서평 : 역주 사학징의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2-12-14 ㅣ No.1534

서평 : 역주 『사학징의』*

 

 

우리나라 역사학계와 교회 사학계의 대표적인 학자인 조광 교수가 『사학징의』1·2 역주본을 냈다. 『사학징의』1(2001년)이 나온 이후, 손꼽아 기다려왔던 『사학징의』2가 오늘 출간되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쁘다.

 

이 역주본은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에서 「한국순교자연구」 5권으로 발간되었다. 이 역주본은 이미 발행된 총서 제1권인 『조선왕조실록 천주교사 자료모음』, 제2권인 『고종실록 천주교사 자료모음』, 제3권인 『정조시대 천주교사 자료집』(Ⅰ-Ⅲ), 제4권인 『신유박해 자료집』(Ⅰ-Ⅱ)에 이은 것으로, 제5권 『사학징의』1은 2001년에, 『사학징의』2는 드디어 오늘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역주본은 초기 한국 교회사 연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1801년 신유박해 때 서울과 지방에서 체포되어 포도청 및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은 천주교인들의 진술 내용과 판결문 등을 모아 편찬한 책으로 초기 한국 천주교회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필수적인 자료이기 때문이다.

 

 

내용

 

역주본 『사학징의』1에는 「『사학징의』의 사료적 특성」이라는 논문이 실려있다. 이어 제1장 지시와 보고. 1. 대왕대비가 1801년 1월 10일 박해령을 내리면서부터 12월 25일 옥중에 남아있는 신자들의 처벌을 촉구한 지시와 보고 내용을 연대기식으로 수록하였다. 2. 전라도 신자들을 체포하여 신문한 뒤에 올린 전주 감사 김달순의 제1·2·3차 비밀 보고서(密啓), 유관검 · 윤지헌 · 이우집)의 신문 및 이우집과 유관검의 대질 신문 기록(3월 28일), 유관검과 윤지헌의 공동 신문 기록, 김유산의 신문 기록(4월 26일) 등이 있다.

 

제2장 공문철에는 1. 발송 공문철로 2월 8일부터 5월 8일까지 신자들의 처벌과 관련하여 형조에서 경기 · 충청 감영 · 좌·우포도청 · 의금부 등 다른 기관으로 발송한 공문. 2. 접수 공문철에는 2월 6일부터 1802년 2월 26일 좌·우포도청 · 광주 판관 · 포천 현감 · 충청 감영 · 진위 현령 · 경기 감영 · 사헌부 · 호조 · 경상 감영 · 정선 군수 · 전옥서 · 평안 감영 · 사헌부 · 한성부 · 평택 현감 등에서 형조로 보내온 공문과 보고서를 요약하여 수록하였다.

 

제3장 사형죄인 문서철에는 교회의 지도층으로 활동하거나 체포된 후 배교를 거부하고 사형판결을 받은 37명(정철상, 이합규, 최필제, 정인혁, 최인철, 김현우, 이현, 홍정호, 이국승, 고광성, 정복혜, 윤운혜, 강완숙, 한신애, 강경복, 김연이, 문영인, 윤점혜, 정순매, 김종교, 홍필주, 정광수, 홍익만, 김계완, 손경윤, 김의호, 송재기, 김귀동, 최설애, 황일광, 한덕운, 홍인, 권상문, 김일호, 장덕유, 변득중, 이경도)이 포도청·형조에서 받은 신문 조목과 진술, 자백 내용과 사형 선고문(결안초) 등을, 특히 이름 밑에 가족 관계, 출신지, 세례명, 체포한 기관(국청 및 포도청)과 사형 장소와 순교일을 기록하였다.

 

제4장에는 각종 사학죄인 명단이 정리되어 있는데, 1. 각 도의 사형죄인 문서철에는 각 지방 관아에서 처형한 19명(양근에서 2월 이중배, 유한숙, 윤유오. 여주에서 3월 임희영, 원경도, 정종호, 최창주. 공주에서 7월 김정득, 김광옥. 충주에서 8월 이부춘, 권아기련, 12월 이기연. 김제에서 한정흠, 전주에서 김천애, 무장에서 7월 최여겸, 전주에서 12월 신희, 이육희, 유중성, 이순이). 2. 다른 관청에서 처리한 죄인 31명으로 국청의 사형죄인(최필공, 정약종, 이승훈, 최창현, 홍교만, 홍낙민, 이존창, 김백순, 이희영, 김이백, 김건순, 주문모)과 사사된 죄인(송씨, 신씨), 맞아죽은 죄인(이가환, 권철신, 강이천), 국청의 사형죄인 명단 추가분 명단(유항검, 유관검,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김한빈, 황심, 황사영, 현계흠, 옥천희), 포도청에서 맞아죽은 죄인(박중환, 심아기, 김이우, 조신행), 국청에서 유배 보낸 죄인 명단에는 14명(김종억, 강이문, 이치훈, 이관기, 김여, 김용, 정약전, 조동섬, 이기양, 이학규, 오석충, 김정신, 신여권, 정약용)의 이름과 유배지 등을 수록하였다. 3. 형조에서 처리한 죄인 명단으로 사형죄인 명단에는 37명(정철상, 이합규, 최필제, 정인혁, 최인철, 김현우, 이현, 홍정호, 이국승, 고광성, 정복혜, 윤운혜, 강완숙, 한신애, 강경복, 김연이, 문영인, 윤점혜, 정순매, 김종교, 홍필주, 정광수, 홍익만, 김계완, 손경윤, 김의호, 송재기, 김귀동, 최설애, 황일광, 한덕운, 홍인, 권상문, 김일호, 장덕유, 변득중, 이경도), 형을 받고 풀려난 죄인 명단에는 9명(오현달, 이지번, 조조이, 김희인, 안성교, 한재렴, 이조이, 홍조이, 신옥), 무죄 석방자 명단에는 15명(고조이, 이관기, 최돈행, 이춘홍, 강신, 이총억, 정옥, 임조이, 윤조이, 고조이, 김성서, 이재손, 최조이, 성조이, 이인채), 자수자 명단에는 5명(박순득, 윤태흠, 오조이, 노대의, 김조이), 이송죄인 명단에는 11명(최경문, 최천명, 이취안, 곽진우, 옥천희, 이관기, 유항검, 유관검,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 유배죄인 명단에는 71명(임대인, 윤장, 권상학, 송건, 이인찬, 조봉상, 정섭, 이재신, 신여권, 손경무, 이학규, 김득호, 박윤환, 윤석춘, 심낙훈, 남제, 남송노, 윤현, 최해두, 남필용, 허속, 정원상, 조섭, 홍재영, 김치석, 윤종백, 손경욱, 제관득, 김홍철, 황차돌, 박사민, 한은, 이중필, 최기인, 최인채, 최윤신, 강성철, 정명복, 고윤득, 박점쇠, 방성필, 김한봉, 김세귀, 김세봉, 한재렴, 김희달, 신조이, 이어린아기, 김경애, 이흥임, 김흥년, 조혜의, 강복혜, 이득임, 조도애, 정분이, 이희, 김월임, 김순이, 유덕이, 홍순희, 박성염, 서경의, 정임, 구애, 김염이, 홍어린아기연, 복점, 소명, 이조이, 김성단)과 유배지 등을 수록하였다. 4. 각 도에서 유배 보낸 죄인 명단에는 경기도(24명)에서 여주 5명의 명단(정형상, 정종순, 원경신, 조운형, 정종하)과 유배지를, 양근에서 19명의 명단(이시용, 조응대, 조시탁, 조해, 장지의, 조우교, 이보, 김용정, 이달몽, 이순인, 윤지겸, 장지인, 조상겸, 윤학겸, 숙혜, 이혜증, 유아기, 순덕, 이철임)과 유배지를, 충청도에서는 충주 22명(성명순, 박충운, 이중덕, 이종덕, 이재섭, 한치택, 유국인, 최길증, 이치홍, 권상익, 이세관, 박효인, 최종해, 최조이, 이조이, 정조이, 김조이, 이조이, 덕춘, 정조이, 이조이, 황조이), 홍주에서 12명(최맛재, 이세채, 이취번, 김행득, 박성화, 김두천, 김일찬, 홍덕용, 유공이, 김만기, 이태문, 이점손), 덕산에서 5명(정복선, 유한징, 최취공, 박춘산, 박중돌), 면천에서 4명(이일선, 박유복, 김순재, 김만업), 보령에서 2명(김성옥, 홍낙승), 청양에서 2명(김지백, 이원경), 은진에서 3명(이채운, 이상원, 오한상), 공주에서 김선룡, 회덕에서 송겸수, 정산에서 전일삼, 천안에서 최두거, 결성에서 이방혁의 유배지를, 전라도의 전주에서 21명(낙선, 손도흥, 사현, 신경모, 임도손, 유중덕, 김연손, 사시룡, 일선, 이종덕, 임시형, 윤상득, 김석룡, 박판남, 김영손, 김발귀, 이중이, 보위, 철섬, 두섬, 김노적), 김제에서 3명(염종득, 이선문, 조종대), 고산에서 2명(양해주, 김방통), 영광에서 2명(이종집, 남조이), 함평에서 남중만, 무안에서 고시윤, 흥덕에서 김처당, 금구에서 손동이, 무장에서 최수천, 그리고 동래에서 현계탁, 노선복, 함흥에서 채홍득, 고양에서 이종화, 여주에서 조희, 양근에서 남관, 공주에서 유명환과 김경노, 연풍에서 이항덕의 죄목과 유배지 등을 수록하였다. 5. 황사영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된 7명(황석필, 육손, 돌이, 판례, 고음련, 복덕, 박삼취)의 명단과 이들은 11월 6일 형조에 이송되어 왔고, 12월 19일에 국청의 명령으로 정배를 보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1811년 3월 4일 수원 유수의 장계와 임금의 지시 등을 수록하였다.

 

『사학징의』2는 『사학징의』1의 3. 본 형조에서 처리한 죄인 명단 중에 사형죄인 명단을 제외하고 모두 실려있는데, 즉 매맞고 풀려난 자, 무죄 석방자, 자수한 자, 이송 및 환송관계 문서, 유배된 107명 신자들의 문초와 진술 내용들이다.

 

첫째, 「매맞고 풀려난 죄인 문서철」에는 문초를 받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신앙을 지키다가 매를 맞은 뒤에 배교하고 석방된 9명(오현달, 이지번, 조조이, 김희인, 안성교, 한재렴, 이조이, 홍조이, 신옥)에 대해 매를 때린 다음 신문한 조목과 진술과 결정문(題辭)을 수록하였다. 그런데 한재렴이 1801년 3월 26일 체포되어 형조에 수감된 이유는 이가환과 엮으려는 정치적인 목적 때문이었다. 글재주로 이가환의 칭찬을 받기는 했지만 친하게 지내며 오간 일이 없었고, 사학을 했다는 것을 일관되게 부정했으며, 두 차례의 수색에서도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기에 4월 12일 석방하였다. 그런데 그해 11월 11일 사헌부에서 ‘이가환의 앞잡이와 심복이 되고 사악한 술법을 전달받아 익혔다. 흉악한 무리에게 비용을 제공했다’는 내용의 공문으로 체포되어 신문을 당하면서도 이러한 내용을 부정하였지만, ‘이가환의 칭찬과 부추김을 받았다’는 진술로 결국 순천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기록은 「유배죄인 문서철」에 실려 있다.

 

둘째, 「무죄 석방자 문서철」에는 모두 15명(고조이, 이관기, 최돈행, 이춘홍, 강신, 이총억, 정옥, 임조이, 윤조이, 고조이, 김성서, 이재손, 최조이, 성조이, 이인채)의 포도청과 형조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사실과 신문 조목, 대질 신문, 진술 내용, 직접 쓴 다짐, 결정문 등을 수록하였다. 일찍이 천주교와 관련을 맺었거나 신자들과 관계가 있었는데, 박해 당시에는 직접적으로 천주교 신앙을 부인하는 진술을 하였기에 석방되었다.

 

셋째, 「감화되어 자수한 사람 문서철」에는 박해령이 내려지자 스스로 형조에 나타나 배교를 선언한 5명(박순득, 윤태흠, 오조이, 노대의, 김조이)이 자수한 후에 석방된 사실과 그들이 아뢴 내용 등을 수록하였다.

 

넷째, 「이송 및 환송 관계 문서철」에는 모두 11명(최경문, 최천명, 이취안, 곽진우, 옥천희, 이관기, 유항검, 유관검, 윤지헌, 김유산, 이우집)이 포도청, 충청 감영 등으로 이송한 사실과 매를 때린 다음 신문한 조목과 포도청에서의 진술, 결정문 등을 수록하였다. 그중에는 유항검과 함께 제1권의 「전교주계」에 수록되어 있는 전라도 신자 4명(유항검, 유관검, 윤지헌, 이우집)에게서 서양 선박 영입 방안에 대한 집중적인 추궁과 진술이 있다. 옥천희의 포도청 진술에서 북경에 오고 간 경위, 북경 천주당에서 한 일과 그의 신앙 활동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다. 특히 「무죄 석방자 문서철」에 있는 이관기가 다시 수록된 이유는 그가 다른 관아에서 형조로 이송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섯째, 「유배죄인 문서철」에는 형조에서 각지로 유배에 처한 71명(임대인, 윤장, 권상학, 송건, 이인찬, 조봉상, 정섭, 이재신, 신여권, 손경무, 이학규, 김득호, 박윤환, 윤석춘, 심낙훈, 남제, 남송로, 윤현, 최해두, 남필용, 허속, 정원상, 조섭, 홍재영, 김치석, 윤종백, 손경욱, 제관득, 김홍철, 황차돌, 박사민, 한은, 이중필, 최기인, 최인채, 최윤신, 강성철, 정명복, 고윤득, 박점쇠, 방성필, 김한봉, 김세귀, 김세봉, 한재렴, 김희달, 신조이, 이 어린아기, 김경애, 이흥임, 김흥년, 조혜의, 강복혜, 이득임, 조도애, 정분이, 이희, 김달님, 김순이, 유덕이, 홍순희, 박성염, 서경의, 정임, 구애, 김염이, 홍연이, 복점, 소명, 이조이, 김성단)의 기록이다. 이들의 각 성명 아래에는 가족 관계, 거주지, 체포 날짜, 유배 날짜, 유배지 등이 작은 글씨로 첨부되어 있으며, 형조 진술, 위협하며 신문한 조목과 진술, 매를 때린 다음 신문한 조목과 진술, 결정문 등이 있다. 특히 이가환과 관련하여 그의 생질인 신여권은 국청에서 체포하여 엄한 매질을 하고 진술을 받도록 하라고 하자, 위협하며 신문하고 3차례의 매질을 하며 신문하였다. 이가환의 생질인 이학규는 국청의 명으로 체포하여 위협하여 신문하고 또 매를 때리며 신문하였고, 김득호와 심낙훈, 윤현, 남필용 등은 포도청에서 곤장을, 박윤환은 포도청에서 주리형과 곤장을 맞으며 신문을 당하였다. 남제와 남송로, 정원상, 조섭, 윤종백, 제관득, 김홍철, 황차돌, 박사민, 한은, 이중필, 최기인, 최윤신, 강성철, 정명복, 방성필, 김한봉, 강복혜, 이득임, 조도애, 김달님, 유덕이, 홍순희, 서경의, 정임, 구애, 홍연이, 복점도 주리형을 받았다. 특히 윤지충과 7촌, 정약종과 황사영과는 8촌인 윤종백은 포도청에서 주리형을 받기도, 형조의 신문을 받기도 하였는데, 결정문이 3개가 실리기도 하였다.

 

부록으로는 「추관지」와 「요화사서소화기」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추관지을사춘감결」은 1785년에 김범우가 형조에 체포되어 유배된 사건 내용으로, 『추관지』제4편 장금부(掌禁部) 법금(法禁) 금사학조(禁邪學條)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요화사서소화기」는 1801년 5월 22일 신자들로부터 압수하여 불태워버린 서적이나 성물 목록을 기록한 것으로, 한신애 · 도화동 홍씨 여인 · 조봉상 · 오석충 · 김조이 · 정섭 · 정광수 · 최경문 · 이지번 · 윤현 · 최필공 · 최필제 · 오현달 · 김희인 · 조조이 · 이조이 등에게서 압수하거나 김조이가 바친 목록이다.

 

 

성과와 과제

 

이 역주본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장점을 언급할 수 있다. 첫째, 조광 교수님께서 2001년에 『사학징의』1을 출간하였고, 20여 년이 지나 『사학징의』2를 출간했는데, 표기법과 용어에 통일성이 있다는 점이다. 번역하면서 교수님께서 『사학징의』1에서는 “현대인이 이해할 수 있는 현대어로 번역함을 원칙으로 했다”고 하였고, 『사학징의』2에서는 “오늘날 일반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현대어로 바꾸었다.”고 하였다. 그러기에 『사학징의』1 보다는 『사학징의』2가 더 쉽게 읽혀진다는 점이다.1)

 

둘째, 역주본 『사학징의』1에는 먼저 「『사학징의』의 사료적 특성」이라는 주제의 1. 머리말, 2. 『사학징의』의 존재 확인, 3. 외적 특성에 대한 검토, 4. 『사학징의』 내용 검토, 5. 맺음말과 <별표> 『사학징의』의 절두산본, 동경대본, 김양선본에 실린 내용을 비교한 훌륭한 논문을 실었다. 이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과 후학들을 배려한 역주자의 열정이 돋보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역주본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의 현양과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시복 시성 운동에 좋은 자료이다. 『사학징의』1은 순교자들(3장 37명 순교자)의 기록 위주(27위 복자)이고, 『사학징의』2는 주로 혹형으로 신앙을 포기하여 석방되거나 유배를 당한 신자들(107명)의 문초와 진술 내용들(복자 유항검, 윤지헌, 홍재영, 하느님의 종 옥천희, 이존창 등)이다. 이들의 진술에 나타나는 출신 신분, 탄생지와 거주지, 입교 동기와 세례 여부, 신앙 생활과 선교 활동, 신분을 뛰어넘는 교류 관계, 혹독한 고문을 받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으로 순교한 이들, 하지만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신앙을 버려야 했던 이들, 이것을 통해서 그들을 좀 더 가까이 만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복자들과 ‘하느님의 종’들, 그리고 신앙의 선조들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2)

 

넷째, 역주본은 다방면(인명, 지명, 관직명, 중국 고전, 조선 후기 정치사, 교회 용어 등)의 많은 부분에서 상세하게 각주를 달았는데, 『사학징의』1은 336개, 『사학징의』2는 561개이다. 또한 『사학징의』1·2 모두 뒷부분에 원문을 첨부하여 학술적인 도움을 주고 있다. 학문에 대한 열정과 후학을 위한 큰 사랑으로 큰 모범을 보여주시는 교수님께서 후학들의 연구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을 주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이다. 일반 독자들 뿐 아니라 후학들은 이 책을 통하여 초기 교회사를 더욱 깊이 연구할 수 있을 것이고, 초기 교회사를 풍요롭게 할 것이다.

 

다섯째, 세례명과 교회 용어 등에서 제시한 바는 당시 교회사에 대한 새로운 연구의 단초를 제공해 줄 것이다. 세례명의 경우 서양 성인의 이름을 중국에서 쓰는 한자로 옮겼고, 문초받는 신자들에게서 이 이름을 듣고 우리 식 한자로 기록하였기에, 원어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중국 발음으로 읽어야 원어와 비슷해진다. 역주본에서는 몇몇 분의 세례명의 중국음을 표기하면서 미상 혹은 추정하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사학징의』1에서 현계흠의 불록(茀祿), 김이우의 발라소(發羅所), 김연이의 유아납(柳亞納), 황일광의 심연(深淵), 한정흠의 달니노(達泥老), 낙선의 강량(姜良), 윤상득의 불리사(拂利斯)와 『사학징의』2에서 성조이(馬違, Maria?), 홍재영(玻羅), 조혜의의 을이, 김순이의 다슬라(多瑟羅), · 다슬아(多瑟阿), 강완숙 시어머니의 이로수(二老叟), 유덕이의 갈어사(乫於沙), 윤복점의 윤아(閏阿) 세례명 등에3) 대한 논의를 하여 순교자들의 세례명을 특정하였으면 한다.

 

또한 가성직제도(假聖職制度)는 ‘평신도 모방 성직제’, 혹은 ‘임시 평신도 교계 제도’, 망행성사(妄行聖事) 등으로 불리고 있다. “권도(權道)는 ‘수단은 옳지 않지만 결과가 상도(常道)에 합당하는 방법’ 바로 ‘임시방편’과 통하는 단어이다. 권도신부는 이른바 가성직제도 아래에서 신부로 선임되었던 사람들이 스스로 자신들을 일컫던 말이거나 당시 조선 교회의 신자들이 그들을 불렀던 단어로 생각된다. 오늘날 교회사에서 전통적으로 명명해 온 가성직제와 같은 용어는 ‘권도성직제(權道聖職制)’로 바로잡고, 가성직제도 아래 신부의 직책을 맡았던 이들은 (이인찬을 신문한 조목에 나오는) ‘권도신부’(權道神父)라고 부름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는(『사학징의』2, 115쪽, 각주 165) 주장은 설득력이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학징의』2, 292쪽, 각주 448의 “‘찍어낸(謄出)’이란 용어는 당시 교리서나 기도문들이 목판으로 인쇄되어 보급되었을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고 하였는데, ‘찍어낸’ 것이 아니라, ‘베껴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학징의』2, 281쪽, 282쪽, 310쪽에 이조이는 김정호(金正浩)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사학징의』1, 138쪽에 이조이는 홍탁보(洪鐸輔)와 이혼하였고, 160쪽에 홍정호(洪正浩)는 홍필주의 가까운 친족이었다. 그러므로 이조이는 김정호가 아니라 홍정호의 어머니일 것이다.

 

교회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과 교회사를 연구하는 연구자들에게 있어서 이 역주본은 아주 중요한 자료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책을 역주하신 조광 교수와 이 책을 펴내신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한다.

 

……………………………………………………………………………………

 

1) “相考處置敎味白齊”를 『사학징의』1에서는 “검토하여 조처해 주십시오”(75쪽)로 하였는데, 『사학징의』2에서는 “잘 살펴 처리해 주십시오”(174쪽)라고 번역하였다.

 

2) 조광 교수는 2010년 11월 24일 제14회 한국가톨릭학술상 본상 수상 소감에서 “역사학도가 지나간 사건을 공부하고 그 의미를 궁구하는 목적은 현재의 우리를 알고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기억할 만한 미래를 만들기 위해 과거를 밝혀내고 상상합니다. 역사는 우리의 뒤에만 있지 않고 우리 앞에 놓여있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가톨릭신문』 2010년 12월 5일자).

 

3) 현계흠의 불록(茀祿)은 플로르(Florus)(방상근, 「교회와 역사」, 2009년 3월호). 정민 교수는 發羅所는 바르나바, 柳亞納은 율리아나(Juliana), 深淵은 시몬(Simon), 姜良은 레오(Leo), 拂利斯는 펠릭스(Felix), 馬達은 마르타(Martha), 玻羅는 프로타시오(Protasius), 을이는 바르바라(Barbara), 多瑟羅는 타르실라(Tharsilla), 二老叟는 아녜스(Agnes), 乫於沙는 크리스티나(Christina), 閏阿는 레지나(Regina)일 것이라고((「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4월 25일자), 그리고 김건순의 若撒法(요사팟)은 『성년광익』(11월 27일)에 있는 요사팟(「가톨릭평화신문」, 2021년 10월 31일자)이라고 하였다.

 

* 이 글은 2022년 3월 2일(수) 서소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역주 사학징의』 완간 출판 기념회에서 발표하였고, 좀 더 보완하였다.

 

[교회사 연구 제60집, 2022년 6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여진천(수원가톨릭대학교)]



파일첨부

1,01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