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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사순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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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4 ㅣ No.566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의 사순시기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 주님 만찬 저녁미사 전까지로 예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회개와 기도의 때입니다. 박해시대 신앙선조들은 어떻게 사순시기를 지냈을까요? 현재 시복시성을 추진하고 있는 124위 순교자들의 삶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사순시기에는 하루 한 끼만 먹을 정도로 더 고신극기를

 

김광옥 안드레아(?-1801년)는 사순시기에 엄격히 금식을 하고 여러 가지 극기행위를 실천하였습니다. 그는 천주교의 덕행들을 부지런히 닦아 마침내 어떻게나 자기의 성격을 꺾게 되었던지, 사람들은 (지나치게 사나웠던) 그가 젖먹이가 되었다고 말할 지경이었습니다.

 

김희성 프란치스코(1765-1816년)는 경상도 영양 곧은장에서 살 때, 해마다 사순시기에는 금식재를 엄격히 지키고 여러 가지로 고신극기를 하였습니다. 그는 나무뿌리와 도토리로 연명을 하며 늘 금욕생활을 하였습니다. 타고난 급한 성정을 이기려고 얼마나 노력했던지, 그는 오래지 않아 양순과 인내의 모범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종한 안드레아(?-1816년)는 안동 우련밭에서 살았는데, 사순시기에 보통의 극기행위는 말할 나위도 없고, 거의 날마다 금식재를 지키며 기도하였습니다. 일상 음식은 조밥에 소금을 얹어 먹는 것이었고, 그것도 장만하지 못하면 나뭇잎이나 도토리, 풀뿌리, 산나물 등을 먹고 지내며, 영양가 있고 맛있는 음식을 구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외교인들을 가르쳐서 많이 입교시킨 것은 말솜씨 못지않게 이러한 모범의 효력이 컸습니다.

 

김대권 베드로(?-1839년)는 사순시기에는 여느 때보다도 더 열심히 기도하고 묵상하며 하루에 한 끼만 먹었습니다. 그 한 끼조차 찬물에 밥을 반 사발만 말아 아무 반찬도 없이 그저 소금을 조금 찍어 먹는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심하게 고신극기를 했는데도 그의 체력은 조금도 쇠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엄격히 재를 지키며 자기 성화와 이웃 사랑에 힘써

 

순교자들은 사순시기가 아닌 평상시에도 금식재와 금육재를 엄격히 지켰습니다.

 

원시보 야고보(1730-1799년)는 전에 식탐을 했던 죄를 기워 갚으려고 금요일마다 금식을 하였습니다. 윤점혜 아가타(?-1801년)는 자기 성화에 힘써 매우 엄격한 생활을 하며 자주 금식하고 엄한 극기와 아울러 끊임없이 기도하고 묵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완덕의 길로 매우 빨리 나아갔습니다.

 

이보현 프란치스코(1773-1801년)는 열심이 날로 더해져 보속과 고행에 열중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 산중에서 나물만 먹고 살면서 “천주를 섬기고 자기 영혼을 구하려면 금욕을 실천하든지 순교함으로 목숨을 바치든지 해야 할 것이다. 이것만이 천주의 진정한 자녀가 되는 방법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김세박 암브로시오(1761-1828년)는 성질이 포악하고 앙칼진 아내가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지 못하게 하며 큰 소리로 천주교를 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지쳐서 가족을 떠나 지방 교우들의 거처를 떠돌면서, 교리를 가르치고 성경을 필사하며 생계를 꾸려갔습니다. 식생활에 극도의 절제를 지켜, 나오는 찬이 맛이 있건 없건 엄격한 한계를 정하여 그것을 절대로 넘지 않았습니다.

 

권 데레사(1784-1819년)는 무엇보다도 자기의 영신적 향상을 열망하여 여러 가지 고신극기로 그것을 얻고자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재를 지켰습니다. 그녀는 병약했지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자기의 괴로움을 기쁘게 참아 받았습니다. 기도에 전념한 나머지 육체의 모든 욕구를 잊고, 침식조차 잊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최 비르지타(1783-1839년)는 달력을 마련할 수 없던 시절에 모르고 고기를 먹은 일이 있었습니다. 의심이 나서 알아보니 그때가 사순시기였습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죽는 날까지 그 결심을 지켰습니다.

 

124위 시복시성 대상자 명단에 올라있지 않은 이들도 사순시기는 물론 평상시에도 열심히 재를 지켰습니다.

 

천주교를 안 뒤 모든 미신행위를 끊어버린 이 에메렌시아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다가 남편에게 매질을 당하고 추운 겨울에 옷을 벗겨 눈 속에 내쫓기기도 하였습니다. 20세에 과부가 된 이 막달레나는 남편과 자식이 없음을 원망하지 않고 시부모께 효도하며, 천주께서 자신을 비교적 덕을 닦기 쉬운 처지에 두신 것으로 여기고 늘 감사하였습니다. 그녀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며,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려고 애썼습니다. 황사영 알렉시오(1775-1801년)는 일주일에 두 번씩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기로 하였다가 관면을 청하기도 하였습니다.

 

 

가족에게 미움을 받고, 외교인에게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기도

 

평상시에도 열심히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킨 이들이라 사순시기에는 더욱 열심히 재를 지켰음은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신유박해(1801년)당시 충주목사로 온 이가환은 신자들을 체포하려고 금육일을 골라 자기 집에 선비들을 초대하고 그들에게 고기를 대접하여 천주교를 신봉하는지 안 하는지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신자들이 얼마나 열심히 재를 지켰는지는 다른 보기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병인박해(1866년) 당시 다블뤼 주교 등이 체포되어 서울로 끌려갈 때에, 평택 읍내에서 고기가 들어있는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일행은 그날이 금육일이었기에 식사를 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포졸들이 묻자 천주교 법규를 지키려고 그런다고 하였습니다. 병인박해 때 공주에서 순교한 송차선 토마스는 옥에 갇혀서도 금식재와 금육재를 아주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순교자들과 신앙선조들이 금식재와 금육재를 포함한 교회법규를 얼마나 열심히 지켰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신자들은 누구도경작할 엄두를 못 내는 험악한 산중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외교인들과 떨어져서 살았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거의 다 교리에도 밝고 천주교법규도 열심히 지키며 살았습니다. 외교인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 처지의 신자들을 위해 북경 교구장 주교님에게 금식재와 금육재의 관면을 청한 신미년 백서(1811년)에서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신유) 대박해가 있은 뒤로 천주교에 관한 것은 그 법규며 교리며, 모두가 온 나라 안에 알려졌나이다. 대재(大齋: 금식재의 옛말)와 소재(小齋: 금육재의 옛말)를 명하는 법규로도 교우들을 알아볼 수 있나이다. 그러하온대 천주십계의 첫째 계명과 교회에서 엄히 명하시는 것으로 말씀하오면 비록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어기면 아니 되오나, 대재와 소재를 명하는 법규는 그와 달라서 가끔 관면이 내리는 것을 보았나이다. 길에 나선 사람들과 하인들이 전반적인 관면을 얻을 수 없겠나이까?”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은 박해를 겪으면서도 법규를 철저하게 지키는 신자들을 보면서, 고마움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공적 박해와 위험 외에도 흉년이 닥치면 신자들의 처지는 더욱 비참해집니다. 우리 형제들의 처참한 상태는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을 지경입니다. 1839년 박해 때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 기아와 추위 때문에 죽었는지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벌써 10년이 지났으나 그 재난의 여파와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 당시 그들이 겪은 이야기를 들을 때 저는 천주교 계명의 준수를 저지하고 싶은 고민으로 마음이 갈갈이 찢어집니다”(1851년 10월 15일자 서한).

 

신앙선조들은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행위로, 죄와 욕정의 사슬을 끊고 예수님께 나아가려고, 또 자신을 온전히 예수님께 봉헌하려고 이렇듯 철저히 재를 지켰습니다. 이 때문에 가족에게 미움을 받고, 신자임이 드러나 체포되기도 하였습니다.

 

박해상황에서도 교회법규를 글자 그대로 철저하게 지키려 하고, 고신극기를 실천하며 완덕에 이르고자 애쓴 그분들의 삶이 오늘날 우리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모든 것이 풍족한 이때, 좋고 맛있는 음식을 찾는 일에서부터 절제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러한 작은 절제가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관심과 실천으로 이어져 밥 한 그릇이라도 나누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사소해 보이는 나쁜 습관 하나라도 끊고 더 나은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아가는 사순시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경향잡지, 2008년 3월호, 여진천 폰시아노 신부(원주교구 배론성지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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