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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42: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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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3-15 ㅣ No.777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42)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②


열세 살 성탄절에 특은 받고 이타적 사랑 시작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 며칠 전인 15세의 성녀 소화 데레사.

 

 

1886년 성탄절에 받은 특은

 

소화 데레사는 열세 살이 되던 1886년, 성탄절에 특별한 은총을 받았습니다. 성녀는 훗날 「자서전」에서 이 사건을 “완전한 회개의 은혜”라고 불렀습니다. 예로부터 서양에서 성탄절은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로 지내왔습니다. 단순히 교회 전례력에 따라 예수님의 성탄만을 기념하는 대축일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설처럼 그네들의 성탄절은 그야말로 명절 중의 명절입니다. 그래서 그동안 뿔뿔이 흩어져 있던 가족들이 모여 며칠간 함께 지내며 가족의 정을 나누며 회포를 풀고 서로 준비한 선물을 교환합니다. 그리고 특히 어린 아이들을 위해서는 양말 속에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선물을 미리 담아 선물을 하곤 합니다. 

 

성녀의 아버지는 참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소화 데레사가 열세 살이면 우리나라 관습에 따른 나이로는 열네 살이고 중학교에 들어갈 나이입니다. 엄마를 일찍 여읜 막내딸을 위해서 ‘우리 공주님’ 하면서 지극 정성을 들였지만, 이젠 사춘기로 접어든 다 큰딸에게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낀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셋째 딸인 셀리나와 얘기하면서 이번이 마지막 이벤트였으면 좋겠다고 거실에서 몰래 얘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에서 그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된 소화 데레사는 그때부터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버리고 의젓한 성인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성녀의 마음에는 보다 깊이 애덕이 깃들기 시작했고, 성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자신을 잊을 줄 아는 이타적인 사랑을 실천하기 시작합니다.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기도

 

이렇듯 인성적인 면에서 성숙하기 시작한 소화 데레사는 이를 바탕으로 신앙의 여정에서도 성숙하게 됩니다. 그 시절 특히 성녀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곤 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성녀가 「자서전」에서 애정을 갖고 회상한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당시 성녀는 어느 날 신문을 보면서 극악무도한 어느 살인자에 대한 기사를 보게 됩니다. 하룻밤 새에 3명을 잔인하게 죽인 ‘프란치니’라는 살인자였는데, 때마침 그는 사형선고를 받아 죽음을 기다리던 때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죽음이 임박해서도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회개도 하지 않고 고해성사도 보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화 데레사는 그 기사를 보면서, 애틋한 마음이 들어, 매일 ‘프란치니’의 회개를 위해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몇 달 후 신문에 그에 대한 기사가 나길, 프란치니가 사형당하기 바로 전에 “십자가, 십자가를 제게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당시 사형 집행에 함께했던 교정 사목 담당 신부님께서 프란치니의 입에 십자가를 가져갔고, 프란치니는 십자가에 친구를 하며 회개한 다음, 사형 집행에 임했다고 합니다.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하기 전에 신앙생활을 하며 겪었던 이 체험은 성녀로 하여금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 주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성녀는 장차 기도를 통해 영혼들을 구원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으며, 훗날 병이 들어 임종하기 전에는 자신이 죽은 다음에 천상에 가서 ‘장미 비’를 뿌리며 이 지상의 영혼들을 위해 계속 주님께 전구하는 작은 영혼이 되겠다는 원의를 품게 됩니다.

 

 

열다섯 살에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

 

이런 일련의 체험을 하면서 데레사는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하느님의 깊은 부르심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기회를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리지외가 속한 바이유 교구의 주교님께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하게 됩니다. 그때가 1886년으로 소화 데레사는 당시 만 열세 살이었습니다. 아직은 어린아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나이에 성녀는 봉쇄 수녀가 되어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고 교회를 위해 그리고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당시 소화 데레사는 수녀원 입회 허락을 청하기 위해 주교님을 뵈러 가면서 나이보다 좀 더 성숙하게 보이기 위해 머리도 올리고 옷도 숙녀들이나 입는 정장을 하고 갔다고 합니다. 그런 소화 데레사를 보면서 주교님은 한편으로 웃음도 나셨을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매우 대견해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주교님은 소화 데레사에게 아직 나이가 어리니 몇 년은 더 기다리며 공부도 하고 또 수도생활을 위해 여러모로 준비를 잘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으시며 조건부 허락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착하고 순하면서도 고집이 셌던 소화 데레사는 그런 으름장에 굴하지 않고, 이듬해인 1887년 초겨울에 아버지와 함께 순례 그룹에 합류해서 유럽 각지를 순례하며 교황님께 직접 허락을 청할 마음을 먹게 됩니다. 실제로 이 순례 그룹은 로마를 순례하면서 교황님을 알현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소화 데레사는 당시 레오 13세 교황님의 품에 달려들어 입회를 허락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신 교황님은 ‘주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되겠지’ 하며 모호한 대답만 해 주셨고 이내 주위 사람들에게 떠밀려 알현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그 후 소화 데레사는 적잖이 실망하며 순례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여러 경로를 통해 로마에서의 에피소드를 들은 리지외의 주교님은 그로부터 몇 달 후 소화 데레사에게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할 수 있는 허락을 주었습니다. 결국 소화 데레사는 1888년 4월 9일, 만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함으로써 본격적인 성성(聖性)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평화신문, 2016년 3월 13일, 윤주현 신부(대구가르멜수도원장, 대전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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