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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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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3 ㅣ No.565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 유중철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완덕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동정부부로

 

유중철(柳重哲 요한, 1779-1801년)은 전북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초남마을에서 아버지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 1756-1801년)과 어머니 신희(申喜, ?-1801년)의 4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에게 받은 신앙과 교육으로, 그를 본 사람들은 “성실하고 솔직한 신심, 굳은 신앙과 열렬한 애덕을 갖추었다. 본분에 충실하고 올바른 생활을 하며, 세속의 모든 허영을 업신여겨 젊은 나이에도 점잖고 진중한 어른 대접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1795년 주문모 신부님이 방문했을 때 첫영성체를 하였고, 동정생활을 하겠다는 결심을 드러냈습니다.

 

이순이(李順伊 루갈다, 1782-1801년)는 서울 중림동에서 아버지 이윤하(李潤夏 마태오, 1757-1793년)와 어머니 권씨(1754-1835년)의 3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나, 아버지에게서 교리를 배우고 어머니에게서 글을 배웠습니다. 오빠인 이경도 가롤로는 1801년에 서울에서, 동생 이경언 바오로는 1827년에 전주에서 순교하였습니다(2008년 1월호 참조).

 

그녀는 1795년에 주문모 신부님께 첫영성체를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자신을 거룩하게 보존하고 예수님을 영혼의 배우자로 삼아 사랑하는 주님을 즐겁게 해드리고자 동정으로 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녀의 믿음살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초대교회의 위대한 네 동정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3세기에 순교한 동정순교자 아가타 성녀였습니다.

 

유교사회에서 결혼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797년 딸의 결심을 들은 어머니는 주 신부님과 상의를 하였고 신부님은 유중철 요한을 떠올렸습니다. 완전한 하느님의 자식이 되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완덕의 모범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살기를 열망하는 두 남녀의 성소를 지켜주려고 하였던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형식을 빌려 둘이 동정의 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혼인을 주선하였습니다.

 

드디어 1798년 10월 둘은 시부모 앞에서 동정서약을 하고 오누이처럼 살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재산과 가업을 물려주시면 서너 몫으로 나누어서 한 몫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한 몫은 시동생에게 넉넉하게 주어 시부모님을 모시도록 하고, 세상이 좋아져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면 각각 헤어져 살자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렇게 둘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는 동정부부의 삶을 시작하였습니다. 동정서약을 어길 유혹이 생길 때마다 둘은 믿음과 사랑 속에 기도와 묵상으로 극복해 나갔고, 함께 순교의 길로 나가자고 굳게 다짐하며 4년의 살얼음판 같은 동정살이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피묻은 쌍백합, ‘누이여, 하늘나라에 가서 만납시다’

 

유중철 요한은 1801년 3월 초순 신유박해에 체포되어 서울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가, 다시 전주 옥에 갇혀 밤낮으로 목에 칼을 쓰고 있어야만 하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조금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신앙을 보존하다가 그해 음력 10월 9일 교수형으로 동생 문석과 함께 순교하였습니다.

 

유품 속에 루갈다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었는데, 신앙을 잘 지켜나갈 것을 당부하고 위로하며, “누이여, 하늘나라에 가서 만납시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요한에게 루갈다는 믿음의 아내, 희망의 벗, 성실한 사랑의 반려자였습니다. 두 사람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표본으로 남겨주신 은총이었습니다.

 

이순이 루갈다는 9월 중순 체포되어 전주감영에 끌려갔습니다. 그녀는 감옥에서 어머니에게 서한을 보냈습니다. “주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순교의 열매를 맺는 날이면, 어머니께서도 자랑스러운 자식을 두었다고 여기실 것이고, 저 또한 어머니의 떳떳한 자식이 될 것입니다. … 이 세상 삶을 다 마치시면, 못난 자식이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영광을 받아, 가이없이 행복한 모습으로 손을 마주잡고 하늘나라로 모셔 들여 함께 영원한 행복을 누리렵니다.”

 

두 언니에게도 서한을 보냈습니다. “좋은 기회가 오면 주님을 위해 목숨 바칠 뜻을 마음속 깊이 정하고, 이 뜻을 가슴에 새기고 새기며 그 준비에 힘썼어요. … 시어머님, 시숙모님, 시동생, 시사촌동생과 더불어 다섯 사람이 서로 약속하기를,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고자 하였고, 각자 결심한 뜻은 쇠와 돌처럼 아주 굳었어요. 서로 마음이 통하고 뜻이 같으니, 가득한 믿음과 사랑이 다섯 사람 사이에 조금도 다름이 없었기에 가슴에 가득 찼던 설움이 자연히 잊혀지고, 갈수록 주님 은총을 입어 영혼의 기쁨이 넘쳐나 아무 근심걱정이 없게 되고 마음에 걸리는 잡념이 사라졌어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돌아보아도 마음 둘 데가 없어 생각하는 것은 오직 주님이며, 제 마음이 향하는 곳은 하늘나라뿐입니다. … 언제나 힘껏 뜨거운 사랑을 실천하시고, 깊이 뉘우치는 뜨거운 사랑이 아주 없을지라도 힘써 사랑을 실천하면서 주님께 간절히 구하면, 주님께서 착하게 살아 복된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한때나마 방심하였거든 깊이 뉘우치고 깨우쳐서 열심히 주님께 뜨거운 사랑을 드리면 점점 주님께 가까워지실 것입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착한 일로 공을 쌓으시고, 몸 건강하시고 영혼과 육신을 정결하게 하시어 다 함께 하늘나라에 가서 대부모이신 하느님과 부모님을 즐겁게 모시고, 형제가 영원히 함께 살면서 즐거움을 누리기를 바라고 바라며, 죽어서도 끊임없이 주님께 간절히 청하겠습니다. …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말은 참되다 하지요. 곧 죽게 될 제가 드리는 이 말이 그르지 않을 것이니 꼭 명심해 주셔요.”

 

루갈다는 그해 음력 12월 28일에 숲정이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습니다.

 

두 분의 신앙과 삶을 본받고자 2001년부터 해마다 전주교구가 주최하고 전북, 전주시가 후원하는 순교현양 문화축제 ‘요한 루갈다’제가 열립니다. 1994년에 치명자산에 두 순교자의 기념성당이 봉헌되었습니다. 초남이 성지에서는 둘이 살았을 세 칸 한옥의 행랑채를 복원하고, ‘이순이(루갈다) 시집온 날’ 기념미사를 2001년부터 봉헌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는 오페라‘쌍백합, 요한 ? 루갈다’(호남 오페라단)가 전주에서 공연되기도 하였습니다.

 

읽을 책으로는 “피묻은 쌍백합”(김구정, 가톨릭출판사), “누이여, 천국에서 만나자”(노순자, 성바오로),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편지”(김진소 편저, 호남교회사연구소) 등이 있습니다.

 

[경향잡지, 2008년 2월호, 여진천 폰시아노(원주교구 배론성지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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