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홍) 성 마티아 사도 축일 너희가 나를 뽑은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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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124위 순교자전: 이경언 바오로와 이경도 가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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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8-10-13 ㅣ No.564

[한국 교회 124위 순교자전] 이경언 바오로와 이경도 가롤로

 

 

12월 중순 배론성지 안내 봉사자들과 함께 ‘신앙의 숨결이 숨쉬는 곳’인 전주의 성지를 순례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전주에서 순교한 이경언 바오로(1792-1827년)와 그의 형 이경도 가롤로(1780-1801년)의 삶과 신앙을 전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누나와 형의 뒤를 따른 이경언

 

이경언 바오로는 1801년 신유박해 때 형인 이경도 가롤로와 누나인 이순이 루갈다가 순교한 뒤로 어머니와 형수와 함께 살면서 가난한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명도회(주문모 신부가 중국 북경에 있는 단체를 모방하여 설립한 교리연구와 전교 단체)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교회서적을 필사하거나 상본을 모사하였고, 이를 교우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마음속에 순교할 뜻을 품고 있었습니다. 옥중에서 어머니와 가족에게 보낸 서한에서 “놓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기회입니다. 그래서 저는 천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로 결심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1827년 정해박해에 그는 전주 관아에 고발되었습니다. 서울 포도청에 압송되었던 그는 조정의 명에 따라 전주로 이송되는데, 이때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고 가셨는데, 내 어찌 이 길을 마다할까 보냐. 걸음걸음 예수님을 따르리라.” 하고 다짐하였습니다. 18일을 걸어 전주감영에 도착한 뒤 “누님을 따르자. 정말로 누님이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 거야.” 하고 생각하니, 이경언의 마음은 기쁘면서도 슬펐습니다.

 

관찰사가 “천주를 보았느냐?”고 묻자, 그는 “어찌 보고서야 믿겠습니까. 사또께서는 이 선화당을 지은 목수를 보셨습니까? 오관이라 하는 것은 소리 색깔 냄새 맛이나 분별하지만, 형체를 볼 수없는 의리는 마음이 분별합니다.”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배교를 명하자, 그는 “의리로써 말씀드리면, 천주학은 신분이 높고 낮음과 귀하고 천함이나 용모가 반듯하고 못생긴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고, 다만 슬기롭고 총명한 영혼이 사리를 밝게 분별하는 데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는 교우들의 이름을 고발하고, 서적을 바치고, 천주를 배반하도록 닦달을 당하며 형틀에 올려 맨 상태에서 수없이 매를 맞았습니다. 기운이 다 빠져 말하기가 힘겨운데도 그는 “아는 천주학쟁이도 책도 없고, 천주는 배반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였습니다.

 

그는 형틀에 오르면서 마음속으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그리며 매 맞으심을 생각하고는 매를 맞을 때마다 성모님을 불렀습니다. 매질이 스무 대를 넘으면서 정신이 가물가물해지자, “주님, 간절히 바라오니제 생명을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간절히 기도를 올렸습니다.

 

그는 옥중편지에서 부인에게 “비록 내가 남편의 본분을 잘 채우지는 못했어도 천국에 올라가는 은혜를 얻게 되면 당신에게 착히 살고 착히 죽은 은혜를 얻어주기 위하여 전구하겠고, 또 나 자신이 천주께서 당신에게 내려주시기로 된 행복을 전하는 사자가 되어 당신에게 마주 와서 손을 이끌어 영복을 누리는 곳으로 인도하겠소.” 하였습니다. 자식들에게는 “천주의 성의를 충실히 따르고 어머니께 효도의 본분을 지키도록 하여라. 다른 모든 사람에게도 공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래서 이 세상에서 착한 길을 따르면 분명히 천국에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하였습니다.

 

그는 명도회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세상은 참으로 한 순간에 지나지 않으니, 선종을 얻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고 모든 방법을 쓰십시오. … 내가 먼저 천국에 올라갈 수 있게 되면 어느 분이든지 이 큰 집에 오실 적에 풍악을 갖추어 가지고 마중 나가 우리 공번된 아버지께로 같이 올라가 그분을 찬미하고 즐길 것입니다.” 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1827년 6월 27일(음 윤 5월 4일) 전주 옥중에서 하느님께 영혼을 바쳤습니다.

 

 

신체적 결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이경도

 

이경도 가롤로는 이경언의 형으로서 성격이 온순하고 너그러웠고, 장성하면서 학문에도 재능을 보여 교회서적을 연구하기에 부족함이 없게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어릴 때 병을 앓아 곱사등이가 되었지만 자신의 신앙과 의지로 이러한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최필공 토마스 ? 홍재영 프로타시오 ? 황사영 알렉시오 등과 함께 신앙활동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되어 포도청과 형조에서 문초와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해 12월 26일(음)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순교하기 전날 어머니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습니다.

 

“주님께서 이 몹쓸 큰 죄인을 특별한 은혜로 천만 뜻밖에 불러주시니, 지은 죄를 마땅히 뉘우치고 주님을 향한 열정을 다하여 죽는 것으로나 은혜를 갚는 것이 옳겠습니다. 그렇지만 평생에 지은 죄가 하늘에 닿을 만큼 엄청나서 이렇게 특별한 은총을 받고도 마음은 목석 같아 감격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으니, 아무리 주님께서 무한히 인자하시다는 것을 생각하더라도 저 자신이 어찌 부끄럽지 않으며, 받을 엄벌이 두렵지 않겠습니까? 오직 생각하는 것은, 저의 죄악도 무한하오나 주님의 인자하심 또한 무한하다는 것이옵니다. 주님께서 자비로우신 손으로 저를 이끌어주시면, 만 번 죽은들 무엇이 아까우며 무엇에 애착할 것이 있겠습니까?

 

… 내일이면 이 세상을 영영 떠나게 되니, 어머니 자식 노릇을 할 수 있는 날이 없사옵니다. 이 세상에 낳은 부모자식간의 정이야 어찌 억누를 수 있겠습니까마는, 부싯돌에서 튀어나오는 불똥같이 빠른 세월이니 그리 오래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저의 이 죽음은 어머니께 영원한 복을 누리실 천당 문을 열고,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실 값을 드릴 것입니다. … 제 아들 귀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귀비야, 부디 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가족들과 흩어지지 말고 함께 있다가 하늘나라에 올 때는 다 같이 오너라.”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굳은 믿음과 천주교 교리를 올바르게 인식한 이경언 바오로는 우리를,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는 길로 인도해 줍니다. 신체적 결함을 신앙으로 극복한 이경도 가롤로는 우리에게 하늘나라에 오도록 요청하고 있습니다. 이 두 분과 이순이 루갈다의 신앙이 담긴 옥중수기 “이순이 루갈다 남매 옥중편지”, 김진소 편저 / 양희찬 ? 변주승 옮김, 호남교회사연구소, 2002)를 꼭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경향잡지, 2008년 1월호, 여진천 폰시아노(원주교구 배론성지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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