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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교계제도와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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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3-07 ㅣ No.690

[돌아보고 헤아리고] 교계제도와 시노달리타스(Synodalitas)

 

 

올해는 한국 천주교회에 교계제도가 설정된 지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1831년 9월 9일 조선 천주교회가 북경교구로부터 분리되어 ‘대목구’로 탄생한 지 131년이 지나서, 1962년 3월 10일 대목구 11개가 정식으로 ‘교구’로 승격되었고 서울 · 대구 · 광주는 ‘대교구’가 되었습니다. 교종의 이름으로 직권을 행사하던 대목구장들이 본인의 이름으로 관할하는 교구장 주교들로 승격되었고, 이로써 ‘한국교회’는 교회법적으로 완전한 개별교회로서 제도적 체계를 갖추게 된 것입니다.

 

교종 요한 23세는 1962년 3월 10일 교서 「복음의 비옥한 씨(Fertile Evangeli Semeni)」를 통하여 한국교회의 교계제도 설정을 공포하였고, 6월 29일 명동 대성당에서 교계제도 설정식이 거행되었는데 노기남 · 서정길 · 하롤드 헨리 대주교가 로마에서 온 팔리움(pallium)을 받았습니다. 이후 다른 지역의 교구장 착좌식도 잇따라 거행되었으며, 그해 10월에 개최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 한국의 주교들이 참석하였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60년 동안 괄목한 만한 성장을 이뤄왔습니다. 무수히 많은 국제적인 가톨릭교회 공식기관에도 한국의 성직자 · 수도자 · 평신도들이 참여해 왔으며, 소위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국제적인 위상도 바뀌었습니다. 한국교회는 1962년 교계제도 설정 당시 물질적 자립 기반이 약해서 ‘포교성성(현 인류복음화성)’에 속해 있었지만, 전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바티칸 재무위원회 소속으로 활동하였고, 2021년에 유흥식 대주교는 바티칸 성직자성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며, 2022년 1월에는 김나영 자매가 바티칸에서 평신도로서 처음으로 독서직 직무를 받을 만큼 한국교회의 위상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교계제도는 (좁은 의미에서) 그리스도로부터 축성되어 사명을 받은 교종, 주교, 사제, 부제의 공적 직무체계를 지칭해 왔습니다(교회 헌장 28항). 교회는 초대 교회 때부터 교회 자신을 실현하고 외부 세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한 성령의 은사를 올바로 분별하고 그 은사를 보전하기 위한 제도(institutio)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본래 교계제도(hierarchia)는 ‘신성성(hieros)’에 바탕을 둔 지배(archia)를 뜻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은 세속화 · 탈종교화되어 가고 있고,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 사이에 위계(hierarchy) 구조를 거부하는 경향이 매우 커지고 있는 현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권위’와 ‘거룩함’에 기반한 교계제도는 세상의 조직 · 제도와는 다릅니다. 교계적 권위는 교직자의 지배와 권세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거룩함으로 이끌어나가는 ‘진정성과 사랑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청년 세대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외적 권위’로부터 오는 부당한 압력에는 저항하지만, 참되게 봉사하고 책무를 다하는 ‘내적 권위’에는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습니다. 1950년대에 이미 이를 간파했던 신학자 이브 콩가르(Yves M.J. Congar, 1904~1995)는 ‘내적 권위’를 통한 ‘교회 쇄신’을 주창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계제도의 본질인 “신성성”의 다양한 발현 양상(성령의 열매)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컨대 교계제도 연구의 중차대한 과제는 ‘거룩함과 초월성’을 교회 안과 밖 일상의 삶의 자리, 시민사회, 국가 정치 안에서 증거하는 교계제도의 역할을 발굴하고 심화하는 미션(사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역사적으로 ‘순교의 피’를 통해서 성장한 교회는 (좁은 의미의) 교계제도의 위상을 보존하고자 할 때 더 이상 억압과 박해가 없도록 ‘정교분리’를 선택해 왔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고난과 민초의 수난을 외면해 온 교회는―프란치스코 교종께서 「모든 형제들(Fratelli Tutti)」에서 강조하듯이 ‘사회적 우애’와 ‘정치적 사랑’을 저버린 교회는 - ‘썩지 않는 밀알’이 될 수도 있음을 장구한 세계 교회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는 「교회 헌장」에서 “교계제도”에 앞서서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 있게 다루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따라서 교계제도에 관한 연구 혹은 교회 조직 · 기관의 ‘제도사’ 연구에서도 ‘하느님의 백성’의 능동적 역할과 주체적 참여가 심도 있게 다뤄져야 하겠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위해 존재하지만, 양들의 친교와 참여가 없으면 목자의 존재 가치도 사라집니다. 안타깝게도 그간 교계제도의 폐쇄성은 전 세계적으로 성직주의와 교회 관료제 시스템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였기에,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役事)하심을 가로막아 왔던 현실에 대한 역사적 성찰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종께서 제16차 세계 주교 시노드(synod)의 안건으로 제시하신 “시노달리타스 : 친교, 참여, 사명”을 향해서 ‘함께(syn) 걷는 여정(hodos)’은 너무나도 절박한 교회의 자기성찰과 자기인식, 자기실현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평신도로부터 시작했고, 목자와 양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의 진리를 증거해 온 ‘장한 순교 역사’를 간직한 한국 천주교회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서 ‘교계제도’의 본원적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하느님의 백성’과 더불어 ‘시노달리타스’의 순례 여정 속에서 ‘복음의 기쁨’이 충만해지기를 마음 모아 기도드립니다.

 

[교회와 역사, 2022년 3월호, 오세일 대건 안드레아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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