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영혼을 여는 문 이콘: 기대어 누운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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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6-05-29 ㅣ No.259

[영혼을 여는 문 이콘] 기대어 누운 그리스도

 

 

- 기대어 누운 그리스도(Christ Anapeson (Christ Reclining)), 크레타의 테오판네스. 스타브로니키타 대수도원 성 니콜라스 성당, 1545, 그리스.

 

 

지난번에 소개한 것과 같이 수염이 없는 그리스도 임마누엘께서 누워 자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한 이콘이 ‘기대어 누운 그리스도’(Christ Anapeson)이다. 이러한 형태의 이콘은 13세기 그리스 아토스 산의 판토크라토르 수도원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평화로이 잠자는 아이로 묘사된 이 이콘은 Anapeson(Αναπεσων)이라고 불리는데 이 말은 그리스어로 ‘기대다’, ‘눕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후 16세기 러시아로 퍼지면서 여러 변형이 생기는데, 아기 그리스도는 가로로 누워 있지 않고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누워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와 함께 휴식과 명상을 하고 있는 모습으로도 묘사한다. 그리고 “보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 졸지 않고, 잠들지도 아니하신다.”(시편 121,4)라는 구절에 따라 두 눈이 떠 있는 모습으로 묘사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오른손으로 턱을 괴고 있고, 왼손에는 말씀이 담긴 두루마리를 들고 있으며, 앞으로 다가올 수난과 천국을 생각하면서 먼 곳을 응시하고 있다. 왼쪽 위에는 천사가 나타나 한 손에 십자가를 들고 있는데 이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신중히 비유한 것으로, 이렇게 누워서 잠을 자는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훗날 그가 십자가 위에서 죽은 후 무덤 속에서 깊은 영면에 드셨던 모습을 예표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이 이콘은 시편의 “떠날 때에도 돌아올 때에도 너를 항상 지켜 주시리라. 이제로부터 영원히.”(시편 121,8)라는 구절에 근거해 전통적으로 성당의 뒤쪽인 서쪽 벽, 즉 성당의 중앙 출입문 안쪽 위에 그려진다. 성당의 건축은 동, 서방 교회 모두 종말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주님께서 다시 오시리라는 믿음에 제단을 동쪽에 배치하고 해가 지는 서쪽에 입구를 배치하여 이곳에 주로 최후의 심판을 그리거나 조각했다.

 

이 이콘은 특히 창세기 49장 9절 예언의 성취 즉 유다의 사자이신 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해 묘사한 것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즉 이 Anapeson 이콘에서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하느님 아들의 육화를 역설적으로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명상으로 묘사된다. 아기 그리스도는 자신의 어머니의 보호 속에 깊이 잠들고 있는 모습으로, 음식과 따뜻함과 휴식이, 그리고 보호가 필요한 작고 여린 신생아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분은 하느님의 모든 신적 속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유다의 사자와 같이 용맹하고 힘이 있으신 분이라는 것이다. 머리 주위의 후광 속에는 십자가 모양으로 선을 그리고, 그 안에는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에게 ‘나는 곧 나다’(탈출 3,14)라고 하신 하느님의 말씀을 그리스 문자로(Ο ων) 써서 우주를 창조하고 관장하시는 하느님, 바로 그분이 자신을 낮추어 이렇게 어린아이로 태어나셨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 국내 이콘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정교회 모스크바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 과정 등을 수학한 후 디플로마를 취득, 이콘 화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1992년 사제품을 받았다.

 

[가톨릭신문, 2016년 5월 29일, 장긍선 신부(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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