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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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 별별 이야기: 첫영성체 교리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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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7-14 ㅣ No.1007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3) 첫영성체 교리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상)

 

 

데레사씨는 10여 년 전 부모님과 몇 차례 심하게 다투고 난 후 친정과 발을 끊고 살아왔다. 6학년, 5학년 연년생인 손자와 손녀가 그 나이 되도록 첫 영성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친정 부모님이 크게 노하시며 당장 첫 영성체 교리를 시키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 데레사씨는 이러한 부모의 태도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자신은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신앙을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이 합리적인 종교관이라고 확신하였다.

 

데레사씨는 종교를 선택하고 믿음을 가지는 행위는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로 보았다. 따라서 아무리 부모라 해도 종교의 자유를 아이로부터 빼앗을 권리는 없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조부모님은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종교 교육을 일찍부터 시켜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완고한 무신론자로 살아가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 종교의 자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혼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 두 입장은 언뜻 갈등 관계인 것처럼 보이나 사실 그렇지 않다. 종교와 영성에 대해 조금만 이해를 하게 된다면 이런 문제로 부모와 자식 간에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 대부분은 특정 종교, 즉 가톨릭교회 안에서 교리교육만을 받아왔기 때문에 좀 더 큰 관점에서 종교와 영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과학적 이성주의 교육을 받은 자식들과의 대화에서는 좀 더 큰 차원에서의 종교와 영성에 대한 개념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먼저 데레사씨의 입장은 자녀들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자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의 믿음과 신앙의 자유를 억압하거나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은 헌법뿐 아니라 인간에게 보장된 가장 기본적인 권리이다. 하지만 데레사씨 부모의 입장은 종교 자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데레사씨가 이해한 것처럼 자녀들에게 종교 예식을 통해 특정 교리를 세뇌시키자는 뜻은 적어도 근본적으로 아니다. 데레사씨의 부모들은 그러나 다른 신앙을 받아들이기 전에 가톨릭 신앙을 먼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에서 그러한 의도를 지니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의도야 어떻든 간에 데레사씨의 부모 입장은 아이들에게 우선적으로 중요한 권리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즉 부모는 아이들의 영성 발달을 위한 영성적 양육의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 선택의 자유보다 더 근원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로서 모든 인간에게 예외가 없다.

 

아이의 생존과 신체적 발달에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채워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요 역할이다. 이때 아이의 선택권은 온전히 부모에게 양도된다. 아이가 자신의 자유와 선택권이 일정 기간 부모에게 양도되는 경우는 비단 신체적 발달에만 그치지 않는다. 인간은 신체적 성장만이 아닌 지성적, 정서적,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 성장을 해야만 한다. 그래야 온전한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여러 성장 혹은 발달라인에서 우리가 종종 간과하고 있는 것이 아이의 영성 발달이다. 즉, 어린 시절 영성 발달라인에서 결핍을 가진 아이들은 훗날 개인적인 면에서는 물론 사회 공동체적인 면에서 문제를 체험하게 된다. 종교나 신앙 교육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아이들의 입장에서는 영성 발달을 성장시켜주는 중요한 삶의 과정이다.

 

세속주의와 물질주의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진정한 삶의 의미와 행복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영성적이며 초월적인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은 지성, 정서, 그리고 신체적 발달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발달 과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아이들은 지성, 감성, 신체, 사회성, 도덕성, 초월성 등의 다차원적인 인간성을 발달시키며 청소년 시기에 절정을 맞게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영성적 차원에서의 충분한 발달, 즉 영성적 감수성을 계발시킬 기회가 사라지면 이후에 그것을 만회하기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여간 어렵지 않게 된다.

 

만일 이 사실을 데레사씨가 알고 있다면 자신의 부모가 말하는 내용을 좀 더 합리적이고 비판적 관점을 가지고 수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1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14) 첫영성체 교리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

 

 

어린 시절 영성 발달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종교 교육과 신앙 교육이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데레사씨처럼 아이들에게 특정 종교나 신앙을 가르치지 않고 싶다면 자신이 다른 방식으로 나름의 영성 교육을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영성 발달은 반드시 종교나 신앙 안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종교와 신앙을 배제한 채 영성적 감수성을 발달시킨다는 것은 쉽지 않다. 현대인들은 근대주의, 과학주의, 세속주의, 기계주의, 환원주의 그리고 유물론적 세계관과 자본주의의 병폐인 물질만능주의로부터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종교와 신앙을 배제하고 영성 발달을 추구한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다.

 

신성하고 초월적인 존재(혹은 하느님)에 대한 감수성,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존엄성, 인간과 자연의 상호연관성, 사랑과 연민, 인생의 의미와 가치, 윤리도덕과 덕행, 참된 자아실현 등은 영성 성장과 발달 시기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접해야 할 중요한 주제이다. 피아제의 발달 이론에서 말하는 형식적 조작기에 접어든 11세 이후의 아이들은 적어도 이러한 추상적인 주제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체험하며 내면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이때 아이들의 뇌 안에는 영성 발달을 이루기 위해 그때까지 경험했던 모든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영성 감수성을 확립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종교와 신앙은 모호하고 추상적인 영성을 실제적인 삶의 과정 안에서 체험하도록 도와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일 누구를 존경하고 있다면 그것은 표현되기 이전까지 잠재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인식된다. 하지만 추상적 감정이 ‘인사’라는 구체적인 형식으로 표현될 때에 비로소 우리의 뇌는 그 감정을 실재적인 정보로 해석하고 기억한다. 자신으로부터 표현되지 않는 사랑은 그 사랑의 진실성 여부와 상관없이 뇌에서는 실재적인 정보로 해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의 뇌는 추상적 개념을 실재적 정보로 해석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구체적이고 실재적이며 감각적인 자극을 필요로 한다.

 

아이들의 영성적 감수성 역시 영성과 관련된 추상적 개념들이 구체적인 삶의 방식 안에서 표현되고 체험할 기회를 허용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은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자신의 영성을 통해 성장하고 발달하는 체험을 통해 자신의 영성적 정체성을 확립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종교 체험과 신앙 교육은 추상적인 영성 개념들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경험하도록 도와준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초자연적인 은총을 보이는 인간적 방식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중요하고 구체적인 방법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아이들의 영성 발달을 촉진할 수 있는 또 다른 대안이 있다면, 데레사씨는 자신의 아이들에게 굳이 첫영성체 교리를 시키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세상이 존재하는 방식과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 인간이 살아가야 할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방식을 종교와 신앙의 틀을 사용하지 않고 전해줄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사실 데레사씨가 아이들에게 종교 자유를 주겠다면서 신앙 교육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가지게 된 것은 분명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아마 자신이 받은 교리 교육이 자신의 삶과 연관이 없는 추상적이고 피상적인 교육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하느님에 대해서는 배웠어도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체험을 하지 못했기에 형식적인 교리 교육을 거부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성체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교리 지식이 아니라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과 일치하는 체험이 있었다면 데레사씨는 아이들에게 다른 입장을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데레사씨의 부모 역시 어린 시절 데레사씨에게 성당의 교리 교육과 더불어 영성 양육에 좀 더 신경을 기울였다면 지금 같은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고 하느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돌보는 부모는 자녀로부터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향한 자유를 선물하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물질적 재산과 영성 자산 중 어떤 것을 물려주는 것이 과연 자식을 위한 진정한 사랑일까? [가톨릭평화신문, 2020년 3월 8일, 박현민 신부(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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