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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술ㅣ교회건축

벽 속에 갇혀있다 되살아난 부통 신부 벽화: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 벽화 재현 작업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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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0-05-11 ㅣ No.719

벽 속에 갇혀있다 되살아난 부통 신부 벽화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 벽화 재현 작업 완성… 교회 문화 · 영성의 풍요 더해

 

 

- 오랜 세월 동안 벽 속에 숨겨져 왔던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들이 재현 작업을 통해 다시 세상에 나왔다.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은 최근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10점 중 8점에 대한 재현 작업을 마쳤다.

 

 

오랫 동안 성당 벽 속에 몸을 숨겨 왔던, 프랑스 출신의 성 베네딕도회 소속 선교사 앙드레 부통(Andre Bouton, 1914~1980) 신부의 벽화들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전 주교좌대흥동본당(주임 박진홍 신부)은 4월 29일, 1970년대 후반 이후 사라진 부통 신부의 벽화 8점을 ‘재현’하는 작업을 모두 마무리했다. 마침내 성당 양편 벽에, 각각 5점씩 부통 신부의 신앙과 그리스도교 교리를 풍성하게 담고 있는 10점의 벽화들이 웅장한 ‘완전체’의 모습을 드러냈다.

 

앙드레 부통 신부는 1914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60~70년대 10년 이상 한국 100여 곳에 야수파의 계보를 잇는 그림을 남겼다. 그 중 가장 크고 가장 많은 정성을 들여 제작했던 그림들이 이곳 대흥동성당 양쪽 벽면의 벽화 10점이었다. 하지만 그중 두 점을 제외한 8점은 1977~1979년 사이에 사라졌다.

 

주임 박진홍 신부는 “풍성한 색채와 온화하고 아름다운 성화에 익숙했던 당시 신부님과 신자들에게 부통 신부의 그림은 당혹스러운 것이었다”며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2점만 남겨 놓고 나머지 그림들이 모두 흰색 페인트로 덮여버렸다”고 설명했다.

 

부통 신부의 사라진 유작들을 세상에 되돌리는 작업은 대흥동본당 설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앞두고 여러 가지 기념 행사들을 준비하면서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복원’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로 논의가 시작됐지만, 방법론에 있어서 ‘복원’과 ‘재현’의 주장이 맞섰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원작은 여전히 벽 속에 보존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도록 한 뒤, 그 위에 원래 작품과 똑같이 ‘재현’된 그림을 부착하는 방식이 선택됐다.

 

대흥동본당과 계약을 맺고 재현 작업을 진행한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산학협력단 측은 ‘완전한 복원’은 후대의 과제로 남겨두되, 복원에 최근접한 ‘재현’이 현실적인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재현된 그림은 세계적 명성을 지닌 애니메이션 전문가 남명래(레오) 작가가 맡았다. 인천가톨릭대 조형예술대학 겸임교수 겸 산학협력단 연구위원 김경란(마리아)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서구 성화들은 두텁고 단단한 석회벽 위에 그려져서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보존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대흥동성당의 벽화는 벽돌조 표면에 아주 얇게 발라진 시멘트 위에 그려져서 그것이 드러났을 때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더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재현’이 더 효과적인 ‘복원’과 보존의 방법이라는 거지요.”

 

‘재현’은 단순한 ‘모사’를 넘어선다. 대흥동본당 100주년을 준비하면서 김경란 박사는 부통 신부의 유품이 간직된 프랑스 위스크 수도원을 방문해 대흥동성당 벽화를 촬영한 필름과 부통 신부가 직접 쓴 해설을 기적적으로 입수했다.

 

‘재현’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이 원본을 촬영한 필름, 그리고 국내에 200여 점에 가깝게 남아 있는 부통 신부의 벽화들 덕분이다. 필름으로 벽화 원본의 원형을 찾았고, 야수파 그림의 특징인 비교적 단순한 색의 사용, 그리고 당시 부통 신부가 주문했던 페인트 색깔에 대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벽화들을 재현해 낼 수 있었다.

 

박진홍 신부는 부통 신부의 벽화들을 되살리는 작업이 교회의 문화와 영성의 풍요를 더해줄 뿐만 아니라, 신자들의 신앙심을 더욱 깊이 있게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확신했다. 벽화들은 특히 토착화를 추구한 부통 신부의 작품 특징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한복을 입은 성모 마리아와 김대건 신부와 유대철 베드로 등 한국 성인들의 모습도 그려져 있다.

 

박 신부는 “부통 신부는 고(故) 이남규(루카, 1931~1993) 작가가 1963년에 제작한 십자가의 길 각 처를 묵상하면서 벽화를 그렸다”며 “벽화와 14처가 서로 조응해서 전해주는 영적인 의미가 놀라울 정도로 심오하다”고 말했다. [가톨릭신문, 2020년 5월 10일, 박영호 기자]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8점 재현해 낸 김경란·남명래 작가


“80여 년 전 원작의 색감 그대로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 남명래(왼쪽) 작가와 김경란(오른쪽) 작가가 4월 29일 재현된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그림들을 대전 주교좌대흥동성당 벽면에 걸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뒤로 부통 신부의 벽화들이 보인다.

 

 

“가장 힘들었던 건 선 한 획, 점 한 점, 부통 신부님의 색을 찾아내는 일이었지요. 색을 찾아내는 일이 작업의 시작이자 끝이었습니다.”

 

대전 주교좌대흥동성당 벽면에 그려진, 앙드레 부통 신부의 벽화 8점을 원본과 똑같이 ‘재현’하는 일은 색과의 싸움이었다. 김경란(마리아), 남명래(레오) 두 작가는 거의 1년 반 이상을 색을 찾아내는 일에 매달렸고, 마침내 재현된 벽화 8점을 성당 벽에 걸었다.

 

앙드레 부통 신부는 1960년대에 대흥동성당 내부 양쪽 벽면에 각각 5점씩 10점의 벽화를 그렸고, 그 중 2점을 제외하고는 1970년대말에 흰색 페인트로 덧칠되는 바람에 사람들의 눈에서 사라졌다.

 

대흥동본당(주임 박진홍 신부)은 지난해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산학협력단의 도움을 받아 부통 신부 벽화를 재현했다. 두 작가 역시 산학협력단 연구위원 자격으로 작업에 매달렸다.

 

성당 벽 속에 묻혀 버린 부통 신부의 작품들을 벽을 파내지 않고 원본 그대로 재현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여건이 맞아 떨어진 덕분이다. 김경란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원본 벽화를 촬영한 흑백 필름을 입수했고 둘째, 국내에 부통 신부님의 작품들이 많으며 셋째, 부통 신부님이 벽화를 그리기 위해 구입한 페인트와 물감 등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색깔을 찾는 작업이 가능했던 이유이지요.”

 

벽화 재현을 직접 맡았던 남명래 작가는 국내에서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프랑스의 유명 애니메이션 학교 ‘에꼴 에밀 꼴’(Ecole Emile Cohl) 출신으로 수많은 국제 카툰 및 애니메이션 공모전에서 수상했다.

 

“부통 신부님의 작품 세계는 어떤 면에서는 카툰 작업과도 비슷합니다. 부통 신부님의 색 사용이 비교적 단순했다는 점도 벽화 재현이 가능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벽화의 색깔을 찾아내기 위한 두 작가의 노력은 헌신적이었다. 벽화를 촬영한 필름이 있었기에 정확한 형상은 확보했다. 국내에 존재하는 부통 신부의 수백 점 그림을 분석해 색 사용의 습관과 형태 등을 통계학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했다. 그리고 이를 각 벽화의 형상들에 적용, 어떤 색깔이 사용됐을지를 파악하고 채색했다.

 

남명래 작가에게 있어서 부통 신부 벽화 재현은 개인사적으로도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5년 전 보석 같던 딸이 세상을 떠난 후, 실의에 빠져 술로 지내던 그는 심지어 대전천 뚝방에서 노숙자처럼 살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딸에게 부끄러움을 느껴 스스로를 추스르던 중 부통 신부 벽화 작업을 제안 받았다.

 

“수십 년 동안 성당을 드나들면서도 외면했던 세례를, 딸이 지어 준 레오라는 세례명을 받고, 벽화 작업까지 제안 받으니, 하느님의 섭리로 여기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생애 가장 행복했던 시간들을 부통 신부님의 그림들과 보냈습니다.” [가톨릭신문, 2020년 5월 10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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