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7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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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국 교회사 속 여성 - 신유박해(순조 시기): 왕가로 찾아든 말씀, 네 명의 마리아가 이어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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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4-21 ㅣ No.1023

[한국 교회사 속 여성 - 신유박해(순조 시기)] 왕가로 찾아든 말씀, 네 명의 마리아가 이어 가다

 

 

신유박해, 하느님 나라의 출석표

 

신입 교우들에게 진리의 선택, 동료 의식, 그리고 공동체를 세워 가는 기쁨은 무척 컸다. 신자 수는 삽시간에 불어났다. 그러나 교회가 세워진 지 십여 년이 지난 1801년 신자들은 자신들의 ‘다름’과 ‘질긴 사명’에 대해 대답해야 했다. 조정에서는 이들에게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내용을 거침없이 물었다.

 

“대체 어떤 마음보로 스스로 사교에 빠져들었고, 공공연히 집을 떠나 길거리를 바삐 돌아다녔는가? 누구랑 어울렸는가?” 집계된 것만 해도 신자 100여 명이 처형되고, 400여 명이 유배되었다. 이는 교회가 들어선 지 15년 동안의 성과를 보는 거울을 만들었다. 바로 신유박해다.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서거하고 순조가 열한 살의 나이로 즉위했다. 정조의 장례가 끝나고 이듬해 내내 ‘천주교’와 관련된 이들을 잡아들였다. 신유박해는 최필공의 체포를 시작으로 정약종의 궤짝 발견, 주문모 신부 자수, 황사영 사건 등을 계기로 점차 확대되었다. 그런데 그중에서 새 임금 순조의 증조할머니이자 이 박해를 추진한 중심인물인 정순 왕후가 예상하지 못한 인물은 누구였을까?

 

 

정순 왕후, 서로 다름을 사형으로 처리

 

영조의 계비 정순 왕후는 경주 김씨다. 그리고 정조 때 세력을 잡은 이들 가운데는 풍산 홍씨 계열이 많았다.

 

정조가 죽은 뒤 세력이 교체될 때는 풍산 홍씨 계열이 먼저 표적이 되었다.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은 혜경궁 홍씨의 친정아버지이고, 또 다른 영의정 홍낙성이나 세도 정치를 한 홍국영은 모두 친인척 지간이다.

 

이들 홍씨는 강완숙의 시가 계통이었음을 앞서 살펴보았다. 또한 홍국영과 정약용은 인척이다. 따라서 세력교체의 수단으로 천주교를 빌미로 잡는 것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었다.

 

실제로 혜경궁 홍씨의 동생 홍낙임은 신유박해 때 천주교 신자로 처형되었다. 그렇지만, 몇몇 사람을 제거하려고 시작했던 정순 왕후 쪽에서도 교회의 규모에 놀랐다.

 

정순 왕후는 자신의 손자며느리와 증손자며느리가 신자라는 사실에 직면했다. 양제궁 마님들인 은언군의 부인 송 마리아(철종의 할머니)와, 그의 맏아들인 상계군의 부인 신 마리아(철종의 큰어머니)가 천주교에 연루되어 있었다. 천주교는 그 전파 속도가 무척 빨라 무리가 많아졌을 뿐 아니라, 그 단체를 파악하기가 힘들었다. 이들이 왕가와 연결되어 있다면 더욱 위험한 일로 간주되었다.

 

그리하여 신자라는 사실이 발각되면, 별다른 심문 절차 없이 곧바로 사약이 내려졌다. 그들은 1801년 3월 16일 명령을 받고, 4월 4일 사사되었다. 삼대에 걸친 고부 관계의 세 여인이다.

 

정순 왕후가 만일 서로의 다름에 조금만 귀 기울였어도 나라 판도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다만 그 다름을 상대편을 제거하는 데만 주목했다. 은언군의 부인인 송 마리아와 그의 며느리(상계군의 부인) 신 마리아는 왕궁의 왕자비들일 뿐 아니라, 나중에 왕을 낸 이들이다.

 

뒤주 대왕 사도 세자는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지만 자신의 아들 세 명이 각각 시간을 이어 왕좌에 올랐다. 그의 아들(정조)과 손자(순조), 그리고 다른 아들인 은언군의 손자(철종)와 또 다른 아들 은진군의 증손자(고종)가 왕이 되었다.

 

사도 세자는 혜경궁 홍씨에게서 정조, 숙빈 임씨에게서 은언군과 은신군, 경빈 박씨에게서 은전군을 두었다. 은언군은 상계군과 풍계군, 전계 대원군(이광)을 낳았고, 이광은 첩 염씨에게서 철종을 낳았다. 곧 이인과 송 마리아의 손자가 철종이 되었다.

 

한편, 이인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은 흥선 대원군의 할아버지이다. 흥선 대원군의 둘째 아들이 고종이 되었다. 따라서 천주교 박해 이후의 왕인 철종과 고종, 순종은 실제로 천주교와 관계가 깊은 임금들이다. 그들 집안에서 여성 신자들이 나왔다.

 

 

숙명 앞에서의 고독을 전환하다

 

은언군은 13세에 송낙휴의 딸 송 마리아와 혼인했다. 그러나 사도 세자가 비운에 휩싸이면서 당시 행실에 대한 비난을 구실로 이복동생인 은신군과 함께 홍충도(충청도) 직산현에 유배되었다가, 곧 제주도 대정현에 안치되어 3년 만에 풀려났다. 은신군은 제주에서 병사했다.

 

신 마리아는 은언군의 맏아들인 담의 부인이다. 그런데 담은 정조의 후궁인 원빈의 양자였다. 당시 세력을 쥐고 있던 홍국영은 정조와 왕비 사이에 후사가 없자 자기 누이동생을 빈으로 들여 세자를 낳게 하려 했다. 그러나 원빈이 1년 만에 출산하다 죽자, 담을 원빈의 양자로 삼았다. 그 뒤 홍국영이 쫓겨나고, 계속 이어지는 정쟁 과정에서 담은 독살되었다. 이때 은언군까지 연루되어 죽을 뻔했으나 정조가 대신들의 요구를 뿌리치고 강화도로 유배시켰다.

 

이후 은언군은 작호를 박탈당하고 송씨도 ‘역적 인의 처 송성’으로 격하되었다. 송씨는 며느리 신씨와 전동(현 서울시 종로구 견지동 일대)에 있던 양제궁으로 옮겨 갔다. 양제궁은 폐궁이라 불렸다. 사도 세자의 비극으로 꼬인 정국에서 사도 세자의 후손들은 벽파 대신들과 왕대비 정순 왕후 쪽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역모의 화근으로 지목받았다.

 

양제궁 마님들은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체제 앞에서 천주님을 마주했다. 교회는 희망이었다. 그 길은 강완숙이 안내했다. 강완숙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을 알아볼 줄 알았다. 폐궁 마님들은 화려한 허울 속에서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고독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었다.

 

강완숙은 그들 마음의 통증도 읽어주었다. 그들은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영세받고 철저히 신앙생활을 했다. 그 신앙은 자라서 가장 위기의 순간에 주문모 신부를 숨겨 주었고,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증언했다.

 

박해 시작 때 순교한 두 마리아가 교회에서 본 희망은 왕가 여인들에게 이어졌다. 신앙의 자유를 인정하는 격동의 세월에 흥선 대원군의 부인 민 마리아, 6·25 전쟁 직후 순종의 아들(의친왕)의 부인, 곧 민 마리아의 며느리 김 마리아가 천주교에 귀의했다. 그들의 세례명은 모두 마리아였다.

 

또한 현대에 접어들면서 철종의 외가에서 냉정리 공소를 지었고, 그 후손 가운데 염 율리아나 수녀가 나왔다. 하느님의 말씀은, 개인으로 살지 못하고 거대한 정세와 대면해야 하는 ‘큰 고독’을 위로했다. 교회는 이들의 숙명적 굴레를 벗어나는 답을 제시했다. 그들은 세속에서의 새로운 세상 또한 천주교 안에서 보았다.

 

* 김정숙 아기 예수의 데레사 - 영남대학교 역사학과 교수이며 대구 문화재 위원과 경북여성개발정책연구원 인사위원을 맡고 있다. 수원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위원이며 안동교회사연구소 객임 연구원이다. 한국가톨릭아카데미 겸임 교수를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9년 4월호, 김정숙 아기 예수의 데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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