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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5: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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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8-05-04 ㅣ No.1155

[사랑으로 열매 맺는 신앙의 해] 사랑은 무례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 간혹 이런 한탄을 쏟아내는 분들을 만납니다. 그럴 때면 저는 그분들께, 성경에 등장하는 이들이 변화된 모습이나 사건을 들려주며, 하느님 눈에 우리 각자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말씀드립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의심하는 눈빛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더 구체적인 답변을 원하지요. 그러면 저는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하세요!” 저는 이 말이 얼마나 추상적이고 비현실적인 말인지도 잘 알고, 그래서 도리어 공격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압니다. 잘못하면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격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지요. 하지만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사랑받기만 원한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태도라는 것을 알려드리고자 하는 의미입니다. 사랑받기 위해서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 주신 사랑의 능력을 키워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오로 사도께서 ‘사랑의 찬가’(1코린 13,1-13)를 통해 말씀하신 사랑의 다섯 번째 특성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무례하지 않은’ 태도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무례’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아셰모네이’(aschemonei)는 ‘부끄러운, 불명예스러운, 불손한 태도’를 뜻합니다. 이와 반대되는 모습으로는 ‘단정한 처신, 선한 품행, 예의 바른 태도, 타인을 존중하는 자세’를 예로 들 수 있지요. 사실 우리는 이미 가정과 학교에서 이러한 예의와 공손함에 대해 이미 배웠습니다. 공공질서를 잘 지키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몸이 불편하신 분이나 나이가 든 어르신들을 기꺼이 도와드리고, 또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라고 배웠습니다. 또한 이 모든 것들을 성실히 실천함으로써 예의가 자연스레 몸에 배어야 한다고 배웠지요. 그런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윤리적 삶의 태도가 단순히 몸에 스며드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은 최선을 다해 예의를 지키려고 해도 다른 이가 그 예의에 합당한 행동을 보이지 않을 때, 그리고 지금껏 배워 온 상식적인 예의가 통용되지 않는 사회 현실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가 지켜온 것들은 쉽게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 좋지 않은 모습이 있습니다. 겉으로 예의 바른 척하면서 속으로는 상대방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거짓된 삶으로 이끌고 갈 뿐입니다. 아울러 타인에게 좋은 평가를 듣기 위해서 취하는 예의 바른 행동은 언젠가 그 본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올바른 인간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예의 바른 태도를 넘어 더 궁극적인 차원으로 깊이 뿌리 내려야 합니다. 서로에 대한 예의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에 깊이 젖어들어 그분의 사랑으로 타인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무례하지 않은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 그 자체가 올바른 대인관계와 타인을 만나고 사귀는 바람직한 방법을 찾아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자신이 먼저 드러내 보일 때 비로소 사랑받게 됩니다. 사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타인에게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먼저 헤아리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줄 압니다. 사랑에 뿌리를 둔 사람은 스스로 올바른 것을 행합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노 성인께서는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바를 행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이 그를 행복하게 할지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요!”라는 외침 앞에, 숱한 심리학이나 처세술 등에서는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 되라고 조언합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은 결코 매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사람 만나기를 꺼려하거나 자신만의 공간으로 숨어들어 상황을 더욱 힘들게 만들곤 합니다. 많은 이가 매력을 단순히 외적인 어떤 것, 예를 들면 미모나 매력적인 행동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외적인 모습보다 스스로를 ‘함께하고 싶은 존재’로 만들어가는 내면의 모습이 더 중요합니다. 바로 ‘사랑’은 자신의 본질적인 매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가장 아름다운 능력입니다.

 

누군가를 대할 때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면, 단순히 그들이 보기 좋게 외적인 모습을 꾸민다거나 그들에게 호감을 불러일으키려는 단순한 노력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상대가 언제나 와서 편히 쉴 수 있는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언제나 사랑받는 사람이 될 것이고, 그들이 힘들거나 기쁘거나 어느 순간이든 위로 받고 기쁨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억지로 그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기에, 사랑에 바탕을 둔 기다림과 경청, 따뜻한 눈빛과 배려의 손길이 필요합니다. 우리 모두 이러한 노력으로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을 먼저 나누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빕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18년 5월호, 사목국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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