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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교회ㅣ기타

일본 교회: 재일교포 신자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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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7-06 ㅣ No.149

[세계 교회 동향] 일본 교회 - 재일교포 신자들과 함께

 

 

한국 교회의 신자 분들이 일본 교회를 떠올릴 때, 길고 긴 순교의 시대를 거쳐온 나가사키 교회를 연상하실까요? 아니면 대도시 안에 매몰되어 찾기가 쉽지 않은 동경의 성당일까요? 이번에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한국과 가까운 관계에 있는 오사카의 이쿠노 성당을 소개하여 서로의 교회를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작은형제회 일본 관구에 소속되어 있는 신부로 1987년 46세에 이쿠노 성당의 주임신부로 파견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재일 한국인 할머니들과 알게 되었으며 놀람과 동시에 멋진 만남을 체험하였습니다. 부임하여 맞이한 첫 주일 미사에서 당시 이미 이쿠노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던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수녀님들에게 배운 어설픈 발음으로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하는 그 순간 할머니들의 얼굴이 활짝 펴지던 것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사 뒤에 할머니 한 분이 제 손을 잡으면서 “우리 신부님!” 하며 불러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단순히 저를 환영해 주신 것에 대해서 크게 기뻐했습니다만, 그분들에게 ‘우리말’로 기도하는 것, ‘우리말’로 성가를 부르는 것이 얼마나 큰 마음의 위안이며 기쁨인가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재일교포 1세인 할머니들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을 거쳐 일본에 오셔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국경의 벽을 넘어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 전례 개혁으로 일본어 미사가 정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배경도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일본 교회가 외국인 신자를 위해 노력을 하게 된 것은 훨씬 뒤의 일입니다. 더욱이 1980년대에는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인 필리핀, 브라질, 페루 등에서 노동자로서 일본에 들어오는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본 교회에서 외국어 미사를 하는 곳은 거의 없었으며, 영어나 스페인어가 가능한 뜻 있는 사제들이 개인적인 연대 속에서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올해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이쿠노 성당에서는 1960년 작은형제회 회원이며 독일인인 초대 주임 치네카 신부님께서 처음부터 재일 한국인 사목에 정성을 쏟으셨습니다. 당시 오사카 시 이쿠노 구의 인구는 약 16만 명으로 4만 명 정도가 한국, 조선 국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쿠노 성당의 신자 수는 약 600명 정도인데 그 가운데 70% 정도가 한국인 신자로 생각되었습니다(사생활 보호 문제로 정확한 숫자는 확인 불가). 주일 미사에 참가하는 사람은 30% 전후로, 재일교포 2세, 3세 신자들은 오히려 일본어 미사에 익숙해져 있으나 4분의 1 정도의 신자들은 한국어 미사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치네카 신부님은 한국인 신자들 사목지원을 위해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 3명의수녀님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1967년에 일본에 최초로 한국 수녀회의 수녀님이 정식으로 파견되었습니다. 수녀님들은 언어와 문화와 역사 문제로 생기는 여러 가지 곤란을 극복하고 할머니들을 위해 문자 그대로 순교 복자의 활약을 하셨습니다.

 

 

언어의 벽을 넘어서

 

제가 이쿠노 성당에 파견된 1987년 전후의 일본은 거품 경기 시기로 경제 대국이라고 불리며 많은 외국인 이주자를 맞이하게 된 때였습니다. 한편 1988년 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에서는 가톨릭성당의 신자 수가 비약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이쿠노 성당도 많은 한국 주재원, 유학생 그리고 일을 찾아 일본에 온 사람들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재일교포 신자와 일본인 신자, 그리고 정열적인 한국인 신자들이 주님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성경은 초대교회에서도 그리스어로 말하는 유다인과 히브리어로 말하는 유다인 사이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전하고 있으며(사도 6,1), 할례 문제로는 유다인 신자와 이방인 신자 사이에 더욱 심한 대립과 논쟁이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사도 15장). 이쿠노에서는 “여기는 일본 교회다.”라며 기득권을 주장하는 일본인 신자들과 “한국어로 미사를 드리고 싶다.”는 한국인 신자들 그리고 그 사이에 끼어 고민하는 재일교포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령 강림 대축일의 강론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의 성령 강림 장면을 읽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자들이 라틴어로 이야기하여 사람들이 그것을 모두 이해한 것이 아니라 “저마다 자기 지방 말을 귀로 듣고 이해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시는지를 깨닫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어쨌든, 저는 우선 한국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다음으로 고베에 계신 재일 한국인으로 예수회 이성일 신부님께 한 달에 한 번 한국어 강론을 부탁했습니다. 또한 1996년부터는 작은형제회의 일본 관구와 한국 관구에서 교환 선교사를 파견하게 되면서 이쿠노 성당에 젊은 한국인 사제인 윤석찬 신부님이 오시게 되었으며, 저는 서울의 서강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55세의 나이에 공부를 싫어하는 저에게는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친절하고 열심인 한국 교회와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주님의 신비로운 은총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진 여러 가지 해프닝에 대해서는 제 블로그를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일본어 블로그입니다).

http://www.ofm.jp/cleto/index4.html

 

 

함께 살아가는 교회를 향하여

 

2005년, 인연이 되어 다시 이쿠노 성당에 돌아왔을 때 일본 교회는 크게 변해있었습니다. 좀처럼 신자 수가 늘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제의 고령화와 성소의 감소로 그야말로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외국인 신자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났습니다.

 

1996년 일본인 신자 44만 명에 외국인 신자가 32만 명이었던 데 반해, 2006년에는 일본인 신자 45만 명에 외국인 신자 수는 53만 명으로 50%를 넘었습니다. (http://www.jcarm.com/jpn/fax_news/fax19_050223.htm 참조)

 

일찍이 이쿠노 성당이 경험한 일이 일본 교회 전체의 과제가 되어있었습니다. 2009년, 제15회 한일 주교 교류모임이 오사카에서 개최되어 이쿠노에 무려 14명의 한국과 일본의 주교님들(대주교님 포함)이 방문하여 주셨습니다.

 

그때 재일교포 2세 여성으로서 이쿠노 성당의 사목회장을 맡고 있던 에우제비아 이토 사다코 씨가 결혼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된 일을 발표했으며, 올해 사목회장으로 선출된 재일교포 2세인 이철 레미지오 형제가 한국 유학 중 간첩 혐의로 사형 판결을 받고 옥중에서 복음서와 만나 세례를 받고, 그 뒤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 견진과 혼인성사를 받는 등의 특별한 체험을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고통을 아는 재일교포 신자들이 지금의 일본 교회에 새로운 복음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어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 나카무라 미치오(中村道生) 클레토 - 작은형제회 일본 관구 신부이며, 오사카 이쿠노 성당 주임을 맡고 있다. 일본어로 쓴 원고를 이쿠노 본당 신자 김지인 크리스티나 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경향잡지, 2010년 6월호, 나카무라 미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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