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3일 (월)
(백) 부활 제7주간 월요일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사목신학ㅣ사회사목

[문화사목] 영화 이야기: 명량 - 희생과 애민의 정신이 세상을 구한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5 ㅣ No.752

가타리나의 영화 이야기 (2) 명량


희생과 애민의 정신이 세상을 구한다



영화 ‘명량’(김한민 감독)의 기세는 대단했다. 1,000만 관객을 가뿐히 넘더니 9월 3일 오전 9시를 기하여 관객수 1,700만을 돌파했다. 역대 박스오피스 1위로서 그동안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아바타’의 기록(13,624,328명)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순항하고 있다. 한 영화에 1,700만의 관객이 몰렸다는 것은 화제를 넘어 경이에 가깝다. 우리나라 인구가 남한 기준으로 5,000만, 이 중 15세 이상 인구는 4,300만 정도이니 2.5명당 1명꼴로 ‘명량’을 봤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체 ‘명량’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사실 영화관계자나 비평가들의 평가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특히 캐릭터의 매력이나 사건 전개의 치밀함, 이순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 등 서사가 갖추어야 할 미덕에 있어 흠결이 적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 견해다. 여기에 고의든 실수든 극적 효과를 위한 선택이든,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기도 한다. 특히 명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혹은 13척)로 왜선 330척을 물리쳤다는 내용은 왜선 133척(『난중일기』를 근거삼아)을 극적으로 과장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역사적 상상력을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와도 맞물려 있고, 따라서 논쟁을 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영화 ‘명량’의 스코어는 오히려 이런 논쟁을 무화시켜 버린다. 영화는 역사교과서가 아니다. 그런 만큼 역사적 사실은 역사가나 전문가들이 논증하고 적시해야 한다. 일반관객이 역사공부를 하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 것은 아니란 이야기다. 관객이 영화관을 찾은 것은 영화 ‘명량’이 그들이 갈망하는 것,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고, 적어도 다시 일깨웠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사회가 직면한 위기의식과 이를 타개하기 위해 분투하는 한 영웅의 모습이었다.

명량해전은 정유재란이 시작된 1597년 9월에 벌어졌다. 두 달 여 전 있었던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은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고, 그나마 배설이 12척의 배를 끌고 도망 나와 전투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이미 이순신은 선조의 의심과 노여움을 사 삭탈관직과 압송, 고신 등을 통해 몸과 마음이 지치고 쇠한 상황이었지만, 권율 장군 휘하에서 이른바 ‘백의종군’을 거쳐 칠천량의 대패를 계기로 다시 통제사의 직위를 제수 받는다. 영화 ‘명량’은 이러한 정황을 배경에 두고 압도적인 수의 왜선이 공격해옴에 따라 두려움과 패배의식에 젖은 조선 수군의 불안과 분열을 중심으로 펼쳐나간다.

영화에서 이순신(최민식)은 강건하고 태산 같은 영웅이 아니다. 그 역시 불안하고 두려움을 가졌으며, 임금으로부터 버림받고 동료장수들로부터는 의심 받으며, 부하로부터도 이해 받지 못하는, 사면초가의 외로운 존재로 비춰진다. 거북선(구선)마저 사라진 상황에서 저 막대한 왜군들을 어찌 물리칠까, 당연히 시름과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이순신의 처지인 것이다. 누란의 위기에서 고통당하는 백성들과 그들의 수난은 이순신으로 하여금 절대 질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함을 새기게 한다. 그 방법은 바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것’. ‘독버섯처럼 만연한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기 위해 이순신은 자신이 죽어야 함을 안다.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 용기는 백 배 천 배 큰 용기로 배가되어 나타날 것”이므로. 그리고 부하들에게 이른다.

“목숨에 기대지 마라.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必死則生 必生則死).”

이순신의 영웅으로서의 면모는 그가 장수로서 탁월한 지략과 전략을 갖춘 것보다 오히려 백성을 섬기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두드러진다. 이순신은 왜 싸우는가를 묻는 아들 이회(권율)의 말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의리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다.”

그의 이러한 정신은 명량의 바다에서 왜선과 함께 소용돌이에 끌려 들어가는 대장선을 백성들이 힘을 합해 끌어내는 ‘천행’을 맛보게 한다.

영화 ‘명량’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 아니 우리 관객이 ‘명량’을 통해서 발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바로 희생과 애민의 정신 그리고 그 실천이 사람을 움직이고 민족과 국가를 구하며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된다는 사실일 것이다. 또한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실천하신 희생과 사랑의 가르침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시대의 거울이고 사회의 반영이라고 한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사람의 이야기이고, 삶의 흔적이다. 때로 왜곡되고 때로 건강하지 못한 이미지, 내용들이 넘쳐나기도 하지만, 영화는 사람들이 가장 쉽게 그리고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매체로서 그 진가를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명량’의 경우도 이순신 장군을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영웅으로서 재발견하게 하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망과 희구를 그 인물 속에 투영시킨 것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명량’은 소통과 상호존중, 이해 그리고 배려와 섬김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지도자의 덕목임을 상기시킨다. 특히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가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을 경험한 우리 사회에서 국가란 무엇인가, 그리고 지도자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담론에 하나의 방향타로서 작동한다. 그것이 ‘명량’의 힘이다.

[평신도, 제45호(2014년 가을), 조혜정 가타리나(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1,641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