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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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사목] 영화 이야기: 역린 - 정성을 다하면 세상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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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4-10-05 ㅣ No.751

가타리나의 영화 이야기 (2) 역린


“정성을 다하면 세상이 변한다”



죄인지자 불위군왕(罪人之者 不爲君王). 죄인의 자식은 군왕이 될 수 없다. 왕조의 역사에서 왕권은 무소불위이나 ‘왕의 사람들’이 없으면 그 존립은 바람 앞에 등불이다. ‘왕의 사람들’은 그들의 왕을 만들기 위해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혈육이나 인륜지정(人倫之情)을 무참히 거스르기도 한다. 왕조사에서 거듭되는 찬탈의 역사 혹은 사화(史禍)의 반복은 왕과 ‘왕의 사람들’이 만들어 가는 거대한 ‘힘의 이동’이다. 그 힘을 위해 때로 자식도, 형제도, 조카도, 할미도 ‘쳐내야’ 한다.

그 비극적인 숙명을 안게 된 왕 가운데 영조가 있다. 나이 마흔둘에 본 귀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게 한 사건 이후 14년을 더 산 영조에게 그 세월은 어떠했을까? ‘자식을 잡아먹은’ 아비의 삶은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영조는 자신이 죽게 한 아들의 아들(세손 이산)을 왕으로 세우기 위해 그 세월을 살아냈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왕조사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던 왕들 중 하나인 정조임금 이산은 할아버지 영조의 죄책감과 가호에 의지하여 왕이 될 수 있었다. 세손 시절부터 ‘죄인의 아들’로서 배척과 경계의 대상이었고, 여러 차례 생명의 안위까지 위협당하는 살얼음판과도 같은 궐 안에서 그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다지고 또 다졌다. “두렵고 불안하여 차라리 살고 싶지 않았다.”고 일기에 토로할 만큼 힘든 그 고난의 세월을 통과하여 1776년 이산은 조선 제22대 왕으로 등극한다. 이산 정조는 즉위식에서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당당히 선포함으로써 ‘죄인지자 불위군왕’을 주창하던 노론벽파를 충격에 빠뜨렸다.

‘역린’(이재규 감독)은 정조 즉위 1년(1777년)의 ‘정유역변’에 대한 영화로서, 왕을 암살하려는 시도가 있던 하루 동안의 이야기이다. 정유역변은 1777년 7월 28일 존현각 지붕을 통하여 누군가가 침입하려 한 흔적이 있었고, 이것이 일개 도둑의 소행이 아니라 정조에 의해 귀양을 간 홍지해(사도세자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홍계희의 아들)의 아들 홍상범이 궁의 호위무관, 나인까지 포섭하여 정조를 시해하고 은전군 이찬을 옹립하려 한 역모사건으로 밝혀진다. 정유역변은 ‘3대 모역사건’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 ‘역린’은 이날의 사건을 시간 순서에 따라 재구성한다.

보통 영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은 역사적 팩트와 작가의 상상력을 결합하는 형태를 취한다. 이른바 팩션(fact+fiction)이다. ‘역린’ 역시 팩션사극이다. 내시 상책(정재영), 살수 을수(조정석), 살막을 운영하는 광백(조재현) 등은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인물들이다. 허구의 인물을 역사적 사건에 배치하고 개입하게 함으로써 작가와 감독은 박제된 과거를 생생한 현재로 풀어낸다.

그러나 ‘역린’은 정(靜)과 동(動)의 리듬이 아쉬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종 무언가 억압된 분위기로 끌어간다. 이는 정조를 연기한 배우 현빈의 표정이나 보이스에서 더 두드러진다. 왕이라고는 하나 사방에 적으로 둘러싸인 자의 극도의 신중함과 긴장이 묻어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연출까지 억압적일 필요는 없었다. ‘용의 비늘’, 즉 왕의 분노를 의미하는 역린의 폭발성이 더해졌다면, 우리는 진정한 카리스마를 갖춘 왕의 등장을 목격했을 것이다. 다행히 존현각 습격 장면은 속도감 있는 스펙터클을 시현함으로써 영화의 역동성을 뒷받침해 주기는 하였다. 특히 공간(존현각) 안에서 냉정한 표정으로 난입자들에게 화살을 날리는 정조의 모습은 영화 오프닝에서 이른바 ‘성난’ 등근육을 보여주던 배우 현빈의 이미지와 함께 인상적으로 각인된다.

‘역린’은 인내에 관한 영화이다. 즉위한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비의 복수를 하기 위해 이내 나섰다면 복수는커녕 그가 먼저 당했을 것이다. 영화에서 정조는 아비의 원수 구선복(송영창)을 결정적인 순간에 자기편으로 만든다. ‘아비의 원수와는 한 하늘을 이지 않는 법’이라던 생각을 버리고, ‘심장과 뼈가 모두 떨릴 만큼’ 끔찍한 그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물론 역사에서 구선복은 정조10년에 역모사건으로 죽임을 당한다). 정순왕후에게도 마찬가지. 자신을 제거하려는 ‘할마마마’의 의지와 소행을 알고 있음에도 정조는 이를 덮어둔다. 그로써 어머니 혜경궁을 살리고, 피바람의 참변과 비극을 피해 나간다.

‘역린’은 정성과 감동에 관한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는 정조의 입을 빌려 『중용』 23장의 한 대목을 들려준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겪은 고통과 신산이 클수록 원망과 절망과 미움도 더 커지는 게 상례다. 그러나 그 부정적 마음은 아무도, 그 어떤 세상도 변화시킬 수 없다. 복수와 미움에서 한 걸음 벗어나 이해하고 연민하고 나아가 정성을 다하면 나 자신과 세상을 변화시키게 된다. 그것이 ‘역린’의 궁극적 메시지이고,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고 몸소 실천하신 사랑의 길일 것이다.

[평신도, 제44호(2014년 여름), 조혜정 가타리나(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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