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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FABC 50주년 총회 방콕 문서 무엇을 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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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05-08 ㅣ No.700

FABC 50주년 총회 「방콕 문서」 무엇을 담았나 (상)


다민족·다문화의 대륙, 아시아 복음화의 새로운 길 모색

 

 

- 지난해 10월 12일 태국 방콕대교구 반푸완 사목센터에서 봉헌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 개막미사 장면. FABC는 50주년 총회 논의를 담은 「방콕 문서」(Bangkok Document)를 발표했다. FABC 제공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가 지난해 10월 12~30일 태국 방콕대교구에서 개최했던 50주년 총회 논의 내용을 종합한 「방콕 문서」(Bangkok Document)에는 아시아 복음화의 ‘새로운 길’이 담겨 있다.

 

「방콕 문서」의 제목 ‘아시아 민족으로서 함께 여행하기, 그리고 그들은 서로 다른 길로 갔다’(Journeying Together As Peoples Of Asia… And They Went A Different Way)는 FABC 50주년 총회 모든 참가자들이 총회에서 함께 여행을 마친 뒤 동방박사들처럼 각자 새로운 길로 가게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방콕 문서」가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의 시작인 이유다.

 

「방콕 문서」는 서문(Introduction)과 ▲ 함께하는 여정(Journeying Together) ▲ 바라보기(Looking) ▲ 식별하기(Discerning) ▲ 재능 나누기(Offering Our Gifts) ▲ 새로운 길 따르기(Following New Pathways) 등 본문 5개 장을 포함해 모두 6개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방콕 문서」에 담긴 내용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방콕 문서」 작성 과정

 

FABC 50주년 총회 논의 결과를 담은 「방콕 문서」는 총회에 참석한 아시아 29개국 주교단 150여 명, 사제단 60여 명, 교황청 등에서 온 초청인사 50여 명은 물론, 수도자와 평신도들의 목소리를 집대성했다. 시노달리타스 정신에 따라 교회 구성원 모두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담아내는 데 주안점을 뒀다.

 

「방콕 문서」는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대교구 반푸완 사목센터에 모인 아시아 각국 참가자들이 의견을 모아 제출한 초안과 수정안을 FABC 50주년 총회 중 승인한 뒤 총회가 끝나고 FABC 편집팀(Editorial Team)이 수정안 검토와 확정을 거쳐 FABC 중앙위원회(Central Committee)가 3월 3일 최종 승인해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아시아교회가 당면한 과제

 

「방콕 문서」 서문(Introduction)에는 FABC 50주년 총회 개최 취지와 아시아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사목적 과제가 설명돼 있다. FABC는 50주년 총회 개최 경과와 목표를 마태오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Magi)가 걸었던 여정에 비유했다. 아시아교회는 오늘날 시대의 징표를 해석하면서 하느님의 별(Star of God)로부터 인도를 받아 FABC 50주년 희년 총회를 개최했다.

 

아시아교회가 바라보는 현 시대는 모든 이에게 생명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온전히 새롭게 하고, 그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다. 특별히 주변부에서 소외된 이들과 개발이 낳은 상처로 신음하고 있는 지구(「찬미받으소서」 49항)를 위한 사명으로 나아갈 때다. 하느님의 사랑은 모든 민족과 창조물을 다 끌어안고, 자비로운 아버지와 인자한 어머니가 우리를 돌보듯 다양한 도전과 위기에 직면한 아시아교회가 걸어갈 새로운 길을 열어 주시기 때문이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놓여 있는 지정학적 상황을 언급하면서 다민족, 다문화 대륙에서 소수 종교인 가톨릭교회가 선교에 어려움도 있겠지만 아시아대륙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아시아교회가 복음의 가르침에 근거하면서 평화, 정의, 협력 등 아시아 민족들의 공통된 요청에 함께한다면 아시아 내 소수자(a minority)인 교회가 다양한 민족들이 겪는 기쁨과 고통에 동참할 수 있고, 현재의 사회, 경제, 정치적 현실에서 인간의 존엄과 권리가 보다 존중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0월 12일 태국 방콕대교구 반푸완 사목센터에서 개막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에 참석한 한국 주교단이 10월 18일 기념촬영한 모습.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함께하는 여정 - 경계 뛰어넘기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동방박사들의 행로를 기본 틀로 삼아 정의와 평화가 충만한 삶을 건설하는 하느님의 계획에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요청한다. 그러면서 아시아교회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동방박사들은 ‘함께 별을 따라’ 예수님께 경배하러 온 뒤 ‘각자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는 사실에서 아시아교회들이 각자 처해 있는 특수성 안에서도 서로의 경계(Borders)를 초월해 연대할 필요성을 부각시켰다고 이해할 수 있다.

 

「방콕 문서」 본문 첫 번째 장 ‘함께하는 여정’(Journeying Together)의 부제는 ‘시노달리타스의 요청에 부응하기’(Responding To The Call Of Synodality)이다. 「방콕 문서」는 예수님을 찾아가는 여정에 함께하기 위해 그리고 시노달리타스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익숙한 장소’(Familiar Ground)를 먼저 떠나라고 요구한다. 익숙한 장소를 떠날 때 하느님의 요청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동방박사들도 자신들의 안식처를 떠났기 때문에 함께 여정에 나설 수 있었다.

 

마태오복음에 그려진 동방박사들이 이방인(Gentiles)이라는 점도 아시아교회에 시사하는 점이 있다. 아시아의 다양한 역사적 배경이 공존하는 환경은 교회로 하여금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알게 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 자신이 우리를 ‘아버지의 집’으로 초대하는 길임을 계시해 주기 때문이다.

 

때로는 노예살이도 하고 사막에서 배고픔과 목마름에 마주했 이스라엘 민족이 그랬던 것처럼 걸어가야 할 길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기도 하고 현세적 욕구를 갈망할 때도 있다. 그러나 동방박사들이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길을 찾아갔듯이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우리가 시작한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을 계속 이어갈 힘을 얻게 된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계속 걸어가야 할 시노달리타스 여정에 필요한 3가지 요소로 교감(Communion), 참여(Participation), 사명(Mission)을 제시한다.

 

교감은 타인을 배제하려는 경향성에 반대되는 개념이다. 모든 세례받은 신자들은 각자의 역할은 달라도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선택된 민족이며 하느님의 백성이 된다. 참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아 계시고 모든 지체가 같은 성령에 의해 생명을 갖게 된다는 명백한 증거다. 참여 정신은 교회 구성원 모두가 각자의 카리스마에 따라 균형 있는 역할을 맡도록 안배하는 반면, 참여 정신이 결여되면 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교회’(Clerical Church)로 축소된다.

 

사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적했던 자기 지향성(Self-referentiality)과 대조된다. 우리가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할 때 자기 지향적이 된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의 선교 또한 사람들을 교회에 봉사하게 하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봉사자인 교회가 사회를 섬기는 모습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요청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7일, 박지순 기자]

 

 

[특집] FABC 50주년 총회 「방콕 문서」 무엇을 담았나 (중)


불평등 겪는 여성 지위 향상·청소년 중심 ‘디지털 사목’에 중점

 

 

-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대교구에서 열린 FABC 50주년 총회 중 정신철 주교(왼쪽에서 네 번째)와 문창우 주교(정 주교 오른쪽)가 본당 방문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문창우 주교 제공

 

 

“「방콕 문서」는 완성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아시아교회가 걸어갈 여정의 시작입니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전 의장이자 인도 봄베이대교구장 오스왈드 그라시아스 추기경이 FABC 50주년 총회 논의 결과를 모은 「방콕 문서」의 성격을 표현한 말이다. 그라시아스 추기경 평가대로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회고하거나 진단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바라보면서 함께 나아갈 미래를 제시하는 문서다.

 

「방콕 문서」 제2장 바라보기(Looking)와 제3장 식별하기(Discerning)에는 아시아교회가 새롭게 직면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수행해야 할 과제들과 그 과제들을 식별하기 위해 아시아교회가 귀 기울여야 할 성령의 요청이 무엇인지 다루고 있다.

 


아시아교회가 직면한 도전들

 

「방콕 문서」 제2장의 부제 ‘아시아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도전들 인식하기’(Recognizing the challenges confronting the Church in Asia)는 아시아교회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과제를 안고 있음을 암시한다. 새로이 부상하는 현실에 대응한다는 것은 곧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다는 의미와 연결된다.

 

「방콕 문서」는 아기 예수님을 찾아 나선 동방박사들이 지혜로웠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면서 아시아교회 역시 동방박사들의 지혜를 배울 때, 아시아교회 앞에 놓인 미래에 지혜롭게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동방박사들은 하늘의 인도를 받은 것뿐만 아니라 자기 주변도 주의 깊게 살폈다는 면에서 지혜로웠다. FABC 50주년 총회도 하늘의 것을 바라보면서도 주변의 현실을 살피고자 했다. FABC 50주년 총회 참석자들은 성경을 묵상하고 영성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아시아교회가 놓여 있는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균형 잡힌 시각을 기대했다.

 

FABC 50주년 총회에서 영상을 통해 아시아교회 모든 나라를 가상(비대면) 방문(virtual visits)한 이유도 평소 목소리를 듣기 어려웠던 아시아 각국 신자들과 만나 각 지역교회에서 등장하고 있는 희망적인 현실은 물론 고통스런 현실에까지 우리의 눈을 열기 위한 것이었다. 아시아라는 거대한 대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따라서 FABC는 「방콕 문서」를 작성하면서 아시아 지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 초점을 맞춰 9가지 우선적 관심사로 ▲ 고향으로부터 쫓겨나는 이주민, 난민과 토착민 ▲ 사회의 근간이 되는 가정 ▲ 빠르게 변화하는 아시아 사회에서 커지는 여성의 역할 ▲ 사회와 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젠더 문제 ▲ 새 세상과 직면하는 청년 ▲ 디지털 기술의 효과 ▲ 도시화와 세계화 속에서 공정한 경제의 증진 ▲ 우리 공동의 집을 위협하는 기후 위기 ▲ 아시아 대륙에 조화와 평화를 가져다주는 종교간 대화를 선정했다.

 

이 가운데 아시아 대륙에서 전통적으로 남성에 비해 차별대우를 받아 온 여성 지위와 관련해 「방콕 문서」는 “우리는 여전히 아시아 많은 지역에서 여성들에 대한 차별과 폭력, 억압이 가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밝혀 여성들이 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있는 아시아의 현실을 짚었다. 보다 세부적으로, 여성 리더십과 기여도가 저평가돼 왔고 몇몇 지역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인식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임금과 소유권, 상속권, 교육 기회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또한 태아가 여아일 경우 낙태하는 문화가 존속되는 지역도 있고 젠더에 기반한 폭력도 여전히 존재한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는 변하고 있다”면서 아시아의 여성들이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점차 목소리를 높이면서 남성들과 대등한 위치를 찾아가고 있고 교회 역시 이런 흐름을 이끌고 동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에 아시아교회의 사목 방향도 「방콕 문서」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방콕 문서」는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디지털 소통과 상호작용은 거의 모든 삶의 영역에 영향을 미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효용성과 더불어 몰개성화, 증오 범죄, 가짜 뉴스, 사회 내 단절, 따돌림, 중독 등의 문제가 등장했다. 아울러 디지털 대중매체의 소유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소비자 위에 군림하면서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는 현상도 부각되고 있다.

 

「방콕 문서」는 가톨릭교회 지도자들이 교회 고유의 안전한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마련하고 지역 교회마다 디지털 소통을 담당하는 팀을 만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관심을 끄는 부분은 청소년들을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고 부르면서 청소년들이 아시아교회의 디지털 사목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23일 서울 가회동성당에서 FABC 50주년 총회 프로그램 중 하나로 가상(비대면) 방문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주교회의 미디어부 제공

 

 

아시아 선교에 요구되는 식별

 

「방콕 문서」는 아시아 지역에서 선교를 해야 하는 아시아교회의 상황이 아기 예수님이 태어났을 때 유다 지역 통치자였던 헤로데가 자신의 권력에 위협이 된다고 느꼈던 것과 유사하다고 말하고 있다. 정치, 종교적으로 기득권을 지니고 있는 이들은 새로운 종교의 접근에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시아에서 가톨릭은 소수 종교라는 점에서 타 종교와 다문화 속에서 선교를 하는 데는 필연적으로 어려움이 따르게 된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 지역 초창기 선교사들이 통치 집단과 기존 종교 세력으로부터 위협적인 존재로 여겨졌듯이 오늘날 아시아 지역 선교 역시 간혹 협력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선교 초창기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따라 협력을 얻기도 하고 경계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상이한 선교 환경에서 필요한 덕목이 식별이라고 제시한다.

 

식별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를 들으려는 지속적인 과정이지 한 순간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다.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 살고 성령의 인도를 따르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터를 잡는 생활양식이다.

 

FABC 50주년 총회 참석자들은 스스로에게 ‘현대를 사는 아시아교회에 성령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물었고 특히, 아시아교회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9가지 우선적 과제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식별했다. 「방콕 문서」는 9가지 우선적 과제에 대한 식별의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

 

▲ 이주민, 난민, 토착민과 동반 ▲ 가정에 대한 각별한 관심 ▲ 아시아교회 여성들에게 새로운 리더십 부여 ▲ 젠더 이슈 해결 ▲ 청년 사목 배려 ▲ 디지털 기술의 효율적 사용 증진 ▲ 도시화와 세계화 맥락에서 포용적 성장에 기반한 경제 증진 ▲ 공동의 집 돌보기 ▲ 아시아의 화해와 대화를 위한 다리 건설자와 악기 되기가 그것이다.

 

「방콕 문서」는 온전히 식별의 과정을 거치면 성령께서 함께하는 결정을 도출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14일, 박지순 기자]

 

 

FABC 50주년 총회 「방콕 문서」 무엇을 담았나 (하)


다양성 공존하는 아시아만의 토착화된 복음화 필요성 재확인

 

 

- 아시아 주교단이 지난해 10월 30일 태국 방콕대교구 성모승천 주교좌성당에서 봉헌된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 폐막미사에 입장하고 있다. 문창우 주교 제공.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에서 논의한 결과를 모은 「방콕 문서」(Bangkok Document)는 아시아교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인식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위해 교회 공동체가 해야 할 일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면서 「방콕 문서」 마지막 두 개 장인 제4장 ‘재능 나누기’(Offering Our Gifts)와 제5장 ‘새로운 길 따르기’(Following New Pathways)에서 아시아교회 신앙인들이 갖춰야 하는 덕목과 자세 그리고 새 과제가 무엇인지를 밝힌다.

 

 

아시아의 문화와 영성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공동체가 알아야 하는 아시아의 문화와 영성을 이야기하면서 제일 먼저 마태오복음 2장 11절을 인용하고 있다. 동방박사들이 별의 인도를 받아 베들레헴 낮은 곳으로 찾아가는 마태오복음의 묘사에서 방문객이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 존중과 경배의 뜻으로 신발을 벗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아시아에서 전형적인 문화다.

 

자기를 비우듯이 발가벗고 있는 아기 예수님,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높이기 위해 인류를 포용하는 아기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경배하며 발견하는 의미가 있다. 아기 예수님은 사람이 된 하느님이기에 인간도 성스러워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신성한 선물로 내놓음으로써 우리가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바칠 수 있게 이끌어 주신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세계 구원을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

 

「방콕 문서」는 마태오복음에 그려진 동방박사들과 아기 예수님에게서 겸손과 자기 비움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점을 먼저 서술하면서, 교회에서든 세상에서든 아시아교회는 조화 혹은 긴장 속에서 공존하고 있는 다양한 종교와 문화, 피부색과 관심사를 존중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예수님의 왕다움’(Jesus’ kingship)은 말구유 안에 놓여진 절대적인 가난으로부터 드러난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예수님의 구원 능력을 인식하고 가난한 이들을 교회의 중심에 모시게 되면, 가난한 이들의 삶은 우리가 하느님의 신비한 지혜를 갈망하도록 이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형제들」 137항에서 “오늘날 우리는 모두 함께 구원받거나 어느 누구도 구원받지 못한다는 인식을 키워야 합니다. 지구 한편에서 겪는 가난, 타락, 고통은 결국 지구 전체에 타격을 주게 될 문제의 암묵적 온상지가 됩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소중한 것들을 배울 수 있고, 누구도 무가치하지 않으며 누구도 소모품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주변부에 있는 이들을 우리 안으로 포용할 길을 찾아 나서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변부 사람들은 사물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갖고 있으며,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중심부에 있는 이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현실의 진상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에 필요한 ‘바라보기’(Looking)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더욱 많은 것을 알려는 욕구에서 나오는 신중한 자세라고 표현했다. 아시아교회가 삶을 흑과 백, 밝음과 어둠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되며, 창조적이고 역동적인 방식 안에서 서로 상반된 것들 사이의 긴장을 다룰 때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한국 주교단이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대교구 반푸완 사목센터에서 열린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50주년 총회 중 그룹토의를 하고 있다. FABC 제공

 

 

새로운 길 따르기 - 또 다른 길로 돌아가기

 

「방콕 문서」의 결론은 ‘아시아교회는 새로운 길로 가야 한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방콕 문서」 전체의 모티브가 되고 있는 동방박사들도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12) 동방박사들이 각자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가는 데는 ‘별’로 상징되는 하늘의 안내도 있었지만 동시에 사람의 안내도 있었다. 아시아교회의 새로운 길 역시 하늘과 사람의 안내, 두 가지 모두를 필요로 한다.

 

지난해 10월 태국 방콕대교구에서 FABC 50주년 총회를 마친 아시아교회는 동방박사들처럼 ‘다른 길로’ 각자 자기 교구로 돌아갔다. FABC 50주년 총회는 아시아 각국 교회 앞에 ‘새로운 길’(New Pathways)을 열어 놓았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따라야 할 새로운 길 5가지로 ▲ 외래적 표현에서 토착화된 복음 선포로(From foreign expressions to inculturated proclamation of the gospel) ▲ 기초 교회 공동체에서 기초 사람 공동체로(From basic ecclesial communities(BECs) to basic human communities(BHCs) ▲ 대화에서 시노달리타스로(From dialogue to synodality) ▲ 선언에서 스토리 텔링으로(From proclamation to story telling) ▲ 관행에서 새로운 사목적 우선순위로(From the beaten track to new pastoral priorities)를 제시했다.

 

FABC 50주년 총회는 토착화된 복음화의 필요성을 재확인했다. 토착화(Inculturation)는 하느님이 인간의 형상을 한 예수님으로 내려와 인간을 구원하신 신비에 근거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가 필리피서 2장 7-8절에서 말한 대로 육화(Incarnation)의 신비는 곧 자기 비움과 낮아짐이다. 신앙과 문화가 대화하려면 그 문화 안으로 들어가는 토착화는 본질적으로 필요한 요소다.

 

기초 교회 공동체에서 기초 사람 공동체로 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는 교회 일에만 관심을 갖는 공동체는 참다운 시노달리타스를 구현할 수 없으며, 사람에 기초한 공동체를 건설할 때 진실한 선교 사명에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화에서 시노달리타스’는 시노달리타스가 가톨릭교회 안에서의 대화와 가톨릭교회 밖에서의 대화까지 포함한다는 면에서 대화보다 포괄적이라는 점을 전제한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 특히 여성 및 청년과 대화하고 가톨릭교회 밖에서는 이웃 그리스도교 신자들, 가난한 이웃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과 대화하는 것이 시노달리타스다.

 

예수님이 초대 교회에서 하느님의 통치를 선포했듯이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복음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시아교회를 성장시키고 소통과 공동체를 강화하는 방법론이 될 수 있다고 FABC 50주년 총회에 참석한 주교단은 의견을 모았다.

 

「방콕 문서」는 아시아교회가 걸어갈, 마지막 새로운 길로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목적 우선순위를 제시한다. 아시아에 산재해 있는 갈등과 충돌의 중재, 사회적 약자들 특히,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중독자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의 복리 증진, 디지털 기술의 적절한 활용, 이주민과 난민, 인신매매 피해자 등과 관계된 정부 및 시민단체와의 연대, 생태계 보전 등이다.

 

「방콕 문서」는 세속주의를 거부하고, 보다 인간적인 세상, 정의와 평화 사랑의 시민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선의를 지닌 모든 이들과 힘을 합칠 것을 밝히고 있다. [가톨릭신문, 2023년 5월 21일, 박지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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