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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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자료

[성경] 유대인 이야기42: 유대인 예수1 - 유대인 예수, 유대인 신앙을 뛰어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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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0-01-06 ㅣ No.1320

[유대인 이야기] (42) 유대인 예수 I


유대인 예수, 유대인 신앙을 뛰어넘다

 

 

2000여 년전 ‘큰 별’과 함께 이 땅에 온 인간 예수는 탯줄을 달고 태어나 우리와 함께 숨 쉬고 호흡했으며 말씀과 식사를 함께 나눈, 살아있는 생생한 ‘실재’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그의 주장은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례적인 천문 현상이었다. 전에 보지 못하던 큰 별이 하늘에 나타났다. 당시 동방의 박사들이 이 현상에 주목했다. 박사들은 별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여행에 나섰다. 별이 인도한 곳은 베들레헴이었다. 그곳에서 박사들은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2 참조).

 

2000년전 베들레헴의 한 마구간에서 유대인 아기가 태어났다. 부모는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고 지었다(마태 1,25 루카 1,31).

 

인간 예수는 이렇게 탯줄을 달고 태어나 우리와 함께 숨 쉬고 호흡했으며 말씀과 식사를 함께 나눈, 살아있는 생생한 ‘실재’(substantia, 實在)다. 여기서 말하는 실재는 ‘실재로 존재함’이다. 관념론에서 말하는 사물의 본질적 존재로서의 실재가 아니라,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말하는 인간의 의식으로부터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그 실재다.

 

그러나 그 역사적 예수의 삶을 성경이 아닌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역사적 예수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신약성경은 예수의 선포, 그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의 삶은 그 출생연도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다. 역사적 예수의 삶을 연구한 학자들마다 주장이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선 출생연도. 동방박사들이 쫓아갔던 ‘큰 별’에서 추론해 볼 수 있다. 동방박사들이 본 것이 초신성(supernova, 超新星)이었을 가능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초신성은 수명을 다해 죽어가는 별이 폭발하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순간적으로 방출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 그 밝기가 평소의 수억 배에 달한다고 한다. 하지만 동방박사들이 본 별이 초신성이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왜냐하면 당시 중국과 그리스 등 어디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초신성을 발견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17세기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를 비롯한 학자들은 동방박사들이 본 별이 ‘두 행성이 시각적으로 일직선상에 정렬하는 현상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목성과 토성이 우리 눈에 일직선으로 놓이면 그 별의 밝기는 평소의 수십배가 된다. 계산을 해 보면 이런 일이 기원전 4세기에 있었다. 최근에는 1818년에 있었으며, 2065년에 또 있을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다. 천문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마이클 몰나 박사는 저서 「베들레헴의 별- 동방박사의 유산」에서 “동방박사가 본 빛은 목성과 달의 겹침 현상 때문이었다”며, “그 시기는 정확히 기원전 6년 4월17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제 눈을 성경으로 돌려보자. 성경의 진술도 예수 탄생연도를 추적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보다 5~6개월 먼저 태어난 동갑내기인데 루카 복음은 그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는 시기에 대해 자세히 적고 있다.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루카 3,1-2)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의 치세 15년은 기원 후 27년이다. 본시오 빌라도는 기원후 26~36년 유다와 사마리아의 총독이었고, 헤로데 안티파스는 기원전 4~기원후 39년에 갈릴레아와 요르단강 동부지역의 영주였다. 필리포스는 기원전 4~기원후 34년에 갈릴래아 호수 동북쪽 골란고원과 헤르몬산 남쪽 사이에 있는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역을 다스렸다. 한나스는 기원후 6~15년에 대사제로 있었고, 한나스의 사위였던 카야파는 18~37년에 대사제직을 수행했다.

 

이를 바탕으로 볼 때 예수의 공생활은 27~32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러한 사료들을 바탕으로 현재 예수 탄생연도를 기원전 7~6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예수에 대해 유대교는 「탈무드」 산헤드린에서 “예수는 마술을 써서 이스라엘을 미혹시켜 배교하게 하였으므로 유월절 전날에 처형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43a). 이렇게 유대인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 혹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한 지체로 보지 않는다.

 

예수를 ‘이샤’라고 부르는 이슬람도 유대교와 마찬가지로 예수를 신의 외아들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처녀의 몸에서 태어난 사실과 기적을 행한 사실은 믿는다. 이슬람 신자들은 예수를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기 위해 신이 보낸 중요한 예언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존경한다.

 

어쨌든, 유대인 예수는 출생 이후 철저한 유대인으로 살아간다. 할례를 받았고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했으며, 율법을 해석하고 연구했다. 특히 율법에 대해서는 어린시절부터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루카 2,41-52 참조).

 

하지만 유대인 예수는 당시 유대인이 생각했던 모든 틀을 뛰어넘는다. 율법을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완의 것으로 가치하락시켰고, 거룩한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는 등 불경스런 말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했고, 결국 십자가형을 선고 받고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예수가 유대인들의 신앙을 단순히 평가절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박하고 비판했다기보다는 넘어섰다는 표현이 옳다. 유대인 예수는 당시까지 이어져 내려오던 유대인의 사유를 넘어선 그 무엇을 제시했다. 넘어선다는 것은 극복하는 것이다. 더 나은 가치로 이겨내는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따른다.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 더 나은 가치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자! 이제 예수는 유대인들의 신앙을 정면 공격한다.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니…. 경악할 일이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루카 11,53) 결국 “율법 학자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았다”(루카 19,47).

 

[가톨릭신문, 2009년 12월 27일, 우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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