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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칼럼: 도서 고백 - 평화와 오랜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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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3-11-21 ㅣ No.103

[도서칼럼] 도서 ‘고백’


평화와 ‘오랜 외로움’

 

 

그리스도교 평화운동을 펼친 도로시 데이(1897-1980)를 들어 보았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진행되고 있는 폭력의 악순환과 아이들의 희생을 목격하면서 평화가 절실한 시대를 살기에 도로시의 자서전 《고백》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이 책의 원제목은 ‘오랜 외로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미국 방문 중 의회 연설에서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한” 미국인 4명을 거명했는데 이분을 링컨과 더불어 포함했습니다. 이분이 도대체 누구길래, 링컨과 ‘동급’으로 언급했을까요?

 

도로시는 대공황, 2차 대전을 거쳐 초강대국이 된 20세기 미국 역사 한복판을 살아간 신앙인입니다. 대공황에서 내몰린 노동자를 위해 환대의 집을 운영하며 가톨릭 노동운동을 하고 또 전쟁에 반대하여 평화운동을 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삶을 다룬 이 자서전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습니다만, 오늘은 그리스도교 평화주의에 초점을 둡니다.

 

도로시는 <전쟁은 국가의 활력>이라는 제목으로 자서전의 한 장을 할애하여 평화운동에 대한 생각과 경험을 나눕니다. 미국은 2차 대전, 한국전쟁, 베트남전쟁에 모두 관여했고, 전쟁은 미국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전통적으로 ‘정당한 전쟁론’이지만, 도로시는 이를 넘어서 그리스도교 평화주의를 개진합니다. 미국 정부나 주류 미국인은 미국의 전쟁을 정당한 전쟁으로 보았지만, 도로시는 달리 보았습니다. 심지어 가톨릭 노동운동 지지자들이 평화주의에 동의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도 그는 굽히지 않았습니다. 공의회 마지막 회기에는 핵전쟁 반대, 평화주의를 위한 단식도 했고, 베트남전쟁 반대를 하며 투옥되는 것도 불사했습니다. 이런 활동은 베트남전쟁을 강력히 지지하던 당시 뉴욕교구장의 활동과 대조가 됩니다. 평화주의는 가톨릭 노동운동, 가난한 사람에 대한 환대와 더불어 도로시가 미국의 주류사회에 도전하며 남긴 족적입니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한국인이 정당한 전쟁을 넘어서는 ‘복음적 상상’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 한국인에게 ‘원수를 사랑하라’는 산상수훈에 기반한 도로시의 평화주의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재발견하게 합니다.

 

도로시는 어떻게 해서 복음에서 평화주의를 발견할 수 있었을까요? 그의 회심에서 단초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젊어서 이혼, 낙태, 방황을 하다가 서른 즈음 출산을 앞두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출산할 아이에게 세례를 주고 자신도 세례를 받겠다는 결심입니다! 그 결과 아이의 아버지인 무신론자 동거인과 결별도 감수했습니다. 하지만 도로시는 신앙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이후 그는 깊은 기도에 뿌리를 두고 사회적 실천을 하는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도로시는 복음에 대한 신앙이 평화주의를 포함해서 자신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비록 ‘오랜 외로움’을 겪는다 해도!

 

도로시를 보면서 자문하게 됩니다. 내가 다음 세대에 줄 수 있는 가장 큰 일은 무엇일까?

 

[2023년 11월 19일(가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5면, 김우선 데니스 신부(예수회, 서강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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